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어린 왕 단종은 무기력했다?…역사의 빈틈에 새 숨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편집자 주

책보다 영상으로 역사를 배우는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사극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겠죠. 무려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만 봐도 그래요. 물론 역사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지금'을 비춥니다. 그리고 '미래'로 향하죠.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우리 시대 사극의 길을 역사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극에 바란다 ④·끝] 역사 콘텐츠 눈여겨본 사학자들 제언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사실 '촌장'이 아니었다?
② 단종은 왜 하필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됐을까
③ 단종 품은 '역적' 엄흥도, 어떻게 '충신'으로 부활했나
④ 어린 왕 단종은 무기력했다?…역사의 빈틈에 새 숨결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어떻게 동시대인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을까.

김근하 서강대학교 HUSS포용사회사업단 연구교수는 "뭔가 부당한 일을 당해서 억울하게 사는 건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그런데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부정당하고는 한다"고 운을 뗐다.

김 교수는 "이러한 것들이 '왕과 사는 남자' 속 단종 캐릭터를 통해 굉장히 잘 표현된 것 같다"며 "자기도 모르게, 무기력하게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주변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각성하는 단종의 여정이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할까'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평했다.

우리는 현재를 가늠하고 더 나은 내일을 열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본다. 바로 역사다.

권기중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큐레이션트랙 교수는 "역사는 여러 시각을 보여 줌으로써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AI가 모든 정답을 알려 준다는 이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사고의 밑바탕을 다지고, 인간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역사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김근하 교수 역시 "역사는 과거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현재였다"며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열어 나갈 지 생각하는 여정이다. 그것이 역사 본연의 임무"라고 말했다.

다만 학문으로서 역사는 상아탑이다. 대중과 접점을 넓히려면 길거리로 나와 때도 묻히고 어느 정도 언성도 높여야 한다. 그것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맡은 역할이리라.

김 교수는 "학문으로서 역사가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것들을 콘텐츠는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며 "결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학문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항준(왼쪽) 감독과 유해진 배우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쇼박스 제공장항준(왼쪽) 감독과 유해진 배우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쇼박스 제공

'사실'에 가장 가까울 때…'협업'의 미학


실제로 벌어진 일이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바로 '사실'을 일컫는다.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하면 '팩트'다. 사실, 그러니까 팩트는 동시대성을 지닌 모든 이야기의 토대다.

사극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종종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고는 한다. 온갖 사람이 사는 세상 일은 이따끔 우리네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까닭이다.

권기중 교수는 "사실에만 바탕을 둬도 충분히 재밌는 사극을 만들 수 있으니, 우선 그 사실을 조사하는 데 충실하면 어떨까"라며 "우리나라에는 역사 마니아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이에 따라 재미는 물론 작품성까지 겸비한 사극이 나올 수 있도록 학계와 협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균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분명 영화나 드라마는 픽션이 들어가야 재미있다"며 "이때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설정이 있다면 이를 알리는 별도 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리는 것도 홍보에 보탬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확대 재생산은 해당 작품으로 싹튼 흥미를 실제 역사로까지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결국 역사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근하 교수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사실에 가장 가까울 때 한껏 몰입하고 감동을 얻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역사학계와 콘텐츠 제작자 사이 여러 협업을 통해 가장 사실에 가까우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사실 역사학자보다는 콘텐츠 생산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들에게 사료를 꼼꼼히 읽어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전달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해당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대중 역시 '역사 연구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받아들여야겠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하는 이야기는 저렇게 받아들이는 게 좋겠어'라는 식으로 각 주체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기사는 좋은데 오타 투성이, 믿음 가겠나"


든든한 팩트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버팀목이다. 이를 길어 올리는 최선의 방법은 기록, 유물 등 사료를 촘촘히 살피는 작업일 것이다. 바로 '고증'이다.

권기중 교수는 "단종이나 한명회 등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작가 의도와 해당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의 영역이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다만 사실과 창작의 영역이 있을 때 기본적인 사실이 어긋나 버리면 몰입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창작할 때 이를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과거 여러 논란 탓에 방영이 중단된 조선 전기 배경 사극이 있었는데, 극중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상차림이 중국풍이라고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며 "연구자 입장에서 '중국 사람들이 오니까 중국풍으로 했을 수도 있지'라고 이해했지만, 상 위에 고구마와 옥수수가 있는 건 그냥 넘길 수 없더라. 이들 작물은 조선 후기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균 교수는 "소설 '홍길동전'으로도 유명한 조선시대 문신 허균이 도승지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실제 그는 이 벼슬을 맡은 적이 없다"며 "역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채택할 경우 그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는 일은, 해당 작품이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을 어필하는 방편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들은 영화 등을 흥미 위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보고 나서 감동이든 지식이든 남는 것이 있을 때 그 영화는 끝내 '명화'가 되는 법"이라고 역설했다.

김근하 교수는 "역사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극을 절대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수도 있다"며 "다만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계속되면, 그러니까 이른바 '고증 오류'가 누적될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는 "굉장히 좋은 기사가 있는데, 본문에 오타가 많으면 일단 믿음을 거두고 눈길이 가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고증 오류를 최소화 하려고 애쓰는 일은 복잡한 연구 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 작업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