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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호원에서 '하나님의 경호원'으로…김규현 장로의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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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청와대에 예배가 생겼다"…골프장 기도 한 달 뒤 '월요예배' 지시의 뒷이야기
10·26 생사의 갈림길에서…"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믿을 분"
"총알받이 신앙, 선 자리 경호"…교회와 공동체를 지키는 헌신의 원리 강조

■ 방송 : 경남CBS 라디오 'CBS사랑방 토요초대석' (낮 12:05~13:00)
■ 주파수 : FM 106.9MHz(창원 등 경남 지역)/FM 94.1MHz(진주 등 서부경남 지역)
■ 진행 : 최태경 아나운서
■ 대담 : 김규현 장로(하남교회/김해무드병원, 위더스병원 회장)

김규현 장로 제공 김규현 장로 제공 
△최태경 아나운서> CBS 사랑방 토요초대석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조금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삶에는 누구도 모르는 헌신이 숨어 있기 마련인데요. 국가 원수의 경호원으로서의 삶은 어떨까요? 가장 가까이에서 대통령을 지키고 보호하는 삶은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고, 또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그런 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이끄시고 사용하셨던 그 은혜의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모신 분은 바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지금은 하나님의 경호원으로 거듭난 분입니다. 김해무드병원과 위더스병원의 회장이신 하남교회 김규현 장로님이신데요. 경호원에서 의료기관의 대표로, 국가의 현장에서 지역의 이웃을 돌보는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의 그 특별한 인도하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장로님이 걸어온 믿음의 길을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김규현 장로> 안녕하세요?
 
 △최태경> 많은 분들이 '대통령 경호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기해 하시는데요. 먼저 장로님의 신앙적 배경이 궁금하거든요. 5대째 신앙을 이어온 가문이라고요?
 
▲김규현> 네, 그렇습니다. 저는 증조부 때부터 진영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 할머니의 신앙 유산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태경> 그렇군요.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규현> 주일 성수와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었어요. '주일날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나가야 된다'는 것과 '목사님을 보이는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신앙생활하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내 삶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태경> 할머님의 신앙적 유산을 물려받아서일까요? 목회자를 섬기는 자세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김규현> 제 고향은 김해 진영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에는 큰 단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러운지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다른 건 다 주셔도 그 단감만은 근처도 못 가게 하는 거예요. 우리 할머니가 어떤 분이신가하면 우리 아버지가 3대 독자입니다. 근데 우리 할머니의 기도로 인해서 자손들이 번창했어요. 4남 4녀예요, 손자 손녀들이. 그중에 제가 장자예요.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께서는 (제가) 해달라는 건 다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단감 만은 금단의 열매입니다. 언제 따먹을 수 있느냐? 목사님이 가을 대심방 때 우리 집에 오셔서 먼저 따 잡수셔야 그 다음에 우리 차례가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할매, 할매. 우리 집에 목사님 언제 심방 오신다 카더노?" 그러면 "우리 집이 제일 머니까 맨 끄트머리에 오신다 안 카나." 저는 서서 안 오시는 목사님을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날이 돌아온 거예요. 우리는 1년에 두 번을 잔치를 합니다. 성탄절과 목사님 심방 오실 때예요. 그날은 돼지까지 잡아요. 찰떡, 쑥떡, 시루떡, 감주 뭐…. 성탄절은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거지들을 위해서 합니다. 빈 깡통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 한 술 주십시오' 해서 다리 밑에 펼쳐놓고 나눠 먹던 그 시절이에요. 또 한 번 잔치 있죠. 목사님 심방 오실 때에요.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까만 머리 다시 감고, 빗고, 감고, 빗고, 우리를 아침 일찍 깨웁니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거라. 오늘 우리 집에 목사님 심방 오신다 안 카나.' 목욕하고 새 옷 갈아입으라고요. 그리고 진영 장날에 우리 할머니가 가마니 짜서 팔아서 사 오신 검은 새 고무신, 그것이 좋아서요. 마루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리곤 드디어 마당을 밟는 거예요. 우리 집에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방앗간 처마 밑에 동생들과 함께 아침밥도 안 먹고요. 쪼그려 앉아서 목사님을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저 멀리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좋아서 "목사님!" 하고 껑충껑충 뛰어가죠. 어느새 목사님도 우리를 발견하고요. 팔을 벌리고 마주 달려옵니다. 그 중간에 조그마한 낙동강 다리가 있었어요. 만나는 거예요.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견우 직녀처럼요. 목사님은 우리를 안고 문으로 들어 서셨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버선발로 안방에서 뛰어 나오시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주걱을 들고 뛰어 나오시고,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끼 꼬다가 새끼줄 들고 뛰어 나오십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1년에 한 번씩 맞이하는 지금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겉으로 목사님은 고개만 한번 끄덕하시고는 우리를 안고 감나무 밑으로 먼저 달려가세요. 잘 익은 감을 똑 따서 우리 입 속으로 먼저 쏙 넣어주십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따주신 단감을 잔뜩 들고 목사님 무릎 위에서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신앙 교육을 가르치셨던 이름 석 자도 못 쓰시는 우리 할머니가 바보였느냐? 천만의 말씀이에요. 목사님을 보이는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시던 우리 할머니의 그 신앙 유산은 지나고 보니까 목사님에게 영향 미친 게 아니었어요. 다 내게 유익이 되었다는 사실이죠.  

