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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5가 닦은 길, 전기차가 이끈다" 르노코리아, '부산발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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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2000년 '삼성차' 부도 위기 딛고 26년, 르노그룹 5대 전략 거점으로 우뚝
'폴스타 4' 등 프리미엄 EV 생산, 2만 명 고용 지탱하는 부산 경제의 심장
단순 제조 넘어 '미래차 생태계' 견인, '오로라 프로젝트'로 500만 대 정조준

르노코리아 수출 물량 선적. 르노코리아 제공르노코리아 수출 물량 선적. 르노코리아 제공
지난 12일, 부산 강서구 신호동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잠시 멈췄다. 2000년 회사 출범 이후 26년 만에 '400만 번째' 차량이 생산 라인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전신인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와 매각이라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관통해 온 부산공장이, 이제는 유럽 자본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한 '글로벌 전략 기지'로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추진 중인 미래차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오로라(Aurora)'로 명명했다. 여기엔 르노코리아의 절실한 철학이 담겨 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새로운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전환의 순간'에 서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르노코리아는 내수 부진과 글로벌 공급망 위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그들은 침체에 빠지는 대신 '오로라'라는 이름 아래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 전기차로 이어지는 신차 라인업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SM5'의 향수에서 '폴스타 4'의 첨단으로

400만 대의 궤적은 부산 산업 구조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초창기 부산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SM5'는 부산공장의 기초 체력이었다. 이후 북미 수출의 돌파구가 된 '닛산 로그'를 거치며 부산공장은 글로벌 품질 표준을 몸에 익혔다.

이제 공장의 주인공은 '그랑 콜레오스' 하이브리드와 스웨덴 프리미엄 전기차 '폴스타 4'로 교체됐다. 특히 폴스타 4의 부산 생산은 상징적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북미 시장용 프리미엄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것은, 부산공장이 르노그룹 내 '단순 하청 공장'이 아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핵심 파트너'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르노코리아 제공르노코리아 제공

2만 명의 일자리, 부산 수출의 20%를 짊어지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지역 경제의 '생명선'이다. 부산지역 전체 수출액의 15%에서 최대 20%를 차지하는 이 공장이 멈추면 부산항의 물동량이 휘청인다. 부산·경남 지역 협력업체 165곳과 이곳에서 생계를 잇는 노동자 2만여 명에게 르노코리아는 곧 삶의 터전이다.

최근 르노코리아가 추진 중인 '오로라 프로젝트(미래차 신차 개발 사업)'는 지역 부품업체들에게도 거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엔진부품을 만들던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배터리 팩 케이스를 만드는 '미래차 부품사'로 강제적이고도 필연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연함이 만든 '메이드 인 부산'의 경쟁력

부산공장은 연간 최대 30만 대의 차량을 찍어낼 수 있는 견고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체급은 이미 글로벌 수준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부산공장의 최대 강점은 '유연성'이다. 세계 최고의 혼류 생산 시스템은 한 라인에서 내연기관차부터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까지 8종의 차를 동시에 찍어낸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 하이브리드를 늘리고, 다시 전기차 시대가 오면 즉각 대응하는 '전술적 민첩함'이 변화무쌍한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에서 부산공장을 살아남게 한 비결이다. 니콜라 파리(Nicolas Paris) 사장은 "400만 대 생산의 저력은 임직원들의 품질 고집에서 나왔다"며 "르노그룹의 '인터내셔널 게임 플랜 2027'에서 부산공장은 가장 중요한 수출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르노코리아 제공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르노코리아 제공

500만 대를 향한 과제 '로컬의 세계화'

누적 생산 400만 대의 성취가 부산공장의 '제조 경쟁력'을 증명했다면, 다가올 500만 대 시대는 부산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두뇌'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단순히 차를 잘 만드는 '조립 공장'을 넘어, 차를 설계하고 미래 기술을 제안하는 '연구개발(R&D) 거점'으로서의 지역 안착이다.

그동안 부산의 자동차 산업은 '탄탄한 제조 기반'이라는 하드웨어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미래차 시장은 자율주행, 커넥티비티(연결성), AI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다. 르노코리아가 추진하는 '오로라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연구 인력을 부산으로 끌어당기는 'R&D 로컬화'가 필수적이다.

부산공장이 미래차 설계의 전초기지가 된다면, 지역 인재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아도 세계적인 엔지니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산발 혁신'을 주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르노코리아가 부산의 고용 지표를 채우는 기업을 넘어, 지역의 지적 자산을 일구는 '글로벌 캠퍼스'로 진화함을 의미한다.

가덕도신공항과 북항 그리고 '모빌리티 게이트웨이'

산업적 측면에서 르노코리아의 미래는 부산의 도시 인프라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2035년 개항 목표인 가덕도신공항은 고부가가치 미래차 부품의 항공 물류 길을 열어줄 전망이다. 여기에 북항 재개발 지구의 스마트 시티 비전이 결합하면, 부산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기술을 연구하고, 전 세계로 수출하는 '트라이포트 모빌리티 허브'의 완성을 볼 수 있다.

결국 르노코리아의 '500만 대'는 수치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르노그룹의 글로벌 자본과 부산의 정교한 노동력, 그리고 지역의 혁신적인 연구 역량이 삼위일체를 이룰 때 르노코리아는 비로소 '프랑스 기업의 한국 지사'가 아닌, 부산에 뿌리를 둔 '글로벌 모빌리티 선도 기업'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누적 400만 대 달성이라는 '제조 성과'를 넘어, 부산이 미래차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공격적인 산업 체질 개선과 물류 인프라의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르노코리아 제공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르노코리아 제공
한국폴리텍대학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류도정 교수는 "현재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단순 주행에서 AI 기반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는 급격한 전환기에 있다"며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개별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산시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강조했다. 그는 "부산은 자동차 부품과 조선 산업 등 탄탄한 레거시(기존) 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래차 소프트웨어와 AI를 이식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조용한 수준이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미래 산업 생태계 형성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시 차원에서 산업 구조를 과감하게 전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지역 인재 육성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나 AI 전장 부품 같은 고부가가치 IT 품목은 배로 실어 나르는 해운 물류와 맞지 않는다. 속도가 생명인 IT 기반 자동차 산업이 부산에 뿌리내리려면, 신공항 건설과 연계해 첨단 산업 물류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공항이라는 하늘길과 미래차라는 혁신 산업이 맞물릴 때 비로소 부산에 새로운 산업 황금기가 열릴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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