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타임랩스 찍는다…베라루빈천문대 첫 관측물 공개[코스모스토리]

루빈천문대의 모습. 한국천문연구원 제공루빈천문대의 모습.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칠레 엘 페뇬(El Penón)산 정상(해발 2647미터)에서 10년간 건설 끝에 완공된 차세대 천문대 베라루빈천문대(Vera C. Rubin Observatory).
미국 천문학자이자 암흑물질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베라 루빈(Vera Rubin)이 예측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은하들을 발견하고,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그녀의 공적을 기려 명명됐습니다.
허블우주망원경(HST)과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 등 지구를 벗어난 우주 공간에서 관측하는 스페이스 관측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지상 천문대의 새로운 관측 소식은 다소 감흥이 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문학계에서는 가동 소식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천문대의 등장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기존과는 격이 다른 관측 범위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STScI 홈페이지 캡처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STScI 홈페이지 캡처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의 뒤를 이을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천문학계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제임스 웹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다양한 파장에서 관측할 수 있어, 기존의 우주 관측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켜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빈천문대의 가동소식은 가뭄 속 단비처럼 천문학자들의 갈증을 채워줄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루빈천문대에서 관측테스트를 진행하는 모습. RubinObs/NSF/DOE/NOIRLab/SLAC/AU루빈천문대에서 관측테스트를 진행하는 모습. RubinObs/NSF/DOE/NOIRLab/SLAC/AU
이 천문대의 특징은 넓은 영역의 우주를 한번에 관측한다는 데 있습니다. '시모니 서베이 망원경'이라고 불리는 이 장비에는 중심부에 관측영역을 담아내는 거대규모의 이미징처리장치(CCD)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 규모는 무려 3200메가 픽셀(32억 화소)에 달합니다. 수천만화소의 개인 카메라를 사용하는 시대에서 단순히 픽셀을 이야기 하는 것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규모는 보름달 40개를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게다가 카메라 본체만 2.8톤, 냉각장치만 3톤에 달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우주 관측전용 초고화질 사진관'인 셈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넓은 관측범위를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관측 기구를 구축할 필요가 왜 있는가 입니다. 좁은 범위의 관측으로 밤하늘을 모두 관측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 관측했던 곳은 기존과 다른 모습을 할 수 있죠. 즉 천체들의 단편적인 모습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넓은 영역의 관측을 진행한다면 밤하늘을 담아내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실제로 루빈 천문대는 밤하늘 전체를 3일 간격으로 촬영하고 이를 10년간 계속 진행할 계획입니다.
루빈천문대에 설치된 LSST 카메라. 한국천문연구원 제공루빈천문대에 설치된 LSST 카메라.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같은 화각의 장면을 장시간 수백, 수천장 촬영하고 그 사진들을 이어 붙이는 '타임랩스' 기법은 멈춰있는 사진들이 시간순서대로 촬영돼 그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기법의 특징은 기존 영상촬영장비로는 담기 어려운 희미한 빛을 카메라의 다양한 세팅값 조정으로 담아내고 그 변화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루빈천문대도 느리게 변하는 밤하늘을 72시간 간격으로 촬영해 마치 밤하늘의 타임랩스를 만들 계획입니다. 우주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이 프로젝트를 '시공간 기록 탐사(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 LSST)라고 부릅니다.
LSST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문학자들은 별들의 탄생과 죽음, 은하의 충돌, 지구로 접근하는 소행성 등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그동안 풀지 못했던 우주의 비밀들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데이터를 통해 천문학뿐 아니라 물리학, 수학, 데이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도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천문대는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닙니다. 거대한 판형에서 나오는 관측 데이터는 매일 밤 20테라바이트(TB) 이상의 규모로 출력됩니다. 이렇게 막대한 데이터가 매일 출력된다면 그에 따른 데이터 처리 장치가 필요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의 변화가 있다면 놓치는 데이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에 인류가 찾고 있는 어떤 증거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루빈천문대. RubinObs/NSF/DOE/NOIRLab/SLAC/AU루빈천문대. RubinObs/NSF/DOE/NOIRLab/SLAC/AU
루빈천문대에는 이 거대규모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서 '데이터 집사(Data Butler)'라는 시스템까지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자동으로 정리하고 분류해 천문학자들이 연구할때 효율적인 정보 접근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국내 한국천문연구원도 루빈천문대의 관측 데이터 접근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문원은 루빈 천문대 건설 과정에서 현물 기여(In-kind Contribution) 형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는데요. 그 덕분에 권한을 얻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천문연은 국내 연구자들에게 LSST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방침입니다.

우주의 보물상자를 공개합니다

루빈 천문대의 첫 관측이미지 중 하나 처녀자리 성단의 파인더 차트 이미지.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루빈 천문대의 첫 관측이미지 중 하나 처녀자리 성단의 파인더 차트 이미지.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
그러면 루빈천문대의 첫 관측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와 광적외선천문학연구소(NOIRLab)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루빈천문대의 망원경으로 관측한 4가지의 관측물을 공객했습니다.
처음으로는 처녀자리 성단의 남쪽 지역과 우리 은하수에서 가장 가까운 대규모 은하 집단에 초점을 맞춘 거대 이미지 입니다.
루빈 천문대의 첫 관측이미지 중 하나, 처녀자리 성단 이미지 중 일부의 모습.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루빈 천문대의 첫 관측이미지 중 하나, 처녀자리 성단 이미지 중 일부의 모습.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
지구에서 약 5500만 광년 떨어진 이 성단의 주변에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에 이르는 밝은 별부터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가까워지는 파란색 파장의 나선 은하, 멀리 있는 늘어진 빨간색 파장의 은하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천체가 담겨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200만배 확대가 가능할 정도로 초고해상도로 촬영됐으며 이 안에는 약 천만개의 은하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촬영에서 공개된 화각은 총 25제곱도로 한 번 10제곱도로 촬영하고 같은 장소를 다른색생의 필터와 다른 노출로 여러번 촬영한 후 데이터를 합쳐 한 번의 노출로는 포착할 수 없는 매우 희미한 천체의 디테일을 모두 포착해냈습니다. 이번 이미지를 만들기위해 천문대는 1185개의 노출과 7박 동안의 관측시간이 걸렸습니다.

