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제공공정거래위원회가 약 3년 10개월 동안 인쇄용지 판매가격 인상을 담합한 제지 6개사를 제재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총 3383억 2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2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23일 공정위에 따르면, 무림에스피, 무림페이퍼, 무림피앤피,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 등 6개 업체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약 3년 10개월 동안 정기·비정기적으로 60회 넘게 모임을 갖고 인쇄용지 전 제품의 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인상 방식은 기준가격 인상 2회, 할인율 축소 5회였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구체적으로 2021년 3월 할인율 15%포인트 축소를 시작으로, 같은 해 6월 7%포인트 축소, 2021년 12월 기준가격 7% 인상, 2022년 5월 기준가격 15% 인상, 2022년 9월 할인율 7%포인트 축소, 2023년 12월 할인율 8%포인트 축소, 2024년 8월 할인율 7%포인트 축소 등 총 7차례 가격 인상을 짜고 실행했다.
공정위는 이들이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합의한 대로 가격을 올렸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담합 기간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95% 점유율을 차지한 6개사의 판매가격은 평균 71% 상승했다. 수입 물량까지 고려한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약 81%로 추정됐다.
이번 사건은 교과서와 단행본, 잡지, 화보 등에 쓰이는 인쇄용지 가격을 장기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공정위는 인쇄용지 가격 담합이 인쇄업체와 출판사의 제작비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지사들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시기에 이를 거래상대방에 떠넘기기 위해 담합했다고 봤다.
담합 방식도 은밀했다. 제지사 임직원들은 경쟁사 연락처를 휴대전화에 저장하지 않고 별도 종이에 이니셜이나 가명으로 적어 관리했고, 본인 명의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나 식당 전화, 타 부서 직원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연락했다. 또 거래처 반발이 먼저 통보한 회사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가격 인상 통보 순서도 미리 정했고, 결론이 안 나면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과징금 규모도 크다. 총 3383억 2500만 원으로,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역대 5번째로 많고 제지업계 담합 사건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업체별로는 한솔제지 1425억 8천만 원, 무림피앤피 919억 5700만 원, 한국제지 490억 5700만 원, 무림페이퍼 458억 4600만 원, 홍원제지 85억 3800만 원, 무림에스피 3억 4700만 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공정위는 일반적인 금지명령 외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함께 부과했다. 마지막 7차 합의 이후에도 전체 거래처 대상 기준가격이 바뀌지 않아 담합 영향이 남아 있다고 보고, 각 제지사가 인쇄용지 관련 제품 가격을 담합 이전 경쟁이 회복되는 수준으로 독자 재결정하고 앞으로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 공정위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두 번째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인쇄용지 업계에 관행처럼 굳어진 담합을 적발해 보다 적극적인 경쟁회복 조치를 부과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밀가루, 전분당, 계란 등 식료품 분야 담합 사건에 대한 심의도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