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와 K-컬쳐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이재명 대통령이 27일부터 '다자 외교 슈퍼위크'에 돌입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지는 이번 일정에는 미국·중국·일본 3강 정상과의 회담이 예정돼 있다. '실용 외교'를 내건 이 대통령이 무역·안보 등 복잡한 현안을 두고 외교 파고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넘길지가 관전 포인트다.
한·미 관세협상 안갯속…정상회담 분수령
연합뉴스이날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오는 29일 국빈 자격으로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진다. 다음달 1일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회담이 예정돼있고 최근 새로 취임한 다카나시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회담도 조율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3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과제는 단연 관세협상의 타결 여부다. 한미 양국은 미국이 관세 인하 대신 요구한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운용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국방비 분담금 인상 등 안보 사안은 협상 마무리 단계로 알려졌지만 관세협상 진행 상황에 따라 발표 시점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액 현금 '선불' 투자를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나는 서명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공을 한국 측에 넘겼지만 이 대통령은 거듭 신중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인위적인 마감 시한을 정해두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 24일 "만약 APEC 계기 타결을 기대한다면 갈 길이 멀고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속도보다 '국익 중심의 판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번 회담에서 협상 타결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정치적 부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경제 불확실성과 함께 25% 관세 부과로 자동차 업계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중 패권전쟁 속 균형외교 잇단 시험대
연합뉴스30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2019년 이후 6년 만에 마주 앉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100%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중국은 희토류·광물 수출 통제와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고 있어 양국이 출혈 경쟁을 멈출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두 정상은 무역 불균형, 펜타닐 확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핵 군축 등 글로벌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 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복잡한 외교 방정식에 직면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국가 관계는 무 자르듯 친구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며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 복원 뜻을 시사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 한화오션 제재, 한한령 해제, '하나의 중국' 원칙 등 민감한 의제들이 논의될 전망이다. 시 주석이 이 대통령의 '균형 외교' 구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도 준비 중이다. 강경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총리 체제에서 과거사와 안보·경제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외교'는 시험대에 오른다. 정부는 셔틀외교를 이어가며 한·일 관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본 내 우파 결집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 APEC 기간 중 또 다른 변수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며 "김정은 총비서와 만나고 싶다. 그는 내가 가는 걸 알고 있다"고 공개 언급했다.
외교가에서는 실제 성사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 특유의 돌발 제의로 '깜짝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만약 회담이 현실화된다면, 경주 APEC은 한반도 외교 구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