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원삼면에서 공사중인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라인(Fab). 생산라인은 4기까지 계획돼 있다. 정성욱 기자경기 용인시 원삼면에 거대한 '고슴도치 산'이 솟았다.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생산라인(Fab) 공사 현장이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솟은 크레인 100여대가 126만평 규모 부지 곳곳에서 자재를 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22조원을 투자해 이곳에 반도체 생산라인 4기를 구축한다. 산과 논이었던 동네가 첨단 반도체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다.
'농촌'에서 '반도체 도시'로…요동치는 원삼면
SK하이닉스가 공사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 주변으로 레미콘과 공사 관계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정성욱 기자
지난달 26일 찾은 용인 원삼면 공사 현장. 10m 넘는 암벽 위로 현대판 성이 지어지고 있다. 크레인 수십대가 1기 생산라인 뼈대가 되는 철제 구조물을 하나씩 쌓아 나가고 있다.
공사장 주변으로는 덤프트럭이 개미떼처럼 오갔다. 신호수들은 도로 앞까지 나와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정리에 정신없는 모습이다.
이곳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하루 평균 1만 5천명. 지난해 중순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원삼면 일대는 탈바꿈하고 있다.
서너 곳에 불과했던 식당은 현재 20여 곳으로 늘어났다. 시내에는 새롭게 간판을 내건 점포들이 더 많아졌다. 인근에 민간 아파트 개발도 예정되면서 상권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원주민 윤모(63)씨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이곳엔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식당도 3~4곳에 불과했다"며 "지금은 외지인이 들어와 식당을 차리고, 땅값도 크게 오를 만큼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공사장에 지역민 채용, 자재도 '메이드 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가 설치한 세차장. 무료 이용이 가능한 지역민들이 세차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욱 기자달라진 점은 상권만이 아니다. 일부 지역민들이 일자리를 얻으면서 작은 경제 생태계가 마련됐다.
고령층이 다수인 지역 특성과,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청소나 교통관리 업무는 전문기술이 없어도 근무가 가능해서 일부 지역민은 1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현장유지관리 업체인 미성기업은 현장 인력 150명 중 80%를 지역민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에 물을 뿌리거나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미성기업 장정환(44) 소장은 "공사장 화장실 청소부터 제빙기계나 살수차 관리 등 다양한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며 "고임금은 아니지만, 반대로 고령층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80% 정도를 지역민으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공사에 필요한 레미콘 자재도 용인시 업체가 전담해 공급한다. 용인시는 지역 내 11개 레미콘 업체 및 운송업체가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콘크리트 자재를 공급할 수 있게 시공사와 협의했다.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는 지역민을 위한 세차시설을 설치하고 일자리를 제공했다. 원삼면 주민이 세차장을 운영하며 임금을 받고, 주민들은 이곳에서 무료 세차를 한다.
숙소·교통은 아직…주변지역으로 활성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위치한 원삼면 시내. 지난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식당과 카페,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정성욱 기자하지만 개발 속도에 비해 숙소나 교통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이다. 원삼면 땅값이 크게 뛰면서 건물 짓기가 어려워졌고 도로망 확장도 아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숙소가 없으니 저녁장사가 취약하다. 공사 인력들은 숙소를 찾기 위해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양지면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
원삼면에서 식당을 운영중인 김모(65)씨는 "공사장 사람들이 새벽 출근을 하면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아침 장사는 그나마 되는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저녁에는 타지역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다 보니 원삼면에선 저녁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옆동네인 양지면 공인중개사 사무소 곳곳에는 'SK하이닉스 숙소 있음', '원룸 월세 가능'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원삼면을 넘어 주변 지역 경제까지 활성화 되는 셈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원삼면에 숙소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도 이젠 포화상태"라며 "아무래도 저녁에 술을 한 잔씩 하다 보니 장사도 괜찮게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원삼면 숙소시설이 부족한 탓에 공사인력들은 옆동네인 양지면으로 넘어오고 있다. 양지면 원룸촌. 정성욱 기자2027년 가동 예상…"반도체 생태계 거점될 것"
2027년 상반기면 현재 진행중인 1기 생산라인 절반이 완공된다. 완공과 함께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이