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엔 첩첩이 통제선이 늘어섰다. 철조망이 둘러쳐졌고 대형버스들이 관저 진입로를 가로막았다. 팔짱을 낀 경호처 공무원들은 인간 장벽을 만들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무원들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관저 앞에서 집회를 벌이던 지지자들에게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전했다. 체포영장을 발부한 사법부도 위헌·위법하다며 경호처를 앞세워 정면으로 맞섰다.
16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류영주 기자구중 관저 속에서 결사항전을 외쳤던 그는 1년 뒤, 누구에게나 공개된 법정에 섰다. 흰 셔츠에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가슴팍에는 수용번호 '3617'이 적힌 명찰을 단 채였다. 재판부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피고인, 일어서십시오." 이어 그가 일어서자 "주문,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고 실형을 선고했다. 법정을 떠날때까지 윤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등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적법하게 발부된 영장임에도 윤 전 대통령이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 등을 동원해 체포·수색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경호처 공무원들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의 적법한 영장 집행을 저지하거나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며 "대통령으로서 가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남용해 일신의 안위와 사적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경호처 소속 공무원들을 사실상 사병화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체포방해 혐의의 중대성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무력화시키고 국가의 법질서 기능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었던 피고인의 범행으로 훼손된 법치주의를 바로 세울 필요성이 있는 점 등을 더해 볼 때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이 일부 국무위원에 대해서만 소집을 지시하면서, 소집 통보를 받지 못한 국무위원 7명의 심의권을 침해한 혐의, 경호처를 통한 비화폰 현출 방해 등 혐의와 비상계엄 해제 후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후 계엄선포문에 윤 전 대통령이 서명한 허위공문서작성죄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 긴급권의 행사인 계엄 선포는 전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다각도에서 침해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할 것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른 수단과 방법이 없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며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 질서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데도 절차적 요건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으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헌정 질서 파괴 뜻이 없었다'는 취지로 허위의 PG(프레스 가이던스)를 외신에 전파하도록 지시한 혐의는 무죄로 봤다. 또 통지를 받고 미처 출석하지 못한 의원에 대해서는 심의권 침해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박상우·안덕근 전 장관에 대해서만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의 법감정을 충족시키진 않았지만 법리적 사실관계를 정리한 선고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헌환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가 사실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을 했고 수사권 등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면서도 "국민의 법 감정 관점에서 볼 때 형량을 5년으로 선고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를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당초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총 징역 10년을 구형했지만 일부 무죄 사정 등이 반영되면서 구형의 절반인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다만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이 '초범'이라는 점을 양형에서 고려한 것을 두고 기계적 감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등은 반복을 전제로 한 범죄가 아닌데, 일반 범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앞서 재판부는 "허위공문서 작성 등 범행의 경우 적극적으로 범행을 주도했다곤 보기 어렵고 형사처벌 전력을 받은 점이 없는 초범인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사건의 '본류'에 해당하는 내란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선고는 다음 달 19일 오후 3시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