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종민 기자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날로 국회는 해산됐고 불과 열흘 뒤 새로운 헌법개정안이 공고됐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시점인 12월 23일, 박정희는 계엄으로 만들어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독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되었다.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연 것이다. 전형적인 친위쿠데타. 그리고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의 장기집권은 끝났다.
유신 쿠데타는 '위로부터의 내란(coup from the top)'이다. 쿠데타 역사에서 '아래로부터 쿠데타'냐, 아니면 '위로부터의 쿠데타'를 꼭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지역이든, 어느 시대이든 쿠데타는 역사의 반역이고 후퇴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하극상으로 일어난 12.12군사반란도 역사를 시민들의 피로 물들였다. 모든 쿠데타는 나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장담할 수 없으나 대한민국 정도의 체제이면 이제 '아래로부터의 쿠데타'는 일어나기 어렵다. 12.3 내란도 윤석열의 계엄에 군 내란세력이 적극 동참했지만, 소극적으로 참여한 군인들의 행동 덕분에 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위로부터의 내란'이다. 집권자는 반드시 군통수권자일 수 밖에 없다. '위로부터의 내란'은 필연 장기집권과 권력독점을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다. 친위쿠데타, 즉 '셀프(self) 쿠데타'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정질서는 무참하게 무너지고 무소불위로 힘을 강화한 권력자는 필시 왕노릇을 하게 돼있다.
전 국무총리 한덕수에 대한 내란재판에서 이진관 판사는 "12.3 내란이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가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됐다.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가 많았다.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범죄다.
한덕수에 대한 '23년형'의 처단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특검은 15년을 구형했다. 대략 작량감경이나 피의자의 공직 전력 등을 감안하면 7~8년 정도의 형을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진관 판사는 "한덕수의 내란 가담행위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내란'인 전두환의 쿠데타를 심판한 대법원 양형은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장래 대한민국 헌법체계 상, '위로부터의 쿠데타'가 훨씬 위험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내란 성공을 은근 기대하고 가담하는 고위공직자의 처신에 대해 철퇴를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읽힌다.
노무현 정부 경제부총리 시절의 한덕수 전 총리
한덕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압도적 공직 경력을 자랑한다. 그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사람을 손꼽는다면 고건, 반기문, 이원종 등일 것 같다. 그 다음은 직권남용과 국정원법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태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1970년 공무원으로 임용돼 50년 동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김앤장 고문(민간의 대표적 공직(?))으로 재직했고 다수의 훈포장도 받았다. 공직경력 끝물에서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외쳤고 대통령에 도전했다.
법정에서 확인된 그의 거짓은 대표 공직자의 이력만큼 화려하다. 그는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비상계엄 문건을 숨겼다.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공문서도 허위로 작성했다가 폐기했다. 헌법기관 심판과정에서조차 위증한 50년 공직자다. "계엄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위증을 했다. 사실은 국무위원들과 공유를 했는데 말이다. 그의 위증으로 헌재 결정문의 일부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판단이 포함돼 있다. 재판에선 CCTV와 같은 객관적 증거를 보고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한 인물이다.
한덕수의 23년형은 고법에서도 그대로 유지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고법이 '위로부터의 내란'이나 내란에 성공을 기대하고 가담하는 '영혼없는 공직자'에 대한 추상같은 처벌의지를 간과한다면 그 형량은 줄어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내란중요임무종사자'라는 혐의만은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중요한 건 한덕수에게 23년형은 '형'도 아니라고 본다. 그는 앞으로 더 가혹한 형과 질문들을 받을 것이다. 12.3 계엄과 내란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1천년 이상 기록돼 흘러갈 것이다. 단지 역사의 기록만이 아니다. 고위공직자가 '어떻게 운좋게 영혼없이 지낼 수 있는가'에 대한 사례로 한덕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를 것이다.
영의정인 '국무총리의 처신은 과연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수없이 받을 것이다. 장삼이사는 우왕좌왕해도 되지만 고위공직자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행·불행'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12.3 계엄이 역사를 다시 세우고 있다. 한덕수에 이어 1천년의 형벌을 받는 내란 공직자들이 뒤이어 줄줄이 쏟아져 나올텐데 진정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