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내부 반발과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검찰청과 법무부 간 이견 속에 항소가 막판에 취소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팀은 "윗선이 부당하게 항소를 막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업자 5명에 대해 항소 시한인 전날 자정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형사사건은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해야 하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1심보다 형량을 높일 수 없다.
유 전 본부장과 김씨 등 피고인 5명은 모두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에게 징역 8년과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징역 8년과 추징금 428억원,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과 벌금 38억원, 추징금 37억22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에게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지만, 손해액을 명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 대신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특경법상 배임죄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지만, 형법상 업무상 배임은 최대 10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이들은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화천대유에 유리한 공모지침서를 작성하고,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도록 해 7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고 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21년 10월부터 순차적으로 기소됐다.
"법무부 의견 따라 항소 포기"…이례적 결정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서 선고 형량이 구형에 못 미쳤음에도 항소를 포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초 검찰은 항소 필요성을 검토했으나 법무부는 이미 구형의 절반 이상인 중형이 선고됐고, 법리 적용에도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항소 불필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대검 지휘부는 법무부 의견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장동 수사·공판팀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반발했다. 이들은 "법률적 쟁점들과 일부 사실 오인, 양형 부당에 대한 상급심의 추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중앙지검 및 대검 지휘부에 항소 예정 보고 등 내부 결재 절차를 이행했다"며 "지난 6일 대검 지휘부 보고가 끝날 때까지도 이견 없이 절차가 마무리돼 항소장 제출만 남겨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내부 결재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인 전날 오후 무렵 갑자기 대검과 중앙지검 지휘부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사·공판팀에 항소장 제출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며 "항소장 제출 시한이 임박하도록 지시 없이 기다려 보라고만 하다가 자정이 임박한 시점에 '항소 금지'라는 부당하고 전례 없는 지시를 해 항소장을 제출하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수사팀의 반발로 검찰 내부 갈등이 노출된 가운데, 대검은 아직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배임죄 폐지·대통령 발언도 변수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검찰 로고에 직원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배임죄 폐지' 논의가 검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기업 경영 부담 완화를 이유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대장동 1심 재판부도 선고 당시 "배임죄 완전 폐지 시 부작용이 예상돼 대체 입법을 추진 중이며, 배임죄가 존재하는 한 피고인 구속은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의 '무분별한 상소 관행'을 비판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죄가 되지도 않는 걸 기소하고, 무죄가 나와도 책임 회피를 위해 항소·상고해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고 지적했으며, 이후 법무부는 상소 자제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번 결정은 현재 심리가 중단된 이 대통령의 대장동 관련 재판과도 연관돼 있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검찰 수뇌부가 당연한 항소를 막거나 방해하면 직권남용, 직무유기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라며 "11월 8일 0시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