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에 오래 시달려온 대한민국. '젊은 피', 즉 청년 정치인 수혈이 시급한 시점인데요. 이를 위해 이번 6·3 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정치 신인들이 있습니다. 정치의 역동성을 살려줄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이죠.
정치판 데뷔를 향한 이들의 여정, 무탈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현행법에 대한 서러움을 토로합니다. 공직선거법이 기성 정치인들에 비해 정치 신인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건데요.

CBS 씨리얼은 4명의 정치 신인들을 만나 '낡은 선거법'의 '꼰대 포인트' 4가지를 짚어봤습니다. 변재민(19) 개혁신당 인천 연수구의원 후보와 이해지(31) 진보당 서울 서대문구 시의원 후보, 권인호(37) 더불어민주당 대전 대덕구 시의원 후보, 왕복근(38) 정의당 서울 관악구 구의원 후보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꼰대 포인트 ① 인공지능 시대인데, AI는 금지라니요

인공지능(AI)의 시대, AI 생성물은 유행이자 효과적인 홍보 수단입니다. 실제 김민지 진보당 서울 관악구의원 후보도 젊음을 앞세운 발랄한 릴스 영상으로 조회수 3~4만회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현행법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82조 8항은 '인공지능 기술 등을 이용하여 만든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 이미지 또는 영상 등을 제작·편집·유포·상영 또는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AI 생성물을 관리하고 있고요.
2007년생, 19살의 나이에 패기있게 도전장을 내민
변재민 후보(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도 젊음을 무기 삼아 AI로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홍보물을 만들어 활용해 왔다고 합니다.
변재민 후보는 "(계속 활용해오던 중)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달을 해주신 게 '인공지능을 활용한 모든 것을 일제히 금지한다', '음성부터 노래 또는 이미지, 글자 하나까지 모두 AI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변재민 후보는 어쩔 수 없이 AI 활용을 포기해야만 했죠.
이해지 후보도 "요새 (쇼츠나 릴스가) 유행이어서 '나도 해야지'하고 촬영도 다 했다"면서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수 있어 삭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듣고 철회했다"고 하며 변재민 후보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공직선거법상(82조 7항) 언론사와 포털에서는 광고가 가능하지만, 인스타그램 등 SNS 광고가 불가능한 것도 장벽입니다. 권인호 후보는 "SNS 광고는 사실 현대 마케팅의 꽃인데, 다양한 시민들을 대변해야 할 정치 영역에서 안 된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꼰대 포인트 ② 유세차 OK, 당원집회 NO…청년들은 어디로?

4명의 후보들은 정형화된 선거운동만 허용하는 '구닥다리' 선거법에 대해서도 입을 모아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공천을 받았지만 기성 정당 구조에 직접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한
권인호 후보는 짙은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권인호 후보는 "(저를 도와주겠다던) 청년들과 '자유롭게 거리에서 토론도 해보자' 등 참신한 이야기들이 나왔다"면서도 "딱 정형화된, 선거 사무원이 10명씩 있고 피켓을 들고 하는 선거 운동에 친구들이 실망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할 수 없는 게 많아?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네'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직선거법 105조에 의하면 '5명을 초과해 거리를 행진하는 행위'나 당원집회와 같은 행위는 선거운동 차원에서 할 수 없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청년들이 모이고 싶어도 모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주목하는 의제에 대한 원활한 논의가 어려워지는 거죠.
'유세차량'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가능하지만, 효과는 미지수입니다. 왕복근 후보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유세차량을 보고) 제일 깜짝 놀란다. '저게 뭐야?' 이런 반응"이라며 "이 현행의 선거 방식은 실제로는 '정책 선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왕복근 후보는 "외국 같은 경우에는 가가호호 방문(선거운동을 위해 주민을 직접 찾아가는 행위)이 다 허용이 되고, 1년 365일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며 "제가 알기로 가가호호 방문을 막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랑 우리나라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직선거법 106조는 실제로 '호별방문'을 제한하고 있고요.
이처럼 정해진 선거 기간에만 아주 짧게 한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보니, 결국 '비전', '정책', '가치', '공약'에 대한 일상적인 토론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결국 '명함'과 '피켓'에만 기대어 한정된 기간 안에 빠르게 '날 뽑아달라'고 어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복근 후보는 명함만 무려 8종, 이해지 후보는 장소 별로 적합한 피켓을 여럿 만들어 유세에 활용 중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꼰대 포인트 ③ '돈' 없으면 못합니다…수 천만 원은 기본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돈'이겠죠. 수 천만 원 깨지는 건 각오해야 합니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시작조차 못합니다.
각종 선거 기획사들은 후보들에게 견적서를 보내 '선거 운동 패키지' 상품을 제안하기도 하는데요. 기본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선입니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면요. 공보물 약 1천만 원, 유세차 약 1100만 원, 현수막 약 3~400만 원, 현수막 1~400만 원, 유세원 약 1천만 원, 선거사무소 약 1천만 원. 벌써 약 4천 5백만 원이 듭니다. 여기에 피켓, 명함 등 제작에 쓰이는 비용까지 합하면 최대 6~7천만 원까지 소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시의원 후보자는 지역구 출마자의 경우 평균 5600만 원, 비례대표 후보인 경우 평균 2억 1800만원까지 쓸 수 있습니다. 구의원 후보자는 지역구 출마자의 경우 평균 4800만 원, 비례대표는 평균 5700만 원이 한도입니다.

