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12기 대왕전 도전4국 종국 장면. 스승 조훈현 9단(아래 사진 왼쪽)이 제자 이창호 7단에게 패해 21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한국기원 제공경상남도 사천에서 영화 '승부'의 현실판이 재현됐다. 영화 '승부'는 바둑 레전드 조훈현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승부를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의 바둑 영화다.
이창호 9단이 17일 영화에서처럼 다시 한번 스승 조훈현 9단을 꺾었다. 이날 승리로 이 9단은 조 9단이 보유 중인 대한민국 바둑 통산 최다승 기록에 1승 차로 다가섰다. 2천승 달성의 역대급 기록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는 사천시 항공우주 과학관에서 열린 '2025 사천 방문의 해, 스페셜 매치'에서 조 9단에게 17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대국 초반 조 9단은 속력행마로 최하귀 우세를 먼저 잡았다. 그러나 중·후반에 접어들자 '계략의 신'으로 통하는 이 9단의 끝내기가 빛을 발했다. 중앙에서 느슨한 수가 등장하자 몇 수 만에 형세가 뒤집혔다. 이 9단은 실수 없는 마무리로 스승을 또 다시 이겼다.
이창호, 조훈현 상대 11연승… 스승에 대한 예우 "운 좋게 승리"
조훈현 9단(사진 왼쪽)과 이창호 9단이 17일 스페셜 대국을 벌인 후 복기하는 장면. 한국기원 제공 이번 대국 결과로 이 9단은 통산 1967승 1무 814패를 달성했다. 지난달 6일 열린 슈퍼컵 레전드 매치에서도 승리하는 등 조 9단과의 대국에서 11연승을 따냈다. 특히 이 9단은 조 9단이 보유한 최다승 대기록에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또 조 9단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197승 119패로 앞서 나갔다. 조 9단은 1968승 9무 850패를 기록했다.
이 9단은 1986년 8월 입단 후 제62회 승단대회에서 조영숙 당시 초단에게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2000년 10월 당시 안조영 6단에게 1천승을, 2010년 1월 최철환 9단에게 1500승을 달성한 바 있다.
이 9단은 이날 대국 직후 "초반에 모양이 좋지 않아 불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겸손한 소감으로 스승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조훈현 "이창호? 내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 이창호 "스승 없었다면 이 정도의 실력 얻지 못했을 것"
'승부 튜토리얼' 유튜브 섬네일 이미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조 9단과 이 9단은 이번 대국 전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해 훈훈함을 더했다. 조 9단은 "(이 9단을) 제자로 들여 세계 일류의 프로기사로 키워냈지만, 덕분에 바둑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다시 한번 배운다. 이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이 9단을 추켜 세웠다.
이 9단은 "조 9단의 내제자(內弟子)가 됐기에 생각지도 못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조 9단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실력과 명성은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번 대결은 제한 시간 각자 30분에 초읽기 40초·5회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