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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가는 없던 그날…이태원을 추모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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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용산만 바라본 공권력, 책임을 묻지 않은 尹정부
'자기 집에 불났으면 이랬을까'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해마다 이맘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폭 3.2m에 길이 40m의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서 159명의 젊은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소중한 생명들이 숨이 막혀 절규하던 2022년 10월 29일 저녁, 그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3년 전 이태원 참사는 전 국민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도 딸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세계가 부러워한다는 행정시스템을 보유한 대한민국, 게다가 행정력이 밀집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장소와 인파까지 예견 가능했던 핼러윈데이에 대참사가 벌어졌다. 한데 그 좋다는 선진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2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정부청사사진기자단2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정부청사사진기자단
그날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아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이 29일 오전 10시 29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같은 시각 서울 전역에선 추모 사이렌이 1분간 울려퍼질 예정이다.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당일로 돌아가보자. 경고음은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울렸다. 오후 6시 34분 112 신고가 처음 접수된 것을 시작으로 압사사고를 예고하는 징후가 속속 감지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시간 넘게 경찰의 인력 지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수도 치안을 담당하던 그 많던 경찰력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창원 기자박희영 용산구청장. 윤창원 기자
용산구청도 관할 자치단체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사태를 안이하게 봤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이후 이렇게 변명했다. "(밤) 9시에 다시 나와봤다. 그때 좀 (인파가)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핼러윈 행사가 오랜만에 재개됐는데도 먼산 바라보듯한 발언이 충격적이었다.

중앙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어땠나. 소방청 상황실이 참사 당일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사고와 관련해 첫 보고를 한 시점은 밤 10시 48분이었다. 행안부는 이에 따라 10시 53분에 서울시와 용산구에 "상황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상민 당시 장관이 사고 사실은 인지한 시점은 밤 11시 20분이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밤 11시 1분이었다. 대형참사의 경고음이 첫 발신됐던 18시 34분 이후 무려 4시간 반이 지나도록 컨트럴타워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맞다.
 
자기 집에서 불났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아이들의 코가 깨지기라도 했다면 이랬을까. 그런데도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통치자는 책임을 물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국민안전 관리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이상민 전 장관은 그 어떤 법적.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조사"만을 외치면서 사실상 이 전 장관을 철저히 엄호했다. 이 전 장관의 당일 행적에 관심이 쏠렸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 전 장관의 행적을 확인하거나 공개하지 않았다.
 
참사 당시 공권력이 바라본 곳은 이태원이 아니라 용산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가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비공백 때문이라는 감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에 대비하느라 이태원 일대에는 경비인력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고, 당시 경찰 지휘부는 이 점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용산만 바라보자 민생치안에 진공이 생겼고 그 결과가 이태원 참사였던 셈이다.
 
참사가 남긴 상처에는 2차 가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 등 혐오의 표현에 지난 3년간 커다란 상처를 받아야 했다. "놀러갔다가 죽었는데 국가 탓하냐"는 폭언부터 일부 극우세력들은 중국이나 북한 소행설 등 음모론도 퍼뜨렸다. 이태원에 간 걸 문제삼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자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입에 담기도 힘든 막말을 쏟아내더니, 지난 추석 연휴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에 대한 음모성 망언까지 내놓아 최근 시의회 윤리특위에 회부됐다.
 
2차 가해는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희생자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참사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공권력 부재와 혐오 모두 사람에 대한 존중이 빠진 데 기인한다. 한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회라야 선진국 사회다.
 
노르웨이에서 온 한 희생자 유족은 지난 25일 시민추모대회에서 "딸은 항상 한국이 안전하고 멋진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아직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눈물지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유족들의 외침을 빌리자면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추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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