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형법 제9조.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소년법 제4조.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은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한다.앞으로 두 달간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하향할지 여부를 두고 온 국민의 숙의를 모으기 위한 공론장이 열린다. 현행 만 14세인 촉법소년 연령을 13세로 낮추자는 것이 법무부의 제안으로,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방지의 실효성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가 예상된다.
1일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는 촉법소년 기준 연령 조정의 필요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교육부·법무부·경찰청 등 관계 부처 실·국장과 학계·법조계 전문가 등 20명 안팎으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공론화위원회 세부 계획을 수립 중"이라며 "가능하면 일반 국민이 참여해 논의하고 투표를 거쳐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공론장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한이 촉박하지만, 과거 연금개혁이나 최근 중장기 탄소감축 경로를 합의하기 위한 공론 절차처럼 전문 여론조사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어 필요한 절차를 최대한 밟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공론화는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이 직접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시작됐다.
법무부 "하향", 성평등장관 '제지'…李, '두 달 공론화' 주문
원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형사처벌이 가능한 소년의 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법무부 이진수 차관의 발제 이후 회의 분위기가 하향 쪽으로 기울자 자진해 손을 들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원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청소년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현했다는 이유 등으로 청소년정책이 사실상 실종됐고, 사실 성평등가족부를 '성평등가족청소년부'로 개명하자는 안이 여러 건 발의될 정도로 저희가 청소년정책 총괄 부처"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관련해서 저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담당 부처장으로서 굉장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관련 논의가 나온 지난 업무보고 이후 청소년·소년사건 전문가들과 1차 간담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원 장관은 "소년사건 관련해서 '아이의 실패는 사회의 실패'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연령 하향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사회의 실패를 인정하기 위해, 과연 우리사회가 소년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라는 비전을 보여줬는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상반기에 국민 공론장을 통해, 전문가와 소년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 담당자들, 또 보호관찰소에 계신 분들, 여러 전문 직렬 분들과 함께 심도 깊은 논의의 장이 열려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제안했다.
원 장관은 특히 법무부가 제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 추진 과제 12개 가운데 예방 대책은 1건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범죄예방 환경 개선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처벌 강화에 앞서 예방 노력이 충분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이 대통령은 원 장관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계속 논쟁만 할 수는 없으니 한 달 정도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원 장관은 "두 달 정도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두 달간 관련 부처가 쟁점을 정리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결론을 내리자"고 주문했다.
이 회의 직후 성평등부는 공론화 준비를 위한 내부 논의에 착수했다.
인권위·민변 '반대'…법무부 '소년범죄 증가' 통계 정면비판
이틀 뒤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잇달아 반대 입장을 내면서 공론 절차에 불이 붙었다.
인권위는 지난달 26일 제5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선 안 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앞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 시도가 있었던 2007년, 2018년, 2022년 모두 반대 의견을 표명했는데, 이번에도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또다시 반대 성명을 낼 필요가 있다는 논의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도 같은 날 '정책적 실효성과 아동 인권을 모두 외면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소년범죄의 흉포화와 촉법소년 증가 현상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고, 범죄를 저지른 아동을 성인과 같은 형사절차로 다뤘을 때 재범률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높아진다는 결과가 다수의 해외 사례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이 저지른 범죄의 숫자와 성격, 미결 구금의 사용 및 평균 기간, 사법절차 이외 조치에 따른 아동 수, 유죄 판결을 받은 아동 수 등 세분화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것을 촉구했다"며 정부는 "소년범죄와 관련된 현황과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통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앞서 법무부는 전임 정부 출범 한 달 만인 2022년 6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촉법소년 연령을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같은 해 10월 확정 발표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추진 속도가 빨랐다.
인권위는 같은 해 9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당시 국회에 발의된 '형법 개정안'과 '소년법 개정안'이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 인권 기준이 요구하는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의 관점에 반할 뿐만 아니라,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효적 대안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소년 비행 원인의 복잡성·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아동의 발달 특성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를 확대해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고, 만 14세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구금하지 않을 것을 한국에 권고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이번 국무회의 보고에서 형사미성년자 범죄 건수가 매년 증가(2021년 대비 2025년 80%↑)하고 있는데, 특히 성폭력(강간·추행)(2021년 대비 2025년 85%↑) 건수도 함께 증가해 형사미성년자 범행의 죄질이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의 저연령화·흉포화 경향을 근거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민변은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과 법무연수원 범죄백서에는 촉법소년 통계와 검찰을 거치지 않는 통고사건 통계가 누락돼 있고, 범죄소년 총수에는 법원의 불처분 결정과 무죄 판결 자료까지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행정처 사법연감 역시 죄명별 소년형사사건과 소년보호사건을 구분해 파악할 수 없어, 쟁점이 되는 13~14세 청소년의 유형별 범죄 발생 건수나 경중, 증감 추이 등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역시 2022년 10월 "소년범죄의 저연령화 및 흉포화를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형사책임연령 '숫자' 못지않게 중요한 '제재 수위'
법무부는 또 민법상 성년 연령이 과거 20세에서 2011년 3월 19세로 개정됐고, 공직선거법상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도 하향(각 20→19→18세, 25→18세)됐는데 형법만 1953년 제정 이후 70년 넘도록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연령 하향의 근거로 들었다. 이 차관은 "13세 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논거 중 하나는 중학교 1학년생이 13세이기 때문에 중학생부터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가져가자는 주장"이라고 했다.
다만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11월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의 쟁점' 보고서를 통해 "민법 또는 공직선거법상 연령 하향 규정은 해당 연령자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지, 13세 소년이 형사책임을 질 만큼 성숙했는지와는 무관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해외 입법례로 미국은 형사미성년자 연령 상한을 7~16세 범위에서 주마다 다르게 규정하고 있고, 영국·호주 10세, 프랑스 13세, 독일·일본 14세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입법조사처는 "해외 입법례를 고려함에 있어 형사책임연령만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해당 연령 소년에게 부과될 수 있는 처분은 각국의 소년사법제도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소년법상 형사미성년자인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대해서는 사회봉사명령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호처분이 가능하다. 소년원 송치라는 구금 처분의 경우 우리나라는 10세부터 부과되지만, 일본은 대략 12세, 독일은 14세부터 가능하다.
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는 10세부터 소년원 송치라는 구금 처분을 포함한 대부분의 보호처분을 부과할 수 있어 현행 제재 수준이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 방안의 필요성과 소년의 건전한 육성이라는 소년사법의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검토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도 2023년 4월 국회에 제출한 검토 의견서를 통해 "현행법상 13세 소년에게 부과되는 보호처분이 형사처벌에 비해 결코 경미하다고 할 수 없다"며 "가정환경 개선이나 정신질환 치료 등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촉법소년 연령만 낮추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결국 이번 논의의 핵심은 단순히 '13세냐 14세냐'의 문제가 아니라, 처벌 강화가 소년범죄를 줄이는 실효적 수단인지에 대한 검증이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2007년과 2018년, 2022년에도 추진됐지만 찬반이 팽팽히 맞서며 번번이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가 두 달간의 공론 절차를 통해 통계의 신뢰성과 제재 수준, 예방 정책의 실효성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