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넓은 세상'을 바라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식과 터전을 넓히는 '인류의 노력'을 바라봅니다.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 '코스모스토리' 시작합니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노컷브이 캡처2023년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5…4…3…2…1…발사!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치던 사람들은 카운트다운이 0이 되자 천지를 흔드는 소리와 함께 외나로도에서 불을 뿜으며 날아오르는 누리호(KSLV-Ⅱ)를 환호와 함께 지켜봤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 반이 지난 2025년 11월 27일 새벽, 누리호가 다시 한번 우주로 날아오릅니다. 우주강국이라는 목표를 가진 우리나라가 세계를 상대로 우주 수송능력을 입증하는 시험대가 될 이번 발사는 지난 3차 발사 대비 많은 점이 보완되고 바뀌었습니다.
지난 23년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고흥 우주 발사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관람하는 모습. 연합뉴스누리호는 어떤 로켓일까?
누리호의 의미는 '세상 혹은 우주'를 뜻하는 순우리말 '누리'에서 따왔습니다. 누리호의 길이는 무려 47.2m나 됩니다. 15층 아파트 높이와 비슷합니다. 무게는 200톤. 큰 공룡 40마리를 합친 무게와 맞먹습니다.
누리호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단에는 75톤의 힘을 내는 엔진이 4개 달려있습니다. 이 4개 엔진이 합쳐지면 300톤의 힘을 냅니다. 300톤이면 큰 트럭 20대를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입니다.
누리호의 단별 구성 개념도. 항우연 제공로켓은 어떻게 날아갈까요? 누리호는 케로신이라는 연료와 액체산소를 사용합니다. 케로신은 비행기에 쓰는 기름과 비슷합니다. 누리호에는 연료 56.5톤과 산소 126톤이 들어갑니다. 이 연료와 산소가 만나 폭발하면서 생기는 힘으로 로켓이 위로 솟구칩니다.
지난 2023년 5월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KSLV-Ⅱ)가 우주로 향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엔진 안의 온도는 무려 3300도까지 올라갑니다. 철이 녹아내리는 온도보다 2배나 높은 열입니다. 이런 뜨거운 열을 견디기 위해 특별한 냉각 장치가 필요합니다. 터보펌프라는 장치는 1분에 1만 번 회전하며 연료를 공급합니다. 1초에 167번 도는 엄청난 속도입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12년 동안 약 2조 원을 투자해 누리호를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2년 반 만에 발사하게 된 누리호, 이번엔 민간이 주도한다
고흥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지난 19일 연구진들이 누리호 4차 발사 총조립을 진행하는 모습. 항우연 제공누리호 4차 발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민간 기업이 처음으로 누리호 제작을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는 방위산업 회사가 로켓을 만드는 일을 총괄했습니다. 이전까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주도했는데, 이제는 민간 기업이 그 바통을 이어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처음에는 부모님이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다가, 이제는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이번 4차 발사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직원 32명이 참여합니다. 발사지휘센터(MDC)에 4명, 발사관제센터(LCC)에 16명, 발사대에 10명이 투입됩니다. 이는 지난 3차 발사 때보다 21명이나 늘어난 숫자입니다.
이번 4차 발사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의 첫 번째 임무이기도 합니다.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6863억 원을 투입해 누리호를 4번 더 발사하며 신뢰성을 높이고, 민간 기업에 기술을 넘겨주는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번엔 왜 한밤중에 발사할까?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누리호 4차 발사 언론 설명회에서 발사 준비 현황을 발표하는 모습. 항우연 제공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 누리호는 새벽 0시에서 1시 쯤 발사될 예정입니다. 이 시간은 다들 잠든 한밤중이죠. 지난번엔 저녁 6시 24분, 노을이 지는 시간에 발사했는데 왜 이번엔 한밤중일까요?
답은 '태양동기궤도'라는 특별한 길 때문입니다. 위성이 지구를 돌 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지나가는 특별한 궤도입니다. 마치 매일 아침 8시에 학교 가는 것처럼, 위성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을 지나가야 합니다.
