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도교육청에 마련된 교사 분향소. 고상현 기자지난 5월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 사망사건에 대해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하기로 했다.
최재호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은 2일 경찰서 대회의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피혐의자의 범죄 혐의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입건 전 조사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과장은 "고인과 민원 학생가족의 통화 내역을 비롯해 고인이 남긴 유서와 경위서, 동료 교사 진술, 심리 부검 결과 등을 종합했을 때 학생가족의 민원 제기가 고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줬다"면서도 "그러나 민원 내용이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 내 있어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25일 열린 변사사건심의위원회에서도 "보강수사 필요성이 없어 일반 변사사건으로 종결하기로 의결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변사사건심의위는 제주동부서장의 요구로 열렸으며 변사사건에 전문성 있는 교수, 변호사, 전직 경찰 등 5명이 참여했다.
실제 경찰이 확보한 고인과 학생가족이 주고받은 문자, 통화 건수는 총 47건으로 대부분이 학생 출석 확인을 위한 연락이었다. 민원성 연락은 5월 16일과 18일 이뤄진 총 5차례의 통화로 민원 내용은 학생에게 비속어를 썼다는 문제 제기였다.
최 과장은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 고지가 있어야 하고, 스토킹 역시 지속·반복적 행위가 필요하다"며 "이 사건의 경우 해당 기준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제주동부경찰서. 고상현 기자경찰은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심리부검 결과에서도 업무 과중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고인이 심야·주말에도 출근했고 학생부장을 장기간 맡는 등 업무 부담이 상당했으며, 진통제가 듣지 않을 정도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인이 학교 측에 병가를 요청했으나 학교가 '민원을 해결하고 다녀오라'고 요구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최 과장은 "억울한 죽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범죄 혐의를 파악하진 못했다"며 "사건은 종결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고인은 지난 5월 22일 새벽 도내 한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무실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학생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경찰은 동부서장을 팀장으로 한 12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협박·스토킹 정황 여부 등을 조사해 왔다.
제주시교육지원청은 지난 10월 13일 지역교권보호위원회를 열고 학생 가족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해 특별교육 8시간 이수를 의결했다.
한편 전교조 제주지부는 이날 경찰 브리핑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은 반복된 민원이 고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민원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라고 판단했다"며 "밥도 먹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도록 만든 상황이 과연 '용인되는 범위'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경찰 발표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모두 밝힌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며 "교사 보호 매뉴얼 미이행, 관리자 대응 부실, 민원 대응체계 실패 등 구조적 방치 여부를 밝히는 진상조사는 별도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특히 "유족이 신뢰하는 조사기구 재구성, 교사유가족협의회와의 공식 대화, 실질적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며 "진상규명 없이는 추모도, 예방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