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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尹에 동조한 국무위원들, 무너진 헌법의식 심판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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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12·3 비상계엄 선포 그날 누군가는 부당한 명령에 따랐지만 다른 누군가는 거부했다. 어찌 보면 찰나의 순간 내린 선택은 이후 각자의 운명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계엄이 해제됐기 때문인지 항명은 칭송을, 수명은 처벌을 받게 된 것일까. 아니면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도 같은 판단이 내려졌을까. 선택을 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자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들의 헌법과 양심에 따라 한 선택을 지켜줄 준비가 됐을까.

[12·3 내란 1년]수명과 항명③
국무회의만 엄격히 했어도…손 놓은 장관·총리
위법한 포고령 보고도 계엄 지시 수행
尹과 공모 무관, 각각 '내란 주범' 재판서 인정 될까

연합뉴스연합뉴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바닥에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지."
   
12·3 당일 저녁 국민보다 몇 시간이라도 먼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았던 국무위원들에겐 오래도록 이 질책이 따라 붙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내란사태 수사를 통해 감춰졌던 진상이 상당수 드러났지만, 그날 윤 전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 국무위원은 없었다. 오히려 일부는 윤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거나 위법성을 치유해 계엄이 '말이 되게끔'하려 했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은 역설적으로 대통령과 국무위원, 국회의원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내란특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조태용 전 국정원장 등을 법정에 세우면서, 비상 상황에서 더욱 '제 역할'을 했어야 할 이들이 외면한 책임을 짚었다.
   

제대로 국무회의 했다면…책임 방기한 장관·총리

윤 전 대통령 등 내란 관련 혐의로 기소된 이들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도 없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헌법재판소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인용하면서 인정한 부분이다.
   
대통령에겐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있지만 헌법과 계엄법은 엄격한 요건과 절차도 동시에 규정하고 있다.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이고 절차적으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또 대통령이 혼자 건의·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하도록 하고 있다.
   
▶ 헌법과 계엄법 속 계엄의 요건과 절차(일부만 발췌)
헌법 제77조 ①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계엄법 제2조(계엄의 종류와 선포 등) ②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
⑤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경우 국무회의의 일시·장소, 출석자의 수 및 성명, 발언 내용 등을 기록한 회의록을 즉시 작성하여야 한다.
⑥국방부장관 또는 행정안전부장관은 제2항 또는 제3항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특검은 이같은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과 한덕수 전 총리 등의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포착했다. 이들이 계엄 선포를 앞두고 분명히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국무회의 서무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국무회의록 작성에 대한 책임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말을 그저 듣고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라 발언자들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해 대통령의 권한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3일 저녁 8시 36분에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해 계엄 선포 계획을 들었다.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 선포 건의 자격을 가진 주무장관 중 한 명으로서 그는 계엄의 요건과 절차를 파악하고 모든 국무위원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서 계엄 필요성과 근거에 대해 논의할 것을 건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평소 국무회의 서무를 처리하는 행안부 의정관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 나온 김한수 행안부 의정관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무회의에 의정관실이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국무위원 일부만 불러 모을 때도 이 전 장관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무회의 서무 책임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써 위법한 계엄 선포를 도운 셈이 됐다.
   
이는 한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윤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무회의를 통해 계엄을 막으려던 것이 아니라 위법한 계엄의 흠결을 포장하려 한 것으로 특검은 판단했다.
   
국무회의에서 계엄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하려 했다면 국무위원 전원을 소집했어야 하지만 한 전 총리 역시 그러지 않았다. 의사정족수인 11명이 모일 때까지 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손가락으로 몇 명이 남았는지 세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고 있었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확보된 대통령실 CCTV를 통해 확인된 장면이다. 특검은 이를 정족수만 맞춰 국무회의가 이뤄진 양 외관을 꾸며내려 한 것으로 의심한다.
   
특검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제1보좌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행사를 통제하는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한 전 총리의 당시 책임을 무겁게 보고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헌법질서에 부합하는 국정행위를 하도록 보좌하는 기관인데,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 개인을 보좌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과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에 대해 실질적인 국무회의 심의를 요청하고 △반대의견을 명확히 개진하며 △국무회의록 작성을 통해 이를 기록하고 △비상계엄 선포는 국법상 행위이므로 문서로 할 것을 요구하거나 부서를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허울뿐인 국무위원 모임이 진행되도록 해 계엄 선포의 빌미를 줬다.
   

위법한 포고령·계엄지시 보고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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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이 전 장관과 한 전 총리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서 나아가 위법한 계엄에 직접 가담한 정황도 파악했다.
   
