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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직업이 총리'가 내다버린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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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뒤에 숨겨온 '추함' 적나라하게 드러나

공직자 의무 저버린 채 "내란 범행에 가담"
역대급 관운에도 위기 땐 국민 반대편
공직자 소명 없었던 총리, 역사가 단죄해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류영주 기자한덕수 전 국무총리. 류영주 기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76)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직업이 총리'에서부터 '관운의 사나이', '눈치 9단'까지…모두 그의 경력과 생존 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한덕수는 경기고와 서울대, 미국 하버드대 석·박사를 졸업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중이던 1970년 행시 합격과 동시에 경제관료의 길에 들어섰고 대학은 수석졸업했다. 관세청과 경제기획원, 상공부 등을 거치는 동안 꼼꼼하고 합리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관운이 따라붙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장관을 거쳐 총리에 임명된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3년 동안 주미 대사를 지낼 정도로 정권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다. 관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되며 10여년 만에 공직에 복귀했고, 나아가 12.3 비상계엄 이후에는 비록 대통령 권한대행이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의 역할까지 맡았다. 대선 출마 선언으로 감히 용꿈까지도 꾸었다.
 
화려함은 거기까지였고 '추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의와 혁신으로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든 국무총리로 기억되겠다(2022년 5월)"며 유능함을 강조하던 한덕수의 취임 일성은 방향을 잃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지근거리에 있던 그는 그날 계엄의 밤, 국무위원 정족수를 채우고 사후 계엄선포문에 서명하며 비상계엄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쪽에 유능함을 보탰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등 혐의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등 혐의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26일 12.3 비상계엄 선포 방조 및 종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에 요청했다. 내란죄 피고인에 대한 특검의 첫 구형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된 1심 선고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내란 재판의 흐름은 물론 비상계엄을 단죄하는 사법적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피고인은 국무총리로 대통령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이며 국무회의 부의장으로 대통령의 잘못된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고 지적했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추한 면모는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드러난 거짓과 위증으로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계엄을 적극 말렸고 계엄선포문 등 일체의 문건을 보거나 받은 적 없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이 확보한 대통령실 CCTV영상이 제시되자 계엄포고령을 수령한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특검 수사과정에서는 한덕수가 계엄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걸 보거나 들은 사람이 없다. 오히려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우려 동분서주했다. 계엄선포문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에 선포문을 작성해 폐기하기도 했다. 이상민 전 장관과 단둘이 문건을 보며 언론사 단전단수 등 무언가를 상의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도 있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내란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선출 몫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며 헌재의 정상화를 가로막으려 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위증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위증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직업이 총리'로 불리던 한덕수는 마지막 진술에서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으나 비상계엄에 찬성하거나 이를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 "이것이 오늘 이 역사적 법정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마지막 고백"이라고 했다. 수많은 위증이 드러나고도 '정직한'이란 단어를 이토록 쉽게 내뱉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관운의 사나이' 한덕수는 국가의 녹을 먹은 직업 공무원 중 역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게 이치라면, 공직자의 밥값은 사명감으로 지불돼야 하는데 그의 사명감은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와 국민을 향하기 보다는 권력을 향해 구부러졌다.
 
'대쪽'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았어야 했다. 만일 눈치 9단이라서 그러하지 못했다면 뒤늦게 진실을 말하고 용서라도 빌었어야 했다. 특검팀은 "국정 2인자의 납득할 수 없는 거짓변명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란방조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덕수 피고인에 대해 징역 15년이 구형됐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에게는 더욱 무거운 형이 구형될 것으로 예상된다.
 
1년 전 윤석열 내란 일당은 계엄을 발표하면서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 선관위에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이었다. 우리가 민주화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헌법 파괴 시도가 무모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추상같은 사법적 단죄로 공직사회에 기준을 세우고 경종을 울리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 최근 내란 사범 피고인측이 보인 준동은 사법부 불신이 키운 측면이 있다. 사법부의 존립 이유가 사회 정의와 질서 유지에 있다고 본다면 사법부 역시 소명에 집중할 것으로 믿고 싶다. 준엄한 심판으로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역사 앞에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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