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주말 사이 서울과 예루살렘 사이에 흔치 않은 외교적 갈등이 불거졌다. 발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올린 글이었다. 이 대통령은 10일 이스라엘 방위군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썼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즉각 강력히 반발했다. "홀로코스트 추모일 전야에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재반박했다. 야당은 "무책임한 감정 외교", "선거용 국뽕 외교"라고 몰아붙였고, 온라인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엑스 캡처
그러나 이 발언을 국내 정치의 언어로만 읽는 것은 절반만 보는 것이다. 논란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그 큰 흐름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 가자 사태, 국제사회는 어떻게 보는가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가자 사태', 특히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권 유린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문제의 영상을 "2년 전 이미 조사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반론은 핵심을 비껴간다. 가자 사태는 영상 한 장면으로 환원될 수 없는 훨씬 더 큰 문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 국제기구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5만 명을 넘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 및 반인륜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유엔 독립 조사위원회는 이 참극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2024년 예루살렘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 면전에서 "목표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에 따르는 엄청난 대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과오로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무조건적 우방을 자처해 온 독일에서 나온 말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의 감정적 토로가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의 사법·인권 기관들과 국제 지도자들이 내린 판단과 같은 궤 위에 있다.
② '홀로코스트'…외교적 금기를 건드렸나
비판의 또 다른 축은 '홀로코스트'라는 표현이다. 유대인 집단학살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민감한 역사적 기억 중 하나다. 이를 다른 사건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홀로코스트가 국제사회에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 것은 사실이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같은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 'Never Again'은 서구사회에서 관용구처럼 통용되어 왔다. 세계인들은 이 구호 앞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방향으로만 고개를 끄덕여 왔다.
연합뉴스그런데 가자 사태 이후 이 구호에 두 단어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Never Again for Anyone."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런 일이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양심적인 유대인 지식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하면서 나왔다. 과거의 비극으로 현재의 만행을 정당화하지 말라는 성찰이다.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③ '국익 실용외교'에서 갑자기 '가치 외교'로?
일부에서는 국익 실용외교를 강조해온 이 대통령이 갑자기 보편적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 질문에는 비교적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난달 이재명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해온 정부로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실제로 정부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됐고, 진보 진영 일부에서도 반발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같은 이유로 2019년부터 4년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보편 가치에 바탕을 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선택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사실상 답이 정해진 사안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면 함께 '규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임 진보 정부가 이를 거스르려다 비판을 자초하고 외교적·정치적 자원을 해명에 쏟아야 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실용이다.
물론 외교는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줄타기가 필요하다. 동맹, 안보, 경제적 이해관계는 물론 특정 사안에 대한 양국 간 정서와 긴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 중동 정세는 한미동맹 문제와 함께, 이란이 통제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과도 얽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이 논쟁이 그가 늘 외치는 '국익 실용외교'로 귀결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다시는 안 된다." 그 말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자에서 죽어가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박형주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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