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범죄 단지 4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한 A씨가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최근 정부가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구금됐다 구출된 한국인 64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달 20대 대학생 박모씨가 고문으로 숨지면서 감금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조·송환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들 대다수가 스스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도 비등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는 박모(26)씨는 지난 18일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된 감금 피해자 64명에 대해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적지 않은 송환자들이 팔·다리에 문신을 하는 등 범행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던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박씨는 "단순히 모집 공고 보고 속아서 간 사람들보다는 모집책이나 총책을 통해 범죄 수익을 위해 간 사람들이 많던데, 이번 송환자들은 가해자로서 한국의 사법절차에 의해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환자 대부분은 구속돼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경찰은 64명 중 5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부분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한다는 20대 도모씨는 "개인적으로 돈을 쉽게 벌려고 캄보디아에 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라며 "일단 데려와서 한국에서 처벌 받아야 한다"고 했다. 20대 임모씨도 "물론 캄보디아 당국 등의 관리가 미흡했던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범죄에 연루된 것을 알고 (캄보디아로) 갔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며 "범죄인 것을 알고 갔다는 점 등을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7)씨는 "국내로 들어와 죗값을 당당히 치러야 한다. 불법적인 일을 인식하고 가면 그 사람들도 보이스 피싱 사기범이다"라면서도 "아무리 보이스 피싱 사기범이라고 해도 착취 당하거나 폭행 당해서야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대부분 가난해진 청년들이 좋은 수단이든 나쁜 수단이든 돈을 벌러 (캄보디아로) 갔다는 점에서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64명이 18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등 국제 범죄 조직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공항=황진환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지난 18일 "경기도 남양주시 청년 정모군 등 캄보디아에 감금됐던 이들을 고국의 품으로 데려온다"며 20대 한국인 3명의 구출 사실을 알리자, 비판 여론이 커졌다. 김 의원이 공개한 사진 속 청년의 몸에는 조직폭력배를 연상케하는 문신이 있어 비난 여론이 잇따른 것이다. 온라인 일각에서는 "꼭 한국으로 데려와야 하나", "동남아에서 그냥 살게 냅두자" 등 비난 글이 쏟아졌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19일 페이스북에 "캄보디아 사태에 있어서 정부와 여당이 렉카 유튜버 같이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해자·피해자 나눌 수 없어…한국 데려와 판단, 처벌해야"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캄보디아에서 구출했다는 한국 청년. SNS 캡처일단 전문가들은 자발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면 처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봤다. 설사 중간에 감금·폭행 등으로 중단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범행에 자발적으로 관여해 피해 등이 발생한 것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천윤석 변호사(종합법률사무소 이정)는 "(관련자들은) 피해자도 있고 가해자도 있어 단편적으로는 볼 수 없다"면서 "그래도 우리 국민을 보호해야 된다는 국가의 관점에서 당연히 피해자를 데려와야 하고, 가해자라면 역시 (한국으로) 데려와 압송해서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천 변호사는 "형사법적으로 강요된 행위와 기대 가능성이 없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송환자들이) 범죄를 강요에 의해서 하다가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그 전환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판단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국장은 "몇 년 전부터 전조가 충분히 있었는데 한국 사회가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관심은 커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피해자·가해자 나누고 정치권 비판에 집중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범죄 가해자라도 인권이 있고 피해자라면 당연히 더 보호돼야 한다. 송환자들에 대해서 한국에서 사법 절차를 진행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정을 참작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캄보디아뿐 아니라 라오스, 미얀마 등도 연결돼 있다. 결국 아시아 등 관련 국가들끼리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시아 지역에 인신매매, 강제노동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정보를 공유하고 인권 측면에서 피해자를 구제할 것인지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와 함께 '한국-캄보디아 합동대응태스크포스(TF)'를 통해 사기 범죄에 대응하면서, 캄보디아 정부에 적극적인 범죄 단속과 더 많은 한국인 송환을 요구할 계획이다. 캄보디아 온라인 스캠 산업에 연루된 한국인은 약 1천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