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얘기 꺼내면 싸움"…청년들 삼킨 침묵의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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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18~29세 청년층 가운데 6·3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38%(4·11 중앙선관위 조사)에 불과했다. 전체 연령대 투표의향율이 70~80%를 웃도는 것에 비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이를 청년층의 게으름이나 무관심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CBS노컷뉴스는 중앙대학교 학보사(중대신문)와 함께 경향 각지의 다양한 계층의 20대 청년들을 인터뷰해 투표 회피의 구조적 배경을 추적했다.

[청년, 정치를 말하다 ③] 당파 싸움과 알고리즘이 붕괴시킨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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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 "우리가 아기 낳는 기계인가요?"…현실 배반 공약, 뿔난 청년들
②"취준하느라 후보가 누군지 몰라요"…'현생'에 밀려난 선거
③"정치 얘기 꺼내면 싸움"…청년들 삼킨 침묵의 나선
(계속)

청년들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정치로부터 눈을 돌리는 이면에는 집단적 정치 피로감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는커녕 상대편을 악마화하기 급급한 감정 싸움의 '진흙탕'이 되면서, 청년들은 정치를 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침묵의 나선'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지방 청년 A씨는 "제 주변에는 정치에 깊이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지 않고,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정치적 의견은 개인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어 가볍게 이야기하다가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해은(가명) 씨 역시 "청년들 사이에 (생각의) 양극화가 심한 이유 중 하나가 정치 얘기를 할 만한 공론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때문"이라며, "정치 얘기하면 내가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입을 닫게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 B씨는 "정치가 극단화되고 있어 사상이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혹여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소통으로 타협점을 찾기도 어렵고, 불편하고 멀어질까 봐 애초에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디지털 알고리즘

 
디지털 환경에서 정치를 소비하는 방식도 청년들의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알고리즘과 자극적인 콘텐츠가 건강한 판단을 가로막고 있어서다.
 
이서영 씨는 "인스타나 유튜브 등에 자극적인 정보들로 정치를 접하다 보니 본인만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강하게 주장하는 남들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며 청년층의 정보 편향성을 우려했다.
 
취업 청년 B씨 또한 "언론이 정치적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SNS의 댓글도 공론장이라기보다는 몰이해와 극단화가 이어지는 공간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명현 씨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커뮤니티 색채가 너무 명확해서 편향된 정보만 받아들이게 되니까 확증편향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정치 = 상식 붕괴"… 합리적 토론 사라진 '이념 전쟁터'

 
청년들은 정치가 생산적인 논의가 아닌,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끝없는 당파 싸움으로 변질됐다고 진단한다.
 
자신을 고관여층 유권자로 소개한 김모 씨는 현재의 정치 상황을 두고 "상식 자체가 붕괴된 당파 싸움터, 이념 전쟁터"라고 단언했다.
 
취업 청년 B씨 역시 "특정 정치인의 이슈에만 집중하고 당파싸움에 치중하는 모습은 피로감을 준다"며 "초당적 합의가 필요한 일에도 당파적 싸움을 할 때 정치는 신뢰를 잃고 버림받게 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인들 쇼츠에 거부감…"본업에 충실한 전문가 원해"

 
정치인들이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하는 '개MZ(MZ세대다운)' 방식의 소통도 정작 청년들에게는 불신과 거부감의 대상이 된다.
 
김상엽 씨는 "청년들은 정치인들이 릴스 찍고 있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연예인이 아닌 숙련된 전문가를 원한다"며, "자기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이게 내 업적이다 이런 것들을 보여줘야지… 지금 취준생들도 다 자기가 뭐 잘했다 어필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고 일갈했다.
 
취업 청년 B씨 역시 "보여주기식 소통보다도 정치인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해나가고 있음을, 권리에 부합하는 책임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청년들이 원하는 건 정치 본연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실무 정치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고,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한 건강한 공론장이 복원되어야만 38%에 머물러 있는 청년층의 투표 의향을 끌어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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