김규현 장로 제공
△최태경> 그렇군요. 그럼 장로님께서는 원래 경호원이 꿈이었나요? 어떤 계기로 대통령 경호원이라는 길을 걷게 되셨는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규현> 박정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때는 내가 중학교 시절이었어요. 작은 키에 색안경을 딱 끼고 지휘봉을 잡고 활보하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박종규 소령과 차지철 대위가 무척 부러웠지요. '나도 저런 보디가드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아마 그때 꿈을 꾼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너는 훌륭한 재판관이 되라'고 했어요. 그래서 억울하고 약한 자들을 도와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동아대학교 법대를 들어갔습니다. 근데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이 너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도 선수 생활을 했으니 유도를 하라는 거예요. 그 당시 동아대학교 유도는 세계를 제패할 때죠. 훌륭한 재판관은 못 돼도 경호원은 되었던 것 같아요.  

△최태경> 장로님,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대통령 곁을 떠날 수가 없는 직업이잖아요.  '주일 성수가 가능했을까?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좀 궁금해지는데요.  

▲김규현> 매우 어렵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를 참 좋아하셨어요. 공휴일만 되면 어김없이 골프장으로 행차를 하셨습니다. 경호원이 대통령과 함께 야외로 나가는 것, 참 좋은 날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부담이 있었어요.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그날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관악골프장으로 행차를 하셨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잔디밭에 빙 둘러 앉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소주를 꺼냅니다. 외무부 장관 차례가 왔을 때예요. "임자, 한 잔 받아. 수고가 많아." 했더니 "각하, 저는 술을 할 줄 모릅니다." 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사양하기 참 어려운 자리죠. 잠시 주변의 분위기가 긴장됐어요. 그때 대통령은 껄껄 웃으시면서 "그렇지, 임자는 미국 생활도 많이 했지." 아마 미국 사람들은 다 예수 믿는 줄 아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예수님도 포도주는 마시지 않았는가?" 하시면서 뒤를 돌아보시고는 "다음에는 포도주도 좀 준비해 오게." 이래서 다 웃었어요. 바로 그런 담소를 나눈 후 바로 그날이었어요. 드디어 골프가 시작됐습니다. 또 11시 가까이 되니 사방에서 땡그랑 땡그랑 교회 종소리가 막 울려 퍼집니다. 나는 그 종소리를 들으면 경호원 팽개치고 당장 교회로 달려가고 충동을 느꼈어요. 그날도 경호를 하다 말고 잽싸게 옆에 있는 소나무 아래로 달려갔어요. 소나무를 엉거주춤 붙잡고 기도했죠. 뭐 기도를 한다 해도 1분도 채 못 합니다. 마치려고 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경호원! 경호원!'하고 부르는 거예요. 돌아보니 대통령이었어요. "어디가 아픈가?", "아닙니다. 각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그래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가?", "네, 각하. '이 나라의 민족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 대통령 각하 오늘도 무사히 돌아가시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런 기도 자주 했거든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요. 저쪽에 있는 차지철 경호 실장을 부르는 거예요. 달려옵니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임자 우리 청와대에 기도하는 곳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날에는 그것으로 끝이 났어요. 근데 약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조회를 한 10분 정도 해요. 뭘 하는 시간이냐면 경호원 선서를 하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그날은 총회가 끝난 후에 특별 지시가 있겠다는 거예요. 무슨 일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역사적인 날이었어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청와대 경호실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라.'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응답을 해 주신다는 걸 그때 내가 경험했습니다.  

