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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속도'로 자라는 사람들…이소정 '우리들의 농경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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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연세-박은관문학상 수상작
상처 입은 이들의 회복과 생존의 서사

민음사 제공민음사 제공
소설은 기도원을 탈출한 세 인물이 한 친구가 남긴 땅을 찾아가며 시작된다. 선지와 문복, 그리고 '나'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한 기도원에서 '어머니'를 섬기며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지냈고, 몸만 자란 어른 아이가 된 채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남긴 유산 같은 땅이다. 낡은 다마스 짐칸에는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고 믿는 한 남자가 결박된 채 실려 있다. 소설은 탈출과 추적의 긴장 속에서 출발하지만, 곧 흙을 만지고 씨를 심고 계절을 견디는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도착한 곳은 구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맹지다. 이들 앞에 나타난 구순태라는 남자는 일을 하면 먹을 것을 주겠다며 세 사람을 농사의 세계로 이끈다. 입하에는 감자를 심고 완두콩 씨를 뿌리고, 한로에는 참깨를 털고 들깨를 짜 들기름을 얻는다. 소설은 절기의 흐름을 따라 세 인물이 땅의 속도로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제3회 연세-박은관문학상 수상작인 이소정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농경 사회'다.

작품의 목차는 소한, 우수, 경칩, 청명, 입하, 망종, 소서, 입추, 백로, 한로, 입동, 대설 등 절기로 구성됐다. 이는 이야기를 시간의 속도보다 계절의 리듬에 맞춰 읽게 하는 장치다.

'우리들의 농경 사회'가 묻는 것은 단순히 농사를 통한 치유가 아니다. 해가 뜨고 지는 감각을 잃고, 타인의 욕망에 삶이 흔들리고, 과정은 사라진 채 결과만 남은 세계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각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작가는 "농사라는 가장 오래된 기술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묻고 싶었다"며 "오래된 삶의 방식으로 지금의 우리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인물들은 땅을 통해 빠른 회복이나 명확한 구원을 얻지 않는다. 다만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계절을 견디며 자신을 다시 길러낸다. "아주 단순한 일들이 우리를 버티게 했다"는 문장처럼, 작품은 무너진 삶을 붙드는 힘이 거창한 확신보다 반복되는 노동과 계절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소정 지음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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