이들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포고령을 먼저 받아봤는데, 포고령엔 국회의 정치활동 금지나 파업 의료인에 대한 처단 등 일반인의 상식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법조인(이상민)과 두 번의 국무총리를 지낸 40년 공직자(한덕수)는 위법성에 눈감고 윤 전 대통령 지시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대통령실에서 계엄 관련 지시 문건을 받은 적 없다고 했던 이들의 말은 CCTV를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다. 영상엔 계엄 선포 후 아무도 남지 않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이 전 장관과 한 전 총리가 같이 여러장의 문건을 보며 논의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검은 영상 속 이 전 장관이 들고 있던 문건의 페이지 수와 두 사람의 행위태양 등을 근거로 언론사 등 단전·단수 관련 지시가 담긴 문건으로 파악했다.
   
한 전 총리와 협의를 마친 후, 이 전 장관은 밤 11시 37분쯤 허석곤 당시 소방청장에게 전화했다. '경찰이 특정 언론사 5곳에 투입될 예정인데, 단전·단수 요청이 오면 조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허 전 청장은 "장관에게 전화가 왔다"며 이영팔 소방청 차장에게 지시를 전달했다. 지시는 곧 서울소방재난본부 당직관에게 전파됐다. 당직관은 일선 소방서에 '[긴급]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출동대비태세 철저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 전 장관의 전화로부터 불과 7분 만에 일사분란하게 이뤄진 일이다.
   
이 전 장관과 헤어진 후 한 전 총리도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다.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를 위해 본회의장으로 집결하던 때였다. 한 전 총리는 "추 대표,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특검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한 전 총리가 추 전 원내대표에게 계엄이 윤 전 대통령의 계획대로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이 섣불리 계엄 해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12월 4일 새벽 1시 2분 국회가 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후에 한 전 총리는 뜸을 들였다. 방기선 당시 국무조정실장은 "해제 국무회의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총리님 밖에 없다"고 건의했지만, 한 전 총리는 "조금 한 번 기다려 보자"고 했다. 한 전 총리는 1시간이 지난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국무위원들에게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을 통보했다.
   
이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하게 이뤄진 것처럼 꾸미기 위해 선포 당시엔 없었던 비상계엄 선포문을 만들어 김 전 장관과 윤 전 대통령의 서명을 받고 자신도 부서했다. 그러다 "사후에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으니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판단을 바꾸고 폐기를 지시했다. 특검은 이를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용서류손상 혐의로 기소했다.
   

尹의 공모자 아닌 각각의 주범…재판서 인정 될까

12·3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지위를 이용해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12·3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지위를 이용해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기간 종료를 열흘 앞둔 특검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추 전 원내대표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박 전 장관도 계엄의 위법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계엄 관련 지시를 수행한 혐의를 받는다.
   
추 전 원내대표도 국회의원으로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봉사할 의무를 져버리고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 받게 될 예정이다. 조태용 전 국정원장의 경우 내란 혐의로 기소하진 않았지만, 특검은 그에 대해서도 국정원장으로서 비상 상황을 국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하지 않은 점을 고의로 판단하고 역대 국정원장 중 처음으로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내란특검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주요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를 적용함에 있어 이들의 자리에 부여된 '헌법적 책무'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이를 토대로 내란의 주범인 윤 전 대통령이나 김 전 장관과의 긴밀한 공모가 없었더라도, 위법한 비상계엄으로 창출된 내란 상황에 스스로 판단 하에 부역함으로써 중요임무에 종사했다고 봤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구속 여부를 심사한 법원은 한 전 총리와 박 전 장관,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해선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한 전 총리에 대해선 "피의자의 일련의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와 관련하여 다툴 여지가 있다", 박 전 장관에 대해선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에 다툴 여지가 있다",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해선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구속심사는 유무죄를 따지는 본안 재판은 아니지만 윤 전 대통령이나 김 전 장관, 이들과 사전에 공모했던 군 간부들이 모두 구속된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다툼의 여지"로 꼽힌 대목들은 향후 공판 과정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이 아닌 장관·총리, 법률·공직 전문가로서 인식할 수 있었던 위법성의 정도,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권한과 책무를 특검은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1년 전 이날 새벽, 국회가 계엄 해제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뒤늦게라도 "후회한다"는 일부 국무위원의 반성은 국민이 아닌 윤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의 말이 되지 않았을까. 법정은 과거의 잘못을 다투는 공간이지만 때로는 '더 중한 범죄로 나아갈 뻔 했다'는 가정이 양형은 물론 유무죄에서도 고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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