김규현 장로 제공
△최태경> 얼마나 간절하게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셨으면 바로 한 달 뒤에 기도 응답이 일어났네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장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경호원으로서도 그리고 신앙인으로서도 그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셨구나 그런 생각 많이 들거든요. 이런 장로님의 모습이 아무래도 주변에도 영향을 많이 줬을 것 같거든요? 감동도 많이 줬을 것 같고. 그런 사례나 기억나시는 에피소드가 혹시 있으신가요?  
▲김규현> 지금도 우리 후배들이요. 후배들한테 '김규현 경호관'이러면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래요. 그런데 '예수쟁이 김규현'하면 "아! 그 선배." 하고 당장 알아 맞힙니다. 예수쟁이라는 그 이름이 지금까지도 딱지가 붙어 있다는 거죠. 예수쟁이라는 그 별명이 그렇게 쉽게 붙는 거는 아니잖아요. 우리 할머니도 예수쟁이 할머니였는데 어느 단체나 조직이나 회사도 마찬가지죠. 예수쟁이의 별명이 붙기 위해서는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1시간 일찍 출근을 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어요. 근데 1시간 일찍 출근하는 건 조금 일찍 일어나면 돼요.

△최태경> 예수쟁이라는 별명을 장로님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어떤 단체나 어떤 모임이나 공동체 안에서 예수쟁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대표' 그런 뜻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장로님께서 예수쟁이라는 별명에 자부심을 갖고 경호원 생활을 하시고, 또 동료들 안에서도 중심을 잡아가시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을 보이면서 생활을 하시지 않으셨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경호원 업무를 이렇게도 표현을 하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일이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 시절에 하나님께서 장로님께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경호원으로서 생활을 하도록 이끄셨는지 궁금합니다.

▲김규현> 아무 데나 충성하는 게 아니잖아요. 반드시 충성의 대상자가 (우리로 하여금) 충성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우리 경호원들은 저분을 위해서 충성할 수밖에 없고, 총알받이 할 수 밖에 없다 하는 서로의 믿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경호원 선발 시험 때입니다. 그 어려운 시험을 다 통과하고 이제 강당에 다 모였어요. 조금 있으니까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딱 한마디 하고 나가시는 거예요. "축하하네. 지금부터 나를 위해서 충성을 다해 주게. 나는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서 이 몸 바쳐 충성을 다하겠네." 하고 나가시는 거예요. 조금 있으니까 실장이 다시 들어와요. "차렷!" 하더니요. '지금부터 자네들은 대통령을 위해서 죽어줘라. 대통령을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충성을 다하고 사명감 다 하라는 거예요.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이미 한 몸 불사르기로 각오가 돼 있네' 이런 말씀을 딱 하시는 거예요. 나는 두 분의 말씀을 듣고 탁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떠오르는 겁니다. 예수님도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주마. 대신 너희들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이 부딪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죽어주는 게 아니에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죽는 겁니다. 이런 걸로 연결되니까 총알받이 나 하나 죽는 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게 가장 영광스러운 거다, 이런 마음이 되지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요. 목사님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봤습니다. 만일에 목사님이 교회에 부임을 했을 때, 성도들 앞에서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성도님들은 나를 위해서 충성을 다해 주세요. 나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이 몸 하나 다 바치고 충성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을 때 과연 성도님들은 이 목사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우리가 목사님에게 충성을 다하는 건 바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거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충성을 다하고 총알받이 해야겠죠.

