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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권리' 행사한 삼성전자 노조, 왜 '공공의 적'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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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반도체 셧다운 공포 속 파업권 향한 싸늘한 시선
상급단체 없는 신생 노조와 '무노조 경영' 사측의 낯선 교섭
성과급 논란부터 정부의 섣부른 압박까지 도마 위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총파업 예고 시점을 하루 앞두고 열린 3차 사후조정 회의를 마친 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총파업 예고 시점을 하루 앞두고 열린 3차 사후조정 회의를 마친 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사가 파업 직전 극적인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이번 사태는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다시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이자 절박한 호소 수단인 파업권이 유독 이번 사태에서는 국민 불안을 자극하는 사회적 불신의 대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단순히 배부른 노조의 이기주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기형적인 경제 구조와 사측의 무노조 경영 역사, 낡은 법·제도와 정부의 성급한 대응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경제 뒤흔든 반도체 셧다운의 공포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전날 오후 2시부터 오는 27일 오전 10시까지 엿새간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하며 최종 추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조적 원인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파업권 행사가 공공의 적으로 몰린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반도체 집중 구조와 그에 따른 공장 셧다운 공포다.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이 멈춘다는 소식은 곧바로 국가 경제 마비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로 이어졌다.

세계 주요 외신들도 일제히 우려를 쏟아냈다.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분의 1에 달한다"며 전 세계 공급망 차질을 경고했고, 블룸버그통신은 "글로벌 기술 공급망을 위협한다"고 짚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조차 "공급망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가세할 정도였다. 한국은행은 삼성전자 노조가 최장 18일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이 현실화하기도 전에 최후의 수단인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거론된 것은, 역설적으로 특정 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뼈아픈 취약성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상급단체 부재' 신생 노조와 '무노조' 사측의 낯선 충돌

연합뉴스연합뉴스
파업권 행사에 대한 불안을 키운 또 다른 배경에는 양대 노총이라는 기존 노동계의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거대 신생 노조의 빈약한 협상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숱한 파업과 타협을 거치며 축적된 기존 노사관계의 경험과 관행이 적용될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 노동계 출신 정치권 인사는 신생 노조가 주도하는 낯선 교섭 환경을 두고 "이번에는 문법이 다르다"며 "기존 노사 협상과는 판이 달라 노동계 인사들이 쌓아온 협상력이 발휘될 틈이 적다"고 말하며 삼성전자 노조가 직면한 교섭의 난맥상을 짚었다.

여기에 장기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사측의 굳어진 태도와 협상력 부재가 맞물리며 사태를 더욱 키웠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수십 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이 노조와 대화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사업장에서는 20세기에 겪었어야 할 일들이 이번에 압축적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교섭 주체 양측 모두 벼랑 끝 전술 외에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막판 중재를 이끌었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지만 오랫동안 무노조 기업이었기 때문에 노사관계에 밝지 못했고,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도 신생 노조라 상급단체가 없었다"며 낯선 교섭 환경 속 구조적 어려움을 설명했다.


억대 성과급 논란과 가혹한 '이기주의' 프레임

무엇보다 교섭의 쟁점이 생존권 문제가 아니라 1인당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 문제에 집중되면서, 대중의 공감대를 잃고 말았다.

실제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8~20일 실시해 21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성과에 비해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한 노조의 문제가 더 크다'는 응답이 77%에 달할 정도로 여론은 싸늘했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등에 업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 공동의 몫인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다는 건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일부 노조가 선을 넘었다고 직격했다.

아울러 "노동 3권은 약자들에게 힘의 균형을 이뤄주기 위한 헌법적 장치이며, 여기에는 연대와 책임이라는 중요한 원리가 작동한다"며 삼성전자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사실 세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방식 자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전혀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다만 성과급 규모 자체가 워낙 커 이를 온전히 노동자의 몫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성과급을 요구하는 퍼센트 비율보다 절대 금액이 너무 커서 문제가 된 것"이라며 천문학적인 초과이익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던 점을 근본 원인으로 짚었다.

이 과정에서는 노조가 하청 노동자나 사회적 연대를 외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계가 공익을 내세우며 투쟁 동력을 확보해왔던 기존 문법과 다르다는 지적인 동시에, 노조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 역시 현행법의 한계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2조 5항은 노동쟁의를 당사자 간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어, 원청 노조가 하청 노조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교섭 과정에서 논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오 실장은 "현 구조에서 원청 노조가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할 경우 명백한 불법 파업으로 몰릴 수 있다"며 "산별교섭조차 막혀 있는 법적 한계는 방치한 채 노조에만 '이기주의' 프레임을 씌워 연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긴급조정권' 압박…갈등 키운 정부

이런 가운데 노조를 공공의 적처럼 몰아가는 데 정부 책임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집중해야 할 정부가 성급하게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거론하며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총파업 예고와 관련해 "파업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1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산업부 장관으로서는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막판 극적 타결을 이끈 김영훈 장관은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제가 긴급조정권을 쓴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부처 간 압박과 중재를 병행한 전략일 수 있지만, 정부가 혼선을 키웠다는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 실장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노동조합 혐오 정서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노동 존중을 외쳤던 정권까지 노조를 악마화하는 데 동참했다는 점은 정말 씁쓸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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