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방부장관이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요건을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는 경우'로 제한함으로써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엄의 선포를 건의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임".무려 7년 전인 2018년 8월, 제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계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적시한 사유다.
당시 계엄법상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주체는 국방부장관 또는 행안부장관이고 요건은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경우'였다. 그런데 국방부가 '사회질서 교란 여부'를 입맛대로 판단할 수 있으니, 오직 '적과 교전시'에만 계엄을 건의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딱 한번 논의된 게 전부였고,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제21대 국회 4년 동안 계엄법 개정안은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2024년 12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부장관의 건의를 받아 비상계엄을 선포한 점에 비춰보면 7년 전 계엄법 개정안 폐기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가 "범죄자 집단 소굴"이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부정선거론을 신봉하며 선관위로도 계엄군을 보냈다. 국방부장관에게 '사회질서 교란 여부'에 대한 자의적 판단과 그에 따른 계엄 건의 권한을 남겨두면서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은 수많은 재발방지 법안을 쏟아냈다. 일부는 통과됐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법안도 상당수다. 계엄 선포 권한을 한 개인에게 맡겨두기엔 그 후폭풍이 너무 크다. 제도적 통제가 필요한 이유다. CBS노컷뉴스가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아 '제2의 계엄'을 막을 재발방지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계엄 재발방지법' 발의 100건 이상…논의 안된 것도 상당수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비상계엄 재발방지' 관련 법안은 100여건이 훌쩍 넘는다. 이 중 중복되거나 유사한 내용을 제외하더라도 약 90건에 이른다.
계엄법 개정안이 62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회법 개정안 11건,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 7건, 군형법 개정안 2건, 사면법 개정안 2건, 그외 기타 법안 등이다.
이 중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건 계엄법 개정안 38건뿐이다. 여야는 12.3 사태 후 발의된 여러 계엄법 개정안을 모두 묶어 한 개의 대안 법안으로 만든 뒤 통과시켰다. 당시 민주당은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의식, 대선이 끝난 직후인 7월 열린 본회의에서야 이를 상정해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는 △계엄 선포 심의 시 국무회의 회의록 즉시 작성 의무 △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 국회 소속 공무원의 국회 경내 출입·회의 방해 금지 △계엄 시행 중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군인·경찰·정보·보안기관 직원의 국회 경내 출입 금지 등이 신설됐다.
하지만 나머지 40여건의 법안들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발의만 됐을 뿐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법안들도 상당수다. 이 중엔 계엄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는 물론, 군인이 부당한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 신설 등 계엄 남용 방지를 위한 핵심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전·사후 민주적 통제, 독립된 국회 경비대 신설
국회 계류된 법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계엄법 개정안(24건)이다. 38건이 앞서 통과됐지만, 이후에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꾸준히 제기돼 온 셈이다. 대부분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각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법이 주를 이뤘다.
발의된 법안 중에선 계엄 선포시 사전에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거나, 긴급한 경우 사후 24~72시간 안에 승인을 얻지 못하면 효력을 상실하도록 하는 안도 있었다. 계엄 선포를 목적으로 한 국무회의 소집 시 동시에 국회에도 의무적으로 이를 알려야 한다는 법안도 존재했다.
해제 단계를 다룬 법안 중에선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국무회의 심의 없이 즉각 계엄의 효력이 상실되도록 하거나, 계엄이 해제되면 동일한 사유로 다시 계엄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예 대통령이 본인 임기 중 한 번 계엄을 하고 나면 이후 남은 임기 중엔 다시는 계엄을 선포할 수 없도록 제한하자는 구상도 있었다.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처 직원은 계엄 시에도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도록 한 법안도 눈에 띄었다. 또 계엄사령관의 작전 수행으로 재산상 손실을 입은 경우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신설한 경우도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발의된 것은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12.3 사태 당시 경찰에 의해 국회가 통제, 국회의원들의 출입이 막혔던 점을 의식한 듯 대부분 독립된 국회 경비대 신설 등이 주를 이뤘다. 국회 회의를 방해하기 위해 공권력을 지휘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있었다.
이외에도 국회에서 본회의 개의가 어렵다면 원격 영상회의로 본회의를 열 수 있도록 하거나, 국회의장이 있는 곳을 곧 본회의장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법안도 있었다. 또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법정기념일에 추가하는 안도 존재했다.
군인의 상관 명령 불복종 근거 조항 신설 두고 찬반 논쟁도
박종민 기자군인이 부당한 상급자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군인복무기본법의 경우 찬반 논쟁이 뜨겁다. 여당과 정부에선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지만, 야당에선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군은 1초의 지연이 생사를 가르는 조직이기에 명령 복종은 조건 없는 즉각적 이행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며 "겉보기에는 위법한 명령 거부가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정당한'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군 지휘체계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관의 명령에 대한 정당성 판단이란 과도한 부담을 장병에게 떠넘겨 지휘의 즉각성을 약화할 수 있다. 명령을 받은 부하가 이 명령이 정당한가를 먼저 고민하기 시작하는 순간 지휘는 단절되고 작전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장은 토론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사불란함이 곧 생존을 결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여당에선 일방적인 법적 소양을 갖춘 군인이라면 위법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며, 명령 내용 자체가 헌법과 법률을 직접적으로 충돌할 경우 등 거부권 행사를 '명백히 위반한 경우'로 한정하면 그같은 남용 소지는 배제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현재 해당 법안과 함께 군인·경찰 등에 헌법·계엄법 등 법률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도 함께 발의가 돼 있는 상황이다. 이들 또한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