△최태경>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태도. 그것을 직업적으로도 이어가고, 또 신앙적으로도 연결을 해서 장로님께서 경호원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까지 이어 오신 것 같습니다. 장로님, 근데 대통령 곁을 지킨다는 건 순간순간 너무 긴장이 될 것 같거든요. 장로님께서 경호원으로 지내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 순간, 잊지 못할 사건 이런 것들도 있으실 것 같거든요. 하나 정도 나눠 주신다면요?  

▲김규현> 저는 저 8월과 10월이 되면 참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납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한 날입니다. 그 다음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8월과 10월이 되면 가슴 아픈 일이 떠오를 수밖에 없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난 그날에 참 하나님이요. 나를 살리려고요.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행선지였던 삽교천 준공 행사에 수행을 하게 됩니다. 경호를 했어요. 그런데 참 그날은요. 참 신기하죠. 죽음의 사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나를요. 끈질기게 궁정동 안가로 들어가게 만들려고요. 들어간 사람은 다 죽었어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 동료들 다 죽었잖아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어요, 그날 하루요.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살짝살짝 비켜나게 했다는 거죠. 이 얘기를 잠깐 해 드릴게요. 그날은요. 우리 경호원실에는 선발대라고 있어요. 선발이라는 건 대통령이 행사에 오시기 전에 미리 1시간 전에 가서 딱 세팅을 해둬야 합니다. 경찰, 군인들이 다 해놓은 걸 경호실에서 경호원이 점검을 한 뒤에 무전을 쳐야 대통령이 옵니다. 그 선발대가 그날 내 차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마침 선발대 팀장이 집을 나오다가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도로 들어가 버린 거예요. 상황실에서는 비상이 걸려버렸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예수쟁이 김규현이 1시간 빨리 오잖아." 이게 돼 버린 거예요. 그래 내가 갔어요. 선발대로 뛰라는 거예요. 그때 나도요. 우리 차례가 아니니까 '나도 컨디션이 안 좋고 하니까 나 못 가겠소.' 하면 그만이고 그 다음 차례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내가 누굽니까? 예수쟁이 아닙니까? 내가 안 가면 그 어려운 자리에 내 동료 누군가는 한 사람이 가야 합니다. 그때는 예수쟁이가 또 해야죠. "네, 좋습니다." 딱 한 마디로 승낙하고 경호원 둘과 함께 팀장으로 갔습니다. 세 사람이 갔어요. 내가 도착했더니 경찰, 군인, 보안 다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오게 됩니다. 오고 난 뒤에 헬기에서 내린 대통령을 행사장까지 또 안내를 해야 됩니다. 근데 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대통령께서 머리가 날리니까 머리카락을 이렇게 (넘기는) 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해요. 이제 행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오찬을 하십니다. 지나고 보니까 그게 마지막 오찬이었어요. 이제 돌아와야 할 거 아닙니까? 돌아오는 데에 참 또 신기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관례가 있습니다. 선발대가 좀 일찍 와서 고생을 했잖아요. 그러면 수행했던 사람과 바꿔서 돌아갈 때는 좀 일찍 돌아간다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연히 우리 세 사람이 먼저 헬기를 타고 가야 되잖아요. 그 관례에 의해서 이제 헬기를 자연스럽게 탔어요. 무심코 딱 돌아보는데 아니 박 경호관이 얼굴이 하얀 거예요. 그래서 내가 딱 올라타려 하다가 "박 경호관, 너 얼굴이 왜 그래?" 했더니 "모르겠어. 1시간 전부터 현기증이 나고 막 쓰러질 것 같다."는 거야. 내가 누굽니까? 예수쟁이죠. 동료가 그런 걸 보고 그냥 내가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야, 네가 먼저 가서 쉬어라." 이랬더니, 나는 괜찮는데 또 내 동료 둘이 있잖아요. '우리도 고생했으니까 빨리 가야 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아니야, 너희들이 저래도 우리는 양보해야 돼. 빨리 가서 쉬어야 될 거야.' 그래서 양보를 했어요. (박 경호관이) 갈 때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김 경호관, 고마워. 내 이 은혜 반드시 갚을게." 지금 궁정동 안가로 간다니까요. 그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내가 양보를 했다는 거죠. 참 그건 기적 아닙니까? 그게 거기까지 연결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따로 삶 따로가 아닙니다. 생활 속의 신앙이 저절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죠. 저는 지금도 생각하는 건 그날 대통령은 육군 통합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호원은 실장을 비롯해 서울대학병원 영안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참 엄청난 실망을 하게 됩니다. 경호원들이 저녁에 문상을 가야 될 것 아닙니까? 문상을 갔더니요. 문상객들이 안 보이는 거예요. 왜 그러겠어요? 자기 몸 사린다고요. 거기 가서 찍히면 또 다음 일이 있잖아요. 이런 것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요. 나는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정말 인간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구나, 조석으로 변하는 저 인간의 마음 믿을 수가 없다. 오직 영원불변한 하나님 외에는 믿을 자가 없구나.'