새로운 천체 무리를 포착하다

루빈천문대에서 밤하늘의 새로운 천체를 식별해내는 모습. 이미지 안에는 7번째 촬영으로 2104개의 새로운 천체를 찾았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루빈천문대에서 밤하늘의 새로운 천체를 식별해내는 모습. 이미지 안에는 7번째 촬영으로 2104개의 새로운 천체를 찾았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
다음으로 공개된 관측물은 새로운 천체를 포착하는 모습입니다.
루빈 천문대는 10제곱도의 넓은 영역을 한번에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태양계에 넓게 퍼져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천체들의 움직임 또한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번 첫 관측에서 루빈 천문대는 소행성을 포함한 태양계의 새로운 천체를 2104개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과거에 알려진 1800여개의 천체를 추가로 감지해 총 4000개 미만의 천체를 탐지했습니다.
루빈천문대에서 식별한 밤하늘의 새로운 천체의 위치를 나타낸 모습.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루빈천문대에서 식별한 밤하늘의 새로운 천체의 위치를 나타낸 모습.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
타임랩스를 통해 데이터를 만든다면 이 엄청난 수의 천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고 과거 오우무아무아처럼 외계 천체의 태양계 방문도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향후 완전히 가동된 루빈천문대는 첫 1~2년 동안 수백만개의 천체를 발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변광성을 모니터링

루빈천문대에서 포착한 맥동성 변광성을 두번 촬영해 밝기의 변화를 측정한 모습. 이미지 내의 변광성은 두번째 촬영 당시 30% 더 밝아졌습니다.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루빈천문대에서 포착한 맥동성 변광성을 두번 촬영해 밝기의 변화를 측정한 모습. 이미지 내의 변광성은 두번째 촬영 당시 30% 더 밝아졌습니다.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
우주는 그 넓이 때문에 다중촬영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성이 검증된 천체에 한정해서 제한적으로 반복 관측을 진행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신비로운 현상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빈천문대의 이번 공개로 그 범위가 상당수 줄어들 것임이 확실해보입니다.
세번째로 공개된 루빈천문대의 관측물은 바로 맥동형 변광성의 모니터링입니다.
루빈천문대에서 포착한 맥동성 변광성의 분포.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루빈천문대에서 포착한 맥동성 변광성의 분포. 루빈천문대 유튜브 캡처
루빈천문대는 이번 관측에서 46개의 미묘하게 반짝거리며 밝기가 변하는 별들 즉 맥동형 변광성들을 포착했습니다. 이들 별의 반짝거림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관측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별의 절대등급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절대등급과 겉보기 등급과의 차이를 바탕으로 별 사이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어 그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는 우리가 우주 지도를 구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다른 망원경들은 하나의 천체의 밝기변화를 측정할 수 있지만 루빈천문대는 범위안의 별들의 변화를 동시에 포착할 수 있습니다.

몽환적인 코스믹 파노라마…삼엽성운과 라군성운

삼엽성운과 라군성운의 파인더 차트.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삼엽성운과 라군성운의 파인더 차트.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
우리는 아직 우주의 10%도 관측하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우주에 대한 관측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기존에는 알 수 없었던 현상을 하고 있는 천체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 모습은 성운의 구름처럼 뿌옇게 보일 수도 있고 우리은하의 검은 부분처럼 음영지역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루빈천문대의 마지막 네번째 공개 이미지는 삼엽성운(Trifid Nebula, 오른쪽 위)과 라군 성운(Lagoon Nebula, 아래)의 몽환적인 모습입니다.
삼엽성운.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삼엽성운. 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
먼저 궁수자리에서 약 5000광년 떨어져 있는 다채로운 가스먼지구름인 삼원소 성운은 눈에 띄게 빛나는 분홍색 방출성운, 파란색 반사 성운 그리고 이들을 구분하는 어두운 먼지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상 아래 위치한 라군성운은 중심에 젊고 거대한 별이 모여있고 강력한 방사선이 뿜어져 주변 가스 구름을 밝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라순 성운의 구름 모습을 통해 성단의 형성과정과 거대한 가스 구름의 붕괴 과정, 아기별들의 환경 구성 등 별 형성의 초기 단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들 성운의 모습은 별의 형성과 성간물질의 변형 및 순환, 빛의 음영지역 등 우주 관측을 하면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세트 꾸러미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우주를 맞이할 준비는 되었나요?

루빈천문대의 세밀한 표현력은 새로운 시각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가 앞으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게 될 때,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새로운 데이터가 공개될 때마다 작은 소행성과 성간 이동 물질, 기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천체 등 우리는 새로운 발견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그 발견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 새로운 우주를 맞이할 준비는 되었나요?

놀라운 관측은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경이로운 우주의 다양한 모습은 매달 새롭게 공개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의 파장을 넘어 적외선과 X선까지 활용해 우리은하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 끝자락 원시 은하까지 천문학자들의 관측은 계속됩니다. 한 달 뒤 우리는 또 어떤 신비로운 모습을 보게 될까요. 코스모스토리, 다음 달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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