이번에 탑재되는 차세대중형위성 3호가 바로 이 특별한 길로 가야 합니다. 이 위성은 600km 높이의 하늘에서 지구를 돌며 우주 자기장 및 플라즈마를 측정하고, 지구 오로라와 대기광 관측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궤도에 정확히 안착해야합니다. 해당 궤도에 정확히 수송하기 위해서는 새벽 시간에 발사해야 합니다. 또한 지난번 3차 발사 때는 550km 높이에 도달했지만, 이번엔 더 높은 600km에 도달해야 합니다.
새벽에 로켓을 발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캄캄한 밤에 작업하는 것도 어렵고, 연구원들도 밤을 새워야 합니다. 낮보다 새벽에는 온도차이, 바람의 변화 등 고려해야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대로 발사시각을 정했다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궤도로 위성을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어떤 위성들이 우주로 갈까?
이번 누리호에는 정말 많은 위성이 실립니다. 가장 큰 주인공은 차세대중형위성 3호입니다. 무게가 516kg으로 큰 소 한 마리 정도 됩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들었습니다.
이 위성에는 놀라운 장비 3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에 설치된 '바이오 캐비닛'. 우주항공청 제공첫 번째는 '바이오 캐비닛'입니다. 우주에서 3D 프린터로 생체 조직을 만들고 줄기세포를 키우는 실험을 합니다. 지구에서는 중력 때문에 세포가 아래로 가라앉지만, 우주에서는 둥둥 떠다니며 고르게 자랍니다. 이를 연구하면 미래에 우주에서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에 탑재되는 'IAMMAP 위성설치된플라즈마측정기'. 우주항공청 제공
차세대중형위성 3호에 설치되는 'IAMMAP 자기장측정기'. 우주항공청 제공두 번째는 '우주플라즈마·자기장 측정기기(IAMMAP)'입니다. 우주의 자기장과 플라즈마를 측정합니다. 우주에도 날씨가 있다는 거 아시나요?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이 지구 주변을 지나가면서 만드는 우주 날씨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에 설치되는 '우주용 광시야 대기광 관측카메라(ROKITS)' 모습. 우주항공청 제공세 번째는 '우주용 광시야 대기광 관측카메라(ROKITS)'입니다. 지구의 오로라를 관측합니다. 북극이나 남극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의 커튼, 오로라를 우주에서 연구합니다. 또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대기광도 관찰합니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함께 작은 큐브 위성 12개도 함께 갑니다. 지난번 3차 발사 때는 7개가 탑재됐지만, 이번에는 거의 2배로 늘었습니다.
큐브위성은 정말 작습니다. 가장 기본 크기가 10cm×10cm×10cm, 무게는 1.33kg입니다. 우유팩 하나 크기에 노트북 정도 무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위성들이 하는 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누리호에 탑재되는 큐브위성들 항우연의 국산 소자부품 우주 검증지원 플랫폼 1호(E3_TESTER_KARI-1) 위성(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페이스린텍의 비천(BEE-1000) 위성, 한컴인스페이스의 세종4호(SEJONG-4) 위성, 전자통신연구원의 에트리샛(ETRISat) 위성, 우주로테크의 코스믹(COSMIC) 위성, 코스모웍스의 잭-003/004(JACK-003, -004) 위성, 쿼터니언의 퍼셋01(PERSAT01) 위성, 서울대학교의 스누글라이트3(SNUGLITE-III) 위성, 인하대학교의 인하 로샛(INHA-RoSAT) 위성, 카이스트의 케이히어로(K-HERO) 위성 그리고 세종대학교의 스파이론(SPIRONE) 위성. 항우연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E3_TESTER_KARI-1'은 가장 큰 12U 크기입니다. 우리나라가 만든 우주 부품들이 우주의 혹독한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합니다. 스페이스린텍의 'BEE-1000'은 우주에서 단백질 결정을 키웁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지구보다 더 완벽한 결정을 만들 수 있어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SNUGLITE' 2개는 함께 날면서 지구 대기를 3D로 관측합니다. 두 위성이 손잡고 우주를 여행하며 지구를 입체적으로 바라봅니다. KAIST의 'K-HERO'는 아주 작은 로켓 엔진을 달았습니다. 큐브위성도 이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하대학교의 'INHA-RoSAT'은 돌돌 말아서 보관했다가 우주에서 펼치는 태양전지판을 시험합니다. 마치 두루마리 휴지를 풀듯이 우주에서 태양전지판을 펼칩니다. 세종대학교의 'SPIRONE'은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찾습니다. 우주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바다를 관찰하며 쓰레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적합니다. 코스모웍스의 'JACK-003, 004', 우주로테크의 'COSMIC', 쿼터니언의 'PERSAT01', 한컴인스페이스의 'SEJONG-4',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ETRISat' 등 민간 기업과 연구소들도 각자의 기술을 시험합니다.
