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실수요자만 옥죄는 부동산 대책',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 실수요자 울상'
정부가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실수요자'다. 대체로 부동산 규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그 해제를 요구하는 근거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법이나 세법 등을 봐도 부동산 실수요자의 정의와 요건을 명확하고 통일적으로 규정한 조항은 없다. 다만 법 취지와 시행령 규정 등을 고려하면 부동산 실수요자란 실거주나 실사용을 목적으로 부동산을 거래하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로 좁혀진다. 잦은 거래로 단기 차익을 취하는 투기 세력과는 구별된다.
하지만 '지고지순'한 실수요자는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실수요자라 하더라도 차익을 바라지 않는 실수요자는 없다. 자기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차익은 다다익선이다. 일부 실수요자들은 이왕 살 바에야 차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동산을 매입한다. 이런 부동산에는 수요가 몰린다. 실수요에 가수요까지 몰리니 이런 부동산은 값이 비싸다. 자기 돈이 별로 없는 실수요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방법은 은행 대출을 최대한도로 받거나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다.
무리해서 사들인 부동산은 실수요자들을 옥죈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은행 대출 이자로 나가거나 전세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 보증금이 없어 다시 전세를 놓고 자신은 정작 실거주도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쯤되면 아무리 실수요자라 하더라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열망한다. 실수요자의 '양면성'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광현 국세청장,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구 경제부총리,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종민 기자이재명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갭투자 금지 등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고 주택 담보 대출 등을 축소하는 한편 아파트 거래 시 지방자치단체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망라한 대책이다.
대책 시행 이후 규제 대상인 서울 전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확실히 한풀 꺾였다. KB부동산 조사에 따르면 대책 발표 이후 지난 주까지 서울 지역 주간 아파트 매매 가격 지수 상승률은 0.43%(9.29)→0.68%(10.13)→0.66%(10.20)→0.49%(10.27)→0.30%(11.3)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하향세를 서울 아파트 가격 안정세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그런데도 부동산 정보 업체를 앞세운 일부 언론은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며 10.15 대책의 해제나 완화를 요구하는 듯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실수요자 사례를 갖다 붙인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상당수가 양면적이라는 점은 이미 짚어 봤다.
국민의힘 등 보수야당도 10.15대책 흔들기에 가세하고 있다. 반시장적 정책이라거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0.15 대책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구하는 행정소송도 낸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미 지난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황진환 기자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촉발된 수도권 쏠림과 지방 소멸, 저출산, 가계부채 폭증, 산업 경쟁력 약화와 경제 침체 등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찾아 보기 힘들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용이 공급을 늘리고 규제를 풀어 시장에 맡기라는 해묵은 소리 뿐이다.
하지만 수도권 택지가 동이 난지는 이미 오래다.
또 공급만 늘린다고 해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지는 않는다는게 대한민국 택지 개발의 경험이다.
실수요자든 가수요자든 부동산 거래자들의 투기 심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현재의 규제 대책을 연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거래 감소로 전월세 물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기존 주택을 처분한 자금으로 새 주택을 살 계획을 갖고 이미 계약을 했다가 거래 감소로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는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보완 대책도고려해야 한다.
시장이 관망하는만큼 공공이 나서 임대 물량 공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보유세 등 세제 개편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착한' 임대 사업도 촉진해야 한다.
이같은 대책은 '장단기적으로 봐도 서울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가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지금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를 사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집 살 엄두도 못낼 것'이라는 실수요자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다.
한가지 텃붙인다면 제도 개선 못지 않게 정부 여당 고위직들의 인사 검증에 부동산 부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아무리 잘 설계된 부동산 대책도 '내로남불' 지적 한마디에 힘을 잃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