지방선거 '3수생'인
왕복근 후보는 이제 그 정도 비용이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2020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에 따라 광역·기초의원 후보들도 '후원회'를 둘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합니다. 왕복근 후보 또한 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선거비용 보전과 관련한 현행법(공직선거법 122조2)도 정치 신인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지 후보는 "10%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절반을,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을 보전 받을 수 있다"면서도 "이제 막 시작한 사람, 특히 청년들이 100일도 안 돼서 그 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꼰대 포인트 ④ '선거구 획정 지연'에도 눈물 흘립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선거구 획정도 정치 신인들을 울립니다.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로부터 6개월 전'에 이뤄져야 하는데요. 이 법정 시한이 지켜지지 않는 악습은 매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왔습니다. 법정 시한이 정해진 지난 2016년 이후 규정이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도 선거구 획정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참다 못한 중앙선관위는 결국 지난달 13일 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공식적으로 촉구했고요. 약 열흘 뒤인 지난달 22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긴 했습니다. 자치구·시·군의원 선거구 획정 절차 및 기한을 정하는 내용이 공직선거법에 추가된 겁니다. 비록 '특례'긴 하지만요.
소수정당의 설움을 딛고 선거 사무실마저 구의원 후보랑 나눠 쓰는 등 '짠내' 나는 선거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해지 후보는 선거구 획정 지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해지 후보는 "서울 관악구에 이미 외벽 현수막과 이런 것들을 다 한 상태였는데 동 자체가 바뀌었다"며 "그래서 (후보가 홍보물 제작 등을) 새로 다시 다 해야 하면서 좀 눈물을 흘리셨던 사연이 있다"고 씁쓸해 했습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유권자들에게도 악영향을 주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왕복근 후보는 "선거구가 쪼개져서 (유권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는데 갑자기 (그 후보가) 옆 지역구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경우 유권자는 다른 후보를 다시 봐야 하는데, 그건 유권자들에게도 사실 되게 못할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뜁니다…"정치가 곧 삶이니까요"
이쯤 되면 정치 신인들, 서러울만 하죠?
그럼에도 뜁니다. 이 설움 각오하고 뛰어든 만큼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일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정치가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사실 없어요. 내 옆에 있는 청년이 정치에 도전하고 조금씩 새로운 걸 시도하면 '나랑 관계 있는 일이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더 갖고 많이 참여하지 않을까요?"(권인호 더불어민주당 대전 대덕구 시의원 후보)
"내 삶에서 사실 가장 크게 체감되는 선거는 지방선거입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도로 아스팔트 까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 깨진 계단 벽돌을 수정하는 것도 그렇고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표 참여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해지 진보당 서울 서대문구 시의원 후보)
"지방의회라는 게 사실 국회의 굉장히 미니, 미니, 미니 축소판이란 말이죠? 구청장이 대통령이라 생각을 하고 구의회가 국회라고 생각을 하시면 (…) 사실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런 정치인들이거든요."(변재민 개혁신당 인천 연수구 구의원 후보)
"저희 관악구에 여성 안심 귀갓길 예산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되게 사소한 일일 수 있는데 결국 그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하루의 평온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게 작은 선거가 아니라 내 삶에 제일 가까운 선거라 생각하시고 투표에 좀 나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왕복근 정의당 서울 관악구 구의원 후보)
※정치 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 유튜브 <씨리얼> 채널에서 영상을 통해 직접 들어보시죠.
정치 신인들한테 물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고 촌스럽게 선거운동하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HdJNXxHIA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