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내 욕이 올라올까 불안해서 결국 SNS를 시작했어요…."
중학교 3학년생 정모군은 또래 사이에서 소셜미디어(SNS)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서'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 오히려 SNS에 접속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 박모군은 "SNS를 안 하면 따돌림은 아닌데, 계속 한 박자씩 늦어진다"며 또래 관계 유지에 SNS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약속이나 행사, 유행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SNS를 통해 공유되다 보니 계정이 없으면 대화에 끼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SNS가 선택적 소통 수단을 넘어 또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필수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청소년들 불러 실태 점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는 지난 5일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중·고등학생들을 초청해 SNS 이용 실태와 과의존 문제,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청소년 당사자들의 경험을 먼저 듣고 규제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학생들은 SNS가 가진 정보 습득과 소통이라는 기능을 높게 평가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 최모양은 "뉴스를 길게 보는 게 부담스러운데, SNS를 통해 짧게 접하면 사회 이슈를 알기 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인정했다.
SNS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SNS를 "습관처럼 켜게 되는 공간"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SNS 고유의 '알고리즘'을 문제로 지적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 박모군은 "좋아요가 많은 댓글이 위로 올라가고 비슷한 의견만 계속 보여주다 보니 생각이 한쪽으로 몰리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특정 관점이 반복 노출되며 확증 편향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외모와 체형, 일상까지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 정서적 피로감이 쌓인다는 호소도 나왔다. 한 학생은 "연예인 다이어트 영상이나 몸매 보정 콘텐츠가 계속 뜨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이버 폭력과 허위정보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생 이모군은 "댓글이나 스토리로 뒷담화가 오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친구들이 많다"며 "SNS를 안 쓰면 이런 걸 모를 수 있지만, 또 안 쓰면 무슨 얘기가 도는지 몰라 더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호주와 유럽·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청소년의 SNS 사용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호주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사실상 금지했다. 스페인은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접근을 기본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예고했고, 프랑스 역시 15세 미만 이용 금지를 추진 중이다. SNS를 성장기 청소년의 정신건강 악화와 중독, 사이버 폭력과 성범죄 노출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전면 차단'엔 신중한 한국
우리나라는 아직 '전면 차단' 논의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일단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가다듬고 있다.
김종철 방미통위원장은 "아동·청소년의 SNS 문제는 일방적인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며 "실제 이용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SNS 이용률이 이미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단순 차단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5년 발표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SNS 이용률은 70.1%에 달하며 이 중 약 절반인 48.8%는 SNS에 매일 접속하는 상시 이용자에 해당한다.
한국이 해외처럼 강력한 전면 규제로 바로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이라는 기본권 문제다. SNS는 단순한 오락 수단을 넘어 소통과 자기표현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어 연령을 기준으로 한 일괄 차단은 위헌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효성 문제도 걸림돌이다. VPN 우회(접속 국가나 이용자 위치를 숨겨 해외 이용자로 위장하는 방식), 계정 정보 조작 등 회피 수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적 차단이 실제 이용 감소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규제가 오히려 이용을 음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외교 부담 역시 고려 대상이다. 국내에서 이용되는 주요 SNS 플랫폼 상당수가 해외 빅테크 기업인 만큼 강한 규제가 자칫 국제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정책 결정자들을 신중하게 만든다. 과거 게임 셧다운제가 실효성 논란 끝에 폐지된 경험 역시 정부와 국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5일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함께 만들어가는 아동‧청소년 SNS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제공방미통위는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향후 정책 검토와 제도 개선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 청소년과의 소통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공론화 방식으로 확대해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종철 위원장은 후보자 시절이었던 지난해 12월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소년 보호 문제는 중요한 과제 중에서도 핵심 과제"라며 호주식 16세 미만 SNS 차단 방안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이후 논란이 일자 방미통위는 "전면 제한을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며, 부모 동의 강화 등 다양한 대안을 함께 살펴보겠다"고 해명했다. 플랫폼 책임 강화와 교육 중심의 '한국형 해법'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