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김희수 기획조정실장(왼쪽부터), 이동수 제1차장, 이종석 원장, 김호홍 제2차장, 김창섭 제3차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국가정보원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한 북미 정상회담은 불발됐지만, 북한당국이 '물밑 준비'를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3월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만남을 가질 가능성도 열어둬 귀추가 주목된다.
국정원, 내년 봄 '김정은-트럼프 회담' 여지 열어
이종석 국가정보원장과 이동수 제1차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이 이같이 보고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현장 국감에서 북한 동향과 사이버안보 위협 실태 및 대응방안을 주로 보고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대비한 동향이 '다양한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 근거로는 △북측이 미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실무진 성향을 분석한 정황 △미국과의 '조건부 대화'를 시사한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이후 핵무장 관련 발언의 '톤다운'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당시 최선희 외무상이 방러 출국을 막판까지 고심한 흔적 등을 들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대미 대화의 의지를 갖고 있으며, 향후 조건이 갖춰지면 미국과의 접촉에 나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이 올해 러시아 파병 및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등으로 기존 우호관계 다지기에 주력했다면, 내년엔 대미관계 개선에 눈을 돌릴 거라는 게 국정원의 분석이다. 북한에서 미국 내 국제 및 대북 일꾼(간부)들과 여러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를 최근 축적 중인 것도 양측 간 기류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이 언제쯤 성사될 것으로 보느냐는 국회 정보위원들의 질의에 '한미연합훈련이 이뤄지는 내년 3월이 정세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정보위는 국정원의 상황 분석을 토대로, 북한이 내년 2월 9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열병식을 다시 개최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3월 한미연합훈련과 맞물려 비슷한 시기, 북미정상회담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다만, 국정원 관계자는
'내년 3월'로 북미회담 예상 시점을 못 박아 보고한 적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상 단절 상태인 남북관계에 대해선 어두운 전망이 이어졌다. 국정원은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정권의 운영방향으로 천명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내년 봄 당대회 이후 남한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가 열리는데, 이를 계기로 해당 내용을 반영한 헌법 개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박선원 의원은 국정원의 첩보를 근거로,
북한이 해외 공관에 대해 '대남접촉 금지' 등의 지침을 준수할 것을 하달하는 등 관계 개선의 여지를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발언 수위는 낮아졌기 때문에 아주 대결적인 국면에서 소강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성권 의원은 "키워드는 '적대적 2국가론'이다. 그 (체제의) 불가피성에 대해 북한 내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책임을 남한 쪽에 돌리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관계 개선이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병기 아들 채용·쌍방울 등 '특감' 결과 두고 설전도
이성권 국민의힘 간사가 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하며 김희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여야는 이날 국정원이 보고한 자체 특별감찰 결과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당 간사인 박 의원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의 아들의 국정원 채용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MBC는 김 원내대표의 부인이 2016년 국정원에 전화해 2014년 채용 당시 탈락한 아들의 임용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국정원의 보고를 인용해 "2014년 (김 원내대표 아들 관련) 일방적·부정적이고 주관적인 세평과 달리 긍정적이고 객관적인 세평 자료가 2016년에 있었다"며 채용상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김 원내대표가 국정원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청원서는 국정원이 보유한 원본과 다른 '조작문건'이라고 부연했다.
이른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측에 줬다고 하는 돈의 출처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도박과 관련성이 있다는 점을 국정원이 시사했다고도 전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날 국감이 민주당이 국정원에 요청한 특별감찰 관련 위주로 흘러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성권 의원은 "국정원은 우리나라 정부기관 중 대한민국의 안보·보안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며 "(그럼에도 국감에서)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대한 브리핑보다 특별감찰 내용에 대한 보고 시간이 3배 이상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감찰사안 대부분이 국정원이 내부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이란 점, 일부는 특검 수사 또는 재판 대상이란 점을 들어
"지금 (여당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표적감사 주문이고, 국정원을 민주당의 하명을 받는 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박 의원은
12·3 비상계엄 당시 국정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이런 점들을 청산하지 않고 국정원이 어떻게 최고의 선진 정보기관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