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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균형은 내부에서 찾고, 주권은 외부로부터 지켜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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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용료 놓고 美 "무역장벽"…'법안 발의' 빌미 압박
'트럼프식 자유무역' 휘둘리지 않는 정책 주권 필요

연합뉴스연합뉴스
"영화 관람객을 태운 택시가 승객 뿐 아니라 영화관에도 돈 내놓으라고 한다."
"상습 과적의 화물트럭이 일반 승용차 수준의 도로 이용료만 내겠다고 한다."

 
'망사용료' 문제에서 상반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들려준 제각각의 비유다. 망사용료는 구글·넷플릭스 등 콘텐츠업체들이 KT·SK·LG 등 인터넷서비스업체에 자사 상품의 전송과 통신망 부하 등 제반사항에 대해 부담해야 한다는 비용이다. 비유대로라면 넷플릭스 등은 영화관 또는 과적차량, 국내 통신사들은 택시 또는 도로 운영사로 치환된다. 망사용료 관련 입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긴 하나, 수년째 성과는 없다.
 
영화관 비유에서는 국내 통신사들의 이중과금 소지가 문제시된다. 넷플릭스·유튜브 등 이용자들에게서 이미 인터넷 접속 요금을 받아내고도, 동일 사안의 요금을 거래 상대방에게까지 수취한다는 얘기다. 2년 전 해외 게임방송 콘텐츠업체가 망사용료 논란에 반발해 국내 철수를 단행하기도 했다.
 
과적차량 비유에서는 데이터 트래픽 폭증 유발자인 콘텐츠업체들의 무임승차 소지가 비판 대상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대형업체들이 국내 통신 인프라에 기대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과부하 유발 비용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개별계약 형태로 비용을 대고 있는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업체의 역차별 논란도 이 대목에서 불거진다.
 
디지털 인프라에 대해 근본적으로 시각 차이가 있는 콘텐츠업체와 인터넷서비스업체는 자연히 망사용료 문제에서 대립한다. 이 문제에는 또한 제도 수립 뒤 비용 상승분을 전가당할지 모를 소비자, 업계 개편 등 변수로 타격을 입을지 모를 콘텐츠생산자 등 제3의 이해당사자도 있다. 정책 수립에는 다양한 변수가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어쨌든 균형 있는 정책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의 일, 공정한 법제 구축은 대한민국 국회의 일이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정권이 이해당사자로 가담하는 양상이다. 논의만 있고 실현된 적도 없는 망사용료를 놓고 최근 미국은 '어리석은 무역장벽'이라고 비방했다. △2021년 이후 망사용료 지불 관련법안이 다수 발의됐고 △미국 콘텐츠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한국 경쟁업체에 이익이 되며 △미국 콘텐츠 산업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란다.
 
법률이 제정된 바 없으니, 미국업체만 부담을 질지 어떨지 정해진 것 없고, 미국업체의 부담이 국내업체 이익으로 직결될지 어떨지 역시 검증된 것 없지만, 그저 미국산업이 불리해질 것이라고 불만이다. 주장의 근거라고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뿐이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타국의 정책에 개입하는 행태가 여기저기서 발생한다면 국제통상 질서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이 박약한 논거를 무릅쓴 채 '무역장벽' 낙인을 찍은 의도는, 우리나라의 망사용료 정책 추진 자체를 저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쯤 되면 통상문제의 개선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주권에 대한 침해다.
 
트럼프정권의 '우리식 자유무역'은 이미 전 세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 세계에 관세폭탄이 투척되는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해 세계무역기구 중심의 다자무역질서가 무력화됐다. 더욱이 폭탄은 WTO 협상 테이블 대신 트럼프의 SNS에서 일방적으로 투척되기 일쑤였다. 자국 상품에는 이같은 보호무역을 일삼으면서, 한국의 디지털 인프라는 거저 쓰겠노라며 자유시장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과 브라질에서도 대형 콘텐츠업체들에 대한 디지털 인프라 비용 '공정분담'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인도와 호주에서도 관련정책의 제도화가 논의되고 있다. '망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전 세계에 확산 중이라고 보면, 미국은 장차 전 세계가 친 무역장벽 밖으로 내몰릴 판이다.
 
어쨌거나 망사용료 문제는 미국 정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이다. 우리 국회와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시대에 걸맞은 비용 분담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트래픽 유발 구조, 시장 지배력, 이용자 후생, 산업 경쟁력 등을 면밀히 따져 특정 이해당사자에 편향되지 않게 균형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성급한 제도화도, 무책임한 방치도 역공의 빌미가 될 수 있다.
 
특히 논의의 시작과 마무리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정책 판단과 입법 주권 아래 진행돼야 한다. 가정을 전제로 한 무역장벽 압박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균형은 내부에서 찾고, 주권은 외부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치밀한 정책 설계와 단호한 주권 행사가 병행돼야 망사용료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도 깔끔히 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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