김규현 장로 제공
△최태경> 우리 현대사에서도 잊지 못할 그런 사건들의 현장에 장로님께서 계셨는데, 그 사건들 속에서도 또 인간의 나약함, 비정함 이런 것들을 보셨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또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그런 사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장로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철학? 철칙?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셨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걸까요?  

▲김규현> 제가 철칙이나 원칙이나 이런 게 있다면 '총알받이 신앙'입니다, 한마디로. 총알받이 신앙. 대통령과 목사님, 경호원과 성도, 이것만 잘 유지되면요. 우리 한국 교회 금방 부흥됩니다. 나는 항상 그걸 가지고 있습니다. 문세광이 총을 쏠 때요. 2탄과 3탄 발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총알처럼 튀어나온 경호원이 있었어요. 박종규 경호실장이었어요. 이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저 용감한 경호실장 '피스톨 박'. 근데 박수 칠 일이 아니었잖아요. 그거는 경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빵점 경호예요. 결국 합창단에서 합창하고 있던 여고 2학년 장봉화 양만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에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는요. 작전과 무술과 사격 면에서는 세계에서 최고였어요. 그러나 아무리 빠르고 정확한 사격 기술을 가진 경호원들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인이 달려 나오면서 총을 쏠 때는 늦어요. 자, 이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하느냐? 쾅 소리가 나면요. 경호원은 먼저 대통령을 내 몸으로 막아줍니다. '육탄 방어'를 해야 총알받이가 되죠. 유사시에 경호원들에게는 대통령은 만지기도 어려운 귀하신 옥체가 아니에요. 집어 던져서라도 보호해야 할 경호 대상물일 뿐이죠. 그렇다면 빵점 경호에 대한 해답이 나왔잖아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문세광을 대적하기에 이미 때가 늦어버렸어요. 저 육영수 여사 앞으로 달려갔어야 하는 거예요. 육 여사를 내 몸으로 막아줘야 되는 거예요. 그 총알받이 원리가 있습니다. 총알받이 원리는 내가 죽고자 하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린다는 원리입니다. 반대의 원리가 있겠죠. 내가 살고자 하면 나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는다는 원리예요. 기독교의 원리와 같아요. 기독교도 내가 죽어야 살리는 종교 아닙니까? 내가 빳빳하게 살아있는데, 누구를 살리겠다는 거예요? 희생의 종교, 사랑의 종교,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경호원을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었잖아요. 목표는 딱 둘입니다. 대통령 아니면 영부인이었어요. 그렇다면 경호원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총 쏘겠어요? 포기하고 말겠죠. 다 산다는 원리를 말하는 겁니다. 교회가 부흥될 때는요. 반드시 총알이 날아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부흥되고 성장할 때는 총알이 날아온다니까요. 그런데 그 목표는요. 목사님 아니면 대부분 사모님이에요. 회사도 회장 아니면 이사장이야. 대표자야, 사장이야. 외부의 적도 무섭지만 내부의 적이 더 무서워요. 박정희 대통령 누구한테 당했어요? 외부의 적 김일성한테 당한 게 아니에요. 자기가 길러주고 믿고 신뢰했던 중앙정보부장한테 당한 겁니다. 어떤 교회는요. 목사님이 앉아 있습니다. 총을 겨눕니다. 그러면 앞에는 누가 있게요? 당연히 기라성 같은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직분자들이 에워싸겠죠. 근데 저 총을 겨누는 사람이 '너는 비켜서라'는 겁니다. '안 비키면 네가 다쳐' 이러면 겁이 슬슬 나거든요. 살짝 비켜 버렸어요. '목사님, 맞으세요. 목사님만 책임지면 다 해결됩니다. 회장만 책임지면 다 해결됩니다. 이사장만 책임지면 다 해결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목사님 죽으면 다 죽어요. 영적으로 다 죽어요. 목사님 총 맞았는데 잘 되는 교회 한 군데도 못 봤어요. 다 뿔뿔이 흩어지고, 싸우고. 이 분쟁, 분열, 분리 이건 다 마귀들이 한 짓들이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예요. 우리 한국교회에 무수한 총알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안티 기독교가 범람하고 있어요. 한국교회가 위기를 만났다고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답을 같이 제시해야죠. 대안 없는 문제는 불평, 불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시간 대안 하나를 제시하려고 그래요. 바로 '선 자리 경호'입니다.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막아내자는 것이에요.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 방방곡곡에 다 있습니다. 청와대도 있고, 국회도 있고, 방송국에도 있고, 언론사, 기업체 다 있습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막아내자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신앙적 의리라는 것입니다.  

△최태경> 네, 이렇게 해서 우리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경호원'이라는 개념을 만드시고 '죽어야 산다'는 원리에 입각해서 우리 한국교회를 지켜내자, 선 자리에서 지켜내자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를 하시면서 많은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얘기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야 될 것 같아요. 장로님 그러면 이쯤에서 장로님의 추천 찬양 혹은 추천 찬송 듣고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장로님께서 좋아하시는 찬양 혹은 찬송 어떤 것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규현> '내 평생 소원 이것 뿐'인데요. 우리 할머니가 평생 동안 불러오던 네 곡이 있었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예수 사랑하심은,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우리 할머니는 86세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장수하신 편입니다. 그런데 돌아가실 때 천국 가시는 모습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셨어요. 마지막으로 가실 때 우리한테 남긴 유언이 딱 2개입니다. '예수 잘 믿으라'는 것과 '지금부터 하나님 품으로 가는 것이니 찬송가를 불러 달라'는 거예요. 할머니가 아는 찬송 네 개 밖에 없잖아요.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3절을 부르는데 주무시는 거예요. 며칠 전부터 전국에 있는 일가 친척들 다 모아놓고 안방 마루 마당까지 다 채워서 그 가운데 조용히 주무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 찬송을 우리 8남매 형제들이 모이면요. 추모 예배를 만들어 드릴 때 꼭 이 찬송만은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 '내 평생 소원 이것 뿐'을 추천합니다.

△최태경> 네, 장로님의 추천 찬송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들으면서 오늘은 인터뷰 여기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도 장로님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장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규현> 감사합니다.

△최태경> 네, 지금까지 김해무드병원과 위더스병원의 회장이신 하남교회 김규현 장로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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