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8년 만에 대형 국가연구개발(R&D) 투자·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기존 국가재정법 기반의 예비타당성조사 체계를 벗어나,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한 R&D 맞춤형 사전점검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기부는 12일 제5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대형 R&D 사전점검체계 전면 개편 방안'이 최종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과학기술기본법 및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되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2008년 이후 18년간 유지돼온 국가재정법 기반 R&D 예타 체계는 종료되고,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R&D 특화 점검체계로 전환됐다.
과기부는 그동안 예타가 평균 2년 이상 소요되면서 대형 R&D의 적시 추진을 저해했고, 경제성 중심 평가가 연구개발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R&D 사업에 경제성 입증을 요구하면서 연구자들이 연구보다 행정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대형 R&D 기준 1천억 원으로 상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개편안에 따라 사전점검 대상이 되는 '대형 R&D' 기준은 기존 500억 원 이상에서 1천억 원 이상으로 상향된다. 글로벌 기술 경쟁 심화에 따른 대규모 집중 투자 추세와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한 조치다.
또한 모든 R&D 사업을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하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사업 성격에 따라 △연구형 △구축형으로 구분해 맞춤형 점검 체계를 적용한다.
우선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 등 전략기술 개발이나 기술사업화·인력양성 등 연구개발 중심 사업은 '연구형 R&D'로 분류된다.
1천억 원 이상 신규 연구형 사업은 예산 심의 전에 '사업기획점검'을 받는다. 점검은 예산 요구 전년도 11월부터 약 5개월간 진행되며, 3월 중 각 부처에 결과가 통보된다.
기존 예타처럼 사업의 당락을 가르는 구조가 아니라 사업목표와 내용, 유사·중복성, 규모 적정성 등 기획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둔다. 평가 항목도 경제성을 포함한 8개 항목에서 시급성·구체성·중복성 등 4개 필수 항목으로 간소화했다.
또한 개별 사업 단위가 아닌 유사 기술 분야별 '사업군' 단위 점검을 통해 사업 간 우선순위 조정과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구축형 R&D, '전주기 단계심사' 도입
대규모 연구시설·장비 구축, 연구단지 조성, 우주발사체·위성 체계개발 등은 '구축형 R&D'로 분류된다. 실패 시 매몰비용이 크고 장기간 운영비가 수반되는 만큼, 신속성보다 체계적 관리에 방점을 둔다.
1천억 원 이상 구축형 사업에는 사업 기획부터 설계, 구축까지 전주기 단계심사가 적용된다.
우선 '사업추진심사'에서는 기술 확보 여부, 대안 분석, 사업관리 계획, 예산·공정 계획 등을 점검한다. 기존 예타처럼 종합평가(AHP) 방식으로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항목별 과락제 방식으로 리스크 해소 여부를 판단한다.
특히 우주발사체나 첨단 연구시설처럼 기술개발이 선행돼야 하는 사업은 총사업비를 일괄 확정하지 않고, 기술개발 및 설계 예산을 먼저 확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도록 했다.
입지도 사전 확정하지 않고 후보지와 선정계획만 제출하도록 해 기술 검증 이전에 입지가 먼저 결정되는 문제를 방지한다.
이후 설계가 완료되면 '설계적합성심사'를 거쳐 기술 확보 상태와 시공 가능 여부, 입지 적정성을 종합 점검한다. 이 단계에서 전체 사업 규모와 부지가 확정된다. 필요할 경우 사업 중단도 가능하도록 해 재정 건전성을 강화했다.
사업 진행 중 물가 상승, 환율 변동, 기술 변경 등으로 계획 수정이 필요할 경우에는 '주요계획변경심사'를 통해 변경 적정성을 점검한다. 전면 재검토 또는 단가 중심 검토 등 사안별로 유연하게 적용한다.
올해는 전환기…점진적 시행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현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26년은 전환기로 운영된다.
연구형 R&D는 2027년도 예산안 편성 시 사업기획점검 기간을 예외적으로 조정해 적용하고, 구축형은 2026년 하반기부터 단계심사를 본격 시행한다.
다만 민간 협의체를 통한 과학기술적 수요 도출은 2026년 시범 운영 후 2027년부터 점진 적용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은 "18년 만의 대형 R&D 투자 심의 체계 전면 개편은 신속성과 재정 투자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중대한 전환"이라며 "글로벌 수준의 R&D 투자·관리 시스템을 갖춰 기술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국으로 도약할 초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