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헤요카'는 오래전 실종된 외삼촌의 흔적을 찾기 위해 네 명이 러시아로 향하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장동주 감독 제공외삼촌의 흔적을 찾기 위해 러시아로 향한 여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발길이 묶인 데 이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약 7억 원 규모의 투자 계약도 사실상 무산되면서 제작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요카(heyoka)'를 연출한 장동주 감독의 설명이다.
장동주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재중 전화가 30통 넘게 와 있는 거예요.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었죠."이어 "투자금이 빠지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며 "결국 사비를 투입해 모든 걸 쏟아부으며 제작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사라진 외삼촌은 장 감독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지내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 지금의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우게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동학대와 군 복무 후유증으로 청력이 악화된 외삼촌은 2006년 돌연 러시아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이후 장 감독은 페이스북을 통해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장동주 감독 제공그는 "삼촌이 누군가에게 피해 다니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며 "여권까지 말소돼 불법 체류 상태였고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보던 중 다시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총 4명의 팀을 꾸려 외삼촌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몽골을 거쳐 러시아 국경을 넘은 뒤 외삼촌이 보일러공으로 근무했던 마가단주 수수만을 확인하고, 마지막 행선지로 알려진 극동 캄차카 반도로 향하는 여정을 계획했다.
동행한 세 명도 직장을 그만두고 여정에 합류했다. 장 감독은 이 경험을 토대로 작품 제목을 '헤요카'로 정했다. 이는 아메리카 인디언 한 부족 문화에서 '거꾸로 행동하는 신선한 광대'를 의미한다.
그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존재를 뜻한다"며 "직장과 가정을 뒤로하고 이 여정에 나선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거리에 20·30대 남성 없어, 징집관 와서 용병 뛰라고…"
'헤요카'의 현지 촬영은 약 2개월간 진행됐으며, 후반 작업에는 약 1년이 소요됐다. 장동주 감독은 "추가 비용 문제로 공개 시기가 다소 늦어졌지만 많은 분들이 작품을 봐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좌측부터 지관호, 김준학, 장동주, 이윤성. 장동주 감독 제공전쟁의 여파는 현지 곳곳에서 드러났다. 몽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촬영 장비 문제로 약 2시간 동안 검문받아야 했고 도시 곳곳에는 참전을 독려하는 선전물이 붙어 있었다.
"거리에서 20·30대 남성들이 없었어요. 징집되기 싫어서 도망 다니다 붙잡힌 사람들도 많이 봤죠."이어 "러시아 징집관이 우리에게도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용병으로 참가하라고 권유했다"며 "몽골로 피신하는 현지인들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계속됐다. 장 감독은 "처음에 한 달 400만 원으로 렌트를 해줬는데 갑자기 15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하지 않았다"며 "그날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렌트를 금지화했다. 빌렸으면 차까지 버리고 왔어야 했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여정 중 생명의 위협도 겪었다. 야쿠츠크로 향하는 석탄 열차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기도 했고 야영 중에 지나간 호랑이 발자국과 배설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영하 20도에 이르는 추위와의 싸움도 뒤따랐다.
장 감독은 이 과정을 '빛'의 이미지로 작품에 녹여냈다. 그는 "환경 속에서 느낀 제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풍경을 보며 가슴을 후비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빛이 있으면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버텼다"고 웃었다.
"삼촌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미스터리"…음악 공들이기도
'헤요카'에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7)와 에미상·골든글로브 수상작 시리즈 '히스테리컬 블라인드니스'(2002)의 음악을 맡았던 캐나다 출신 작곡가 레슬리 바버(Lesley Barber)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장동주 감독 제공
음악에도 공을 들였다. 헝가리 영화 '사탄탱고'(1994)의 주연이자 음악감독인 미하리 비그(Mihály Víg)가 아시아 작품 최초로 참여했다.
'사탄탱고'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장 감독은 미하리 비그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지인을 통해 알게 됐어요. 그의 조상도 과거 굴라크(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가서 마음이 쓰인다고 했죠. 저희 여정을 계속 응원해 줬어요."하지만 외삼촌의 행방은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지역 주민과 현지 경찰까지 도움받으며 외삼촌의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마땅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작품이 공개 된 이후에도 추가 연락을 받지 못했단다.
그는 "삼촌이 산에 숨어 있다가 내려온다고 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산속에 은둔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며 "삼촌이 캄차카 반도의 한인들이 사는 지역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점에서 그곳에 머문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삼촌이 굉장히 바른 사람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며 "처음에는 망상이라 생각했는데 삼촌과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를 나누니 망상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장 감독은 "비록 외삼촌을 찾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따라 할 수 없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담겼다"며 "작품을 통해 용기와 도전의 의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다큐멘터리 영화 '헤요카'는 왓챠·티빙·웨이브를 통해 공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