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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방첩사' 못들어서 조태용 무죄…내란 지운 살라미 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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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내란특검의 주장과 피고인(조태용)의 주장을 비교한 표. 21일 조태용 전 국정원장 1심 선고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가 작성한 설명자료 일부 캡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내란특검의 주장과 피고인(조태용)의 주장을 비교한 표. 21일 조태용 전 국정원장 1심 선고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가 작성한 설명자료 일부 캡처. 
법정B컷 독자 여러분, 잠시 스스로를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상황입니다. 국정원장인 당신의 집무실로 참모인 1차장이 찾아와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대통령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원장님이 서울에 안계신 줄 알고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저에게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
(방첩사에서)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닐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 집무실에서 이런 보고를 들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방첩사를 도와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라고 대통령이 국정원에 지시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계엄 상황이니 방첩사를 잘 도와주라는 당부 차원이다.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닌다는 건 뜬구름 같은 풍문이라 신경 쓸 게 아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한참 혼란 속이었던 밤 11시 50분. 조태용 당시 국정원장은 홍장원 1차장의 보고를 받고 처럼 이해했다고 주장합니다. 홍 전 차장이 '방첩사에서'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면 처럼 이해했겠지만, '방첩사에서'라고 정확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훈·이재명 이야기는 그저 뜬소문을 전하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물론 홍 전 차장은 대통령이 방첩사를 도우라고 했고, '방첩사에서'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닐 것이라며 대통령의 지시를 정확히 보고했다는 입장입니다.
 
법원은 조 전 원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내란특검(조은석 특별검사)이 기소한 조 전 원장의 직무유기와 국정원법 위반 등 주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방첩사에서'라는 주체가 빠진 게 조 전 원장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홍 전 차장이 '방첩사에서'라는 말을 했느냐를 집중 검증했습니다.

불법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 등을 받는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불법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 등을 받는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2026.5.21.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 조태용 1심 선고문
"김병기 의원은 수사기관에서 홍장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독대 보고 당시에 정치인 체포 주체를 언급한 사실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제 기억으로는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려 한다'라고만 말한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하면서, 다만 그에 앞서 홍장원이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한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방첩사가 한동훈 이재명을 잡으려 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어요. 그래서 결국 국회 정보위에서 홍장원이 독대 보고 당시 피고인에게 정치인 체포 주체를 명시하여 보고했다는 취지로는 김병기 의원이 진술하지 않았어요."
 
재판부는 계엄 이후인 2024년 12월 6일 홍 전 차장이 국회 정보위원장실을 방문했을 당시 배석했던 김병기 의원이 들은 내용을 토대로 봐도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니는 주체가 특정되진 않았다고 봤습니다. 또 홍 전 차장 본인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할 내용을 정리한 메모 내용에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한다'는 있지만, 한동훈·이재명을 잡으러 다닌다는 기재에는 방첩사가 특별히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란특검은 법원의 판단이 일반의 상식과 크게 벗어나 있다고 봅니다. 김병기 의원의 진술을 다시 들여다봅시다.
 
김 의원은 "홍장원이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한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방첩사가 한동훈 이재명을 잡으려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특수한 상황과 앞뒤 보고내용을 고려하면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김 의원이 국정원 출신이라 특별히 더 추론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하물며 조 전 원장은 1980년 외무고시 14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주미대사 등을 지낸 외교·안보계 최고 엘리트였습니다. 21대 국회의원으로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기민하게 맥락과 정세를 파악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일에 한평생 종사해온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조 전 원장은 계엄이 선포되기 약 2시간 전 먼저 용산 대통령실로 호출돼 윤 전 대통령과 만난 만큼 홍 전 차장보다 더 빨리, 확실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실 CCTV에는 조 전 원장이 손에 든 문서를 세로로 두 번 접어서 자신의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넣는 장면도 찍혔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문건 내용을 본 사람이나 윤 전 대통령이 조 전 원장에게 계엄 관련 지시를 한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조 전 원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12·3 당일 밤 조 전 원장이 겪은 일과 들은 말들을 촘촘하게 분리해 따로따로 증명한 결과 조 전 원장은 직무유기 책임을 벗게 됐습니다. 그러나 잘게 쪼갠 장면이 아니라 12·3 당일 밤의 흐름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2025.2.13. 윤석열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조태용 증인 출석)
윤석열 전 대통령 "제가 홍장원에게 밤 10시 넘어서 11시 다 돼서 전화했는데 첫마디가 '원장님 (국내에) 계신다는 말 왜 안했냐' 했고요. 방첩사령관과는 육사 선후배니까 방첩사 지원을 잘 해줘라. … 얘기했고. 바로 제가 국정원장한테 전화했는데 … '제가 홍장원에게 좀 전에 전화했습니다. 아마 홍장원도 원장께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왔다는 걸 이야기 할 겁니다' (조태용과) 이런 대화를 한 것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연합뉴스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연합뉴스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후인 밤 10시 53분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 1분 24초간 통화했고, 곧바로 10시 55분에 조 전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57분까지 통화했습니다. 홍 전 차장은 그 통화에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테니 우선 방첩사를 도와.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탄핵심판에서 장광설을 펼치며 여러 번 제 발등을 찍은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원장이 증인으로 나온 8차 변론기일에도 자기 변명을 하던 중 진실의 조각을 흘렸습니다. 홍 전 차장과 통화 직후 조 전 원장과 통화하면서 "아마 홍장원도 원장께 이야기 할 것"이라며 자신이 무언가 재차 당부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스스로 밝힌 겁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유죄를 인정한 판결들은 윤 전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밝힌 계엄의 사유만 봐도 위헌·위법성을 알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 전 원장이 홍 전 차장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시점엔 국회에 군·경이 투입된 상황이 TV에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국정원법 제15조는 '원장은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지체 없이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설사 홍 전 차장이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라며 한동훈·이재명 체포 시도 소문을 전했더라도, 조 전 원장은 즉시 진상을 확인하고 위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국회에 전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홍 전 차장의 보고 내용이 뜬구름 잡는 듯 의아했다면서도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대통령이 한동훈·윤석열 체포를 지시한 것인지 등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습니다.
 
내란특검은 지난해 11월 조 전 원장을 기소하면서 "조 전 원장은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자며 미루는 등 내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본인이 인지한 정보를 사실대로 국민과 국회에 보고했다면 진상규명과 사태수습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의무를 져버린 무책임한 국정원장보다 무능한 국정원장이 더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계엄 해제 후엔 자신의 무결함을 증명하고 홍 전 차장의 진술을 흔들기 위해 국회가 요구하기도 전에 국정원 CCTV 영상을 국민의힘 측이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국정원법 제15조를 위반한 국정원장을 직무유기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법리 다툼이 될 줄 알았던 조 전 원장 사건은 '몰랐으니 무죄'라는 선례로 남게 됐습니다. 향후 또 다른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몰랐다. 이해하지 못했다'며 상황을 회피할 근거가 될까 우려됩니다.
 
내란특검이 무죄 판결에 불복하고, 일부 위증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조 전 원장도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2심에서 더 치열한 다툼이 예상됩니다. 맨 처음 독자님께 던진 질문을 항소심 법원도 다시 고민하게 될 겁니다. 12·3 그날 국정원장 집무실에서 1차장의 보고를 받은 독자님은 둘 중 어느 쪽으로 이해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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