이렇게 많은 위성들은 어떻게 한 번에 실을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다중 위성 어댑터(MPA)'라는 특별한 장치에 있습니다. 예전엔 큰 위성 하나만 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어댑터를 만들어 큰 위성 1개와 작은 위성 12개를 효율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탑재된 큐브 위성들이 사출돼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요. 지난 3차 발사에서는 도요샛 3호기가 제대로 사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장된 카메라가 이를 발견하지 못해 확인이 늦었습니다. 이에 따라 내부에는 카메라가 2개 더 달렸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위성이 우주로 나가는 순간을 정확히 촬영할 수 있습니다.
발사 순간, 무엇을 봐야 할까?
연구진들은 새벽에 누리호가 발사될때 로켓의 동체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엔진에서 내뿜는 불꽃때문에 누리호는 안보이고 불꽃만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누리호가 발사되는 순간부터 시간을 재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리호는 정해신 시간에 따라 여러 단계가 진행됩니다.
누리호 4차 발사 과정.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우선 발사 본부에서 진행 버튼을 누르면 자동 시스템의 진행에 따라 카운트다운이 0이 되면 1단 엔진 4개가 불을 뿜습니다. 300톤의 힘으로 200톤의 거대한 로켓이 하늘로 솟구칩니다. 굉음이 온 세상을 뒤흔듭니다. 이어 125초(2분 5초)에는 고도 63.4km에서 1단이 떨어집니다. 1단은 임무를 마치고 고흥 남쪽 430km 바다에 떨어집니다.
234초(3분 54초)에는 고도 201.9km에서 위성을 보호하던 덮개(페어링)가 열립니다. 이제 우주에 도착했으니 보호막이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페어링은 필리핀 동쪽 1,585km 바다로 떨어집니다. 272초(4분 32초)에는 고도 257.8km에서 2단도 분리됩니다. 2단은 호주 북쪽 2,800km 바다에 떨어집니다. 이제 3단만 남아 목표 지점까지 날아갑니다. 807초(13분 27초)에는 드디어 고도 600km에서 차세대중형위성 3호가 우주로 나갑니다.
이어서 827초부터 927초까지, 큐브위성들이 2개씩 짝을 지어 우주로 흩어집니다. 18~23초 간격으로 총 6번에 걸쳐 사출됩니다. 마치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날리듯, 작은 위성들이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284초(21분 24초)에는 모든 임무가 끝나고 비행이 종료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고흥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누리호 총조립이 진행되는 모습. 항우연 제공누리호는 앞으로도 계속 발사됩니다. 5차 발사는 2026년, 6차 발사는 2027년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우리나라 위성들이 누리호를 타고 우주로 갈 것입니다.
더 먼 미래에는 더 강력한 로켓도 만들 계획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2032년까지 달에 갈 수 있는 차세대발사체를 개발할 계획이 수립돼 있습니다. 더 강력한 엔진으로 더 많고 무거운 물건을 우주에 수송할 수 있는 강력한 로켓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재사용도 가능해진다면 더 저렴하게 우주로 갈 수 있습니다.
국내 민간 기업들도 로켓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노스페이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같은 스타트업들이 작은 로켓을 만들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든 로켓으로 전 세계 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날이 올 것입니다.
27일 새벽,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집니다.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며 우주로 향하는 누리호의 불꽃. 그 장엄한 순간이 우리나라가 진정한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2년 반 전 그날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시겠습니까? 이번엔 새벽의 고요를 깨우며 더욱 특별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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