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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코끼리·매미·신종플루''…동춘서커스가 이겨낸 시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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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 "부산은 서커스 성공 가능성 높아…공연장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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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3일에 TV에 드라마 ''여로''가 시작했습니다. 1925년부터 시작한 동춘서커스단이 내리막길을 걷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요."

현대백화점 부산본점에서 주최한 동춘서커스 공연차 지난 19일 부산을 찾은 동춘서커스 박세환(64) 단장은 드라마 ''여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드라마가 시작한 날짜까지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라는 노래도 있지만,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서커스단에게도 치명타로 작용했다.

"드라마 ''여로''가 선보인 1972년부터 시작해서 1975년 사이에 서커스단 18개 중에 서너개만 남고 모두 망했어요.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코미디언과 배우, 가수들은 뿔뿔이 TV 방송국으로 흩어졌고, 서커스단에 남아있던 악극단, 국극단, 쇼단이 전멸했습니다."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이주일, 이봉조 등이 동춘을 거쳐갔고, 이후 남철, 남성남, 장항선 등도 동춘 출신 연예인으로 방송에서 무진 활약했다. 박 단장은 당시 주연배우이자 사회자로 끝까지 동춘서커스에 남았지만 그도 결국 1975년 서커스단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부산 남포동에서 왕자극장, 부산극장 등지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동춘''을 잊을 수 없었다. 1978년 다시 동춘서커스단으로 돌아왔다. 그즈음 사고로 위기에 처한 동춘서커스단을 인수해 단장이 된 것이다. 서커스단 단장이 되면서 그의 인생도 ''곡예'' 그 자체가 됐다.

◈ 여로에 이어 닥친 최대 시련은 "주연배우 코끼리 사망"

1980년 2월 16일. 그럭저럭 서커스단을 운영해나가고 있을 때 단장 취임 이후 첫 위기가 닥쳐왔다. 물구나무서기에 하모니카도 불었던 서커스단의 최고 주연배우 코키리 ''제니''가 추위에 얼어 죽은 것이었다.

"당시 동춘서커스단은 서울 창경원 다음으로 많은 동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40종의 동물이 있었는데 그 중 코끼리 제니가 단연 최고 인기였죠. 그런데 난방장치가 고장나서 제니가 얼어죽은 거에요. 공연은 계속해야하고 주연 배우는 없어졌고 정말 눈 앞이 캄캄했죠."

박 단장은 제니를 땅에 묻었다가 도저히 잊을 수 없어 다시 파내 박제로 만들었다. 박 단장은 서커스 박물관이 들어서면 제니가 맨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을 수 있게 박제를 세워놓을 계획이다.

서커스의 인기는 갈수록 하락했고, 위기는 쉬지않고 찾아왔다. 2003년에는 태풍 ''매미''가 불어닥쳐 전남 광양에 세워놓았던 서커스 천막과 각종 장비 수십억 원 어치가 모조리 비바람에 휩쓸려 갔다. 사기도 당했다.

"2008년에는 부천시에 서커스 상설극장과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로 하고 민간사업자에게 동춘서커스 주식 51%를 주기로 하고 민자유치 계약을 맺었는데, 사기를 당했습니다. 아직까지 재판은 진행 중이고 상설공연장은 여전히 공사가 중단돼 있어요."

하지만 그에게 동춘서커스 해체를 선언하게 만든 가장 큰 시련은 다름아닌 ''신종플루''였다.

"다들 외출을 안 하니 사람이 모이지를 않아요. 공연장에 사람이 없으니 6,70명 되는 서커스단원들 월급도 못 줄 형편이 된 겁니다. 그동안 돈 생기면 서커스 장비만 사 모으고 땅을 사놓지 못한게 그때 그렇게 후회가 되더라구요. 견디다 견디다 못해 그해 11월 15일 공연을 끝으로 해체하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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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힘들었던 신종플루…서커스단 해체 선언이 되려 재기 발판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박 단장이 당시 동춘서커스 84년 역사를 그만 접겠다고 선언하자, 동춘서커스 살리기 여론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춘서커스를 살리자는 카페에 수만 명의 회원이 모여 모금운동이 시작됐고, 서커스단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른체 한 문화관광부에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제 미니홈피에 무려 16만명이 다녀갔고, ''동춘서커스 못살리면 유인촌이 아니라 무인촌''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쏟아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커스단이 생기고 85년만에 처음으로 공무원이 정식으로 저희 공연을 보러 왔어요."

문화관광부 실사를 거쳐 동춘서커스단은 지난해 12월 16일 전문예술단체로 등록됐다. 기부금을 공개 모금할 수 있는 지정 기부금 단체로 등록된 것이다. 정부지원과 국민 모금, 기업 후원 등에 힘입어 동춘서커스단은 지난해 12월 다시 재기 공연을 시작했다.

지난 19일부터 부산 동구 현대백화점 부산본점 옥상에서 시작한 공연도 현대백화점 측의 후원에 힘입은 것이다.

하도 오랜만에 부산에서 공연을 해서 몇 년만에 공연을 하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안난다는 박 단장은 그러나 부산에 대한 무한 애정을 나타냈다.

"제가 경주 출신이고 1975년부터 3년 동안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판에서 살아서 부산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집니다. 제 고향 친구도 부산에 아주 많이 정착해 있거든요. 한마디로 부산은 풍류를 아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부산은 서커스 산업 가능성 높은 도시…무관심 안타까워"

박 단장은 최근들어 여러 자치단체가 서커스 공연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는 부산이야말로 서커스 산업이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고 평가했다.

"부산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잖아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서커스는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두 즐길 수 있고 언어 장벽도 없어요. 한나절 관광명소를 돌아본 뒤에 저녁에 서커스 공연을 관광 일정에 집어 넣으면 얼마나 좋은 관광 상품이 되겠습니까. 그러다보면 주변 식당도 잘 될테고. 부산에서 한다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19일부터 사흘동안 부산 동구 현대백화점에서 연 동춘서커스 공연은 공연장이 협소해 모든 공연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자리가 꽉 들어찼다. 단 사흘 동안 3천여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찾았다. 동춘서커스단 부산 공연은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계속 이어진다.

부산 얘기가 나오자 안타까운 말도 쏟아졌다.

"시내에 서커스를 할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요즘은 거의 대부분 국공유지거든요. 서커스 공연을 제대로 하려면 자치단체에서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여러 자치단체에서 최근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부산은 아직 서커스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부산시 관광 담당자도 한 번도 만나보질 못했는데, 우리 서커스단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어요."

적절한 관심과 후원만 있다면 ''태양의 서커스''를 능가하는 우리만의 서커스를 선보일 수 있고 꼭 그렇게 하겠다는 박세환 단장. 6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기사회생한 동춘서커스단을 이끌며 또 다른 곡예같은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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