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신종마약 케타민. 제주해경청 제공제주 해안가에서 신종 마약 케타민이 잇따라 발견돼 도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수사당국은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유입 경로를 추적하고 있지만 뚜렷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제주 해안 덮친 '차(茶) 봉지' 마약
지난 9월 29일 서귀포시 성산읍 광치기해변에서 20㎏의 케타민이 처음 발견된 이후, 이달 12일 제주시 우도면까지 남부를 제외한 제주 전 해안에서 같은 종류의 마약이 11차례 추가로 나왔다. 총량은 31㎏으로, 약 108만 5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규모다. 케타민은 원래 진정·마취에 쓰이지만 남용하면 강한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류다.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발견 지점이 모두 해안가라는 점이다. 바다환경지킴이, 낚시객, 해녀 등 시민들이 신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경은 해상에 표류하던 물체가 만조 때 해안으로 밀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케타민 발견 현황. 제주해경청 제공광치기해변에서 발견된 20kg를 제외하면 모두 외형은 사각 블록형에 내부엔 백색 결정체 1kg씩 밀봉된 점도 동일하다. 다만 포장지는 ▲차(茶) 표식의 은색 포장지 ▲우롱차 표식의 녹색 포장지 두 종류다.
가설 세우고 '소거법'…확실한 단서는 없어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은 마약이 제주까지 흘러든 경위에 대해 여러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배제하는 방식으로 조사하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해류를 통한 유입설이다. 김주영 제주해경청 수사과장은 "마약이 동남아 해상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상하다 가을 북풍을 맞고 제주 해안까지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캄보디아에서도 '차 봉지' 형태의 동일 포장 마약이 적발됐고, 이 해류가 지나는 일본 대마도와 포항에서도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7일까지 각각 2건, 3건이 발견됐다.
해류 모식도. 국립해양조사원 제공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던지기' 수법이 거론된다. 이는 해상에서 GPS(위성 항법 시스템)를 매단 부표를 미리 정한 지점에 던져놓으면 다른 조직원이 회수하는 방식이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그 과정에서 일부 물체가 파손되거나 표류해 제주 연안에 떠밀려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단속을 피하려다 급히 마약을 바다에 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선박 바닥에 마약을 숨기고 항해하다 조류나 파도에 의해 유실됐을 수도 있다. 선박들이 해상에서 마약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선박간 접촉 여부도 파악 중이다.
그러나 유입 경로를 특정할 단서는 부족하다. 포장지 등에서 지문이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인근 CCTV에서도 특이한 움직임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유통 조직과 관련해 의미 있는 첩보도 없는 상황이다.
정밀 분석부터 해외공조까지 수사력 총동원
제주해경청은 포장지의 재질, 인쇄 상태, 밀봉 방식 등을 분석하고 있다. 또 일본·캄보디아·중국·대만 등 8개국과 공조해 해외 사례와의 관련성을 살피고 있다.
제주 해안가 합동수색 현장. 제주해경청 제공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에 케타민 정밀 분석을 의뢰해, 성분 특성이나 합성 패턴을 통한 유통 라인을 역추적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해류·조류 흐름, 선박 항적 정보 등을 종합해 경로를 과학적으로 추정하는 절차도 병행하고 있다.
제주해경청·제주경찰청·국가정보원·세관 등 관계기관의 대책회의도 잇달아 열리고 있고 해안가에서는 민관·군 합동 수색이 계속되고 있지만 수사에 큰 진척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