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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면 좀 어때?"…정부 비어 있는 자리, 부모들이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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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 선 사람들'⑤]

경계선 지능 가족 70명 캠프…지원 공백 메우는 '자조 현장'
특수교육 전환하자 기존 지원 중단…제도 간 충돌 드러나
"학교도 모르는 정보"…부모들 서로 의지해 해법 모색
"아이 하나에 집 한 채"…비용·시간 모두 부모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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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윈도 95처럼 버퍼링이"…일할수록 밀려난 청년
②"멀쩡한데요"…서류와 눈앞이 다른 아이의 엄마
③"장애인 등록증 있어요?"…범죄 사각지대 놓인 사람들
④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700만'…'경계선 지능인'의 공백
⑤"느리면 좀 어때?"…정부 비어 있는 자리, 부모들이 채웠다
(계속)
"지원을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아이가 받던 지원이 끊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경계선 지능(느린학습자) 자녀를 둔 40대 김성호(가명)씨는 최근 이런 일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아이는 지난해까지 학교 안에서 기초학력 보장 체계에 따라 학습 지원을 받고 있었다.

김씨 부부는 기존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이가 일반학급에서 또래와 함께 지내면서도 학습과 정서, 사회성 측면에서 더 촘촘한 지원을 받으려면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 기초학력 지원에 특수교육 지원이 추가로 더해질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에서 경인교대 이대식 교수가 부모 강의를 하고있다. 김정록 기자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에서 경인교대 이대식 교수가 부모 강의를 하고있다. 김정록 기자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자 그동안 받던 기초학력 보장 프로그램과 교육청 지원 일부가 중단됐고, 기존처럼 참여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김씨는 "당연히 지원이 더해지는 줄 알았는데,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가 빠지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정작 특수교육 쪽에서 제공하는 지원은 기대와 달랐다. 김씨와 아이가 원한 것은 아이를 따로 분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반학급 안에서 필요한 학습 지원과 상담, 정서 지도를 함께 받는 것이었다.

이처럼 기초학력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 경계선 지능 자녀 부모들 사이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 신청이 지원을 넓히는 통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씨의 경험처럼 특수교육 대상으로 전환된 뒤 오히려 기존 지원이 끊기거나 축소돼 혼란을 겪는 일도 현장에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중부대 중등특수교육과 나경은 교수(한국학습장애학회 회장)는 "현행 기초학력보장법상 학습지원 대상 학생에서 특수교육 대상자는 제외돼 생기는 문제"라며 "행정은 이를 '이중수혜'로 보지만, 아이들 지원은 무 자르듯 끊을 일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수교육 대상되자 기초학력 지원 끊겨…"연속성 있어야"


이 같은 제도 공백 속에서 부모들은 학교 밖에서라도 정보를 찾고, 아이들이 관계를 맺을 자리를 직접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 충남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는 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가 열렸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령기 경계선 지능 아이들과 가족 약 70명이 모여 각종 활동 프로그램과 부모 강의에 참여했다.

"아이가 좀 더 눈치를 잘 보도록 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요?", "아이들이 지각과 결석을 자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부모 강의 시간에는 이처럼 평소 궁금하지만 물을 곳이 없었던 질문이 쏟아졌다.

한 아버지는 "대부분 직장을 다녀야 하는데 교육청 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보통 평일 낮에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모들은 "학교에 물어보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회 같은 모임에 와서야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지시·비난·평가 없이…자기 속도로 배우는 사회성

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 김정록 기자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 김정록 기자
서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낯을 가렸지만, 풍선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위로 튕겨내는 협동 놀이가 시작되자 금세 웃음을 터뜨리며 몰입했다. 부모와만 손을 잡고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또래와 함께 손을 잡고 풍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부모들은 이런 자조모임과 캠프가 단순한 친목 자리가 아니라 사실상 사회성 훈련장이라고 말한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느린학습자부모연대 김선덕 총무는 "처음에는 2시간 동안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녀오면 아이가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며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나중에는 '그들만의 속도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친구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이 친구들은 서로 기다려준다"며 "모임이 반복되면 보통 친구들처럼 '누가 안 왔어', '쟤 삐졌으니 풀어주자'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간다"고 했다.

송연숙 전국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청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 안에는 지시나 비난, 평가가 없기 때문에 그게 좋아서 계속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비용·시간 모두 떠안아…"격차 더 커진다"

하지만 이런 기회조차 부모들의 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 이사장은 "아주 잘 사는 부모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 아이의 경계선 지능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실제로 현장에서 움직이는 부모들은 중하위·차상위 계층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에게 돈을 다 쏟아붓고 신용불량자가 된 부모도 있고, '집 한 채 값이 들어갔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곽미라 느린학습자부모연대 부대표는 "언어치료는 한 회기에 보통 8만 원이고, 유명한 곳은 대기만 해도 오래 걸린다"며 "학교에서도 맞춤 교육이 부족하고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다 보니 결국 부모가 아이 교육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부모나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1인당 4만 5천 원인 캠프 참가비조차 부담돼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선덕 총무는 "아이 어릴 때는 한 달에 16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까지 썼고, 지금도 줄였지만 70만 원 정도는 든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부모가 비용과 시간을 모두 떠안는 구조가 결국 소득 격차를 더 키운다"고 지적했다.

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 김정록 기자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함께 걷는 가족캠프. 김정록 기자
이런 부담을 지는 가정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 현장의 체감이다. 곽 부대표는 "학교도, 학원도, 복지 체계도 책임지지 않으니 부모가 일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현직 교사들도 '반에 한두 명은 반드시 있고, 많을 때는 두세 명까지 보인다'고 말하지만 맞춤형으로 교육할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김선덕 총무는 "아이들은 속도가 느릴 뿐"이라며 "서울대는 못 갈 수 있지만 자기 분야에서 배우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이 아이들의 생애 전체를 지원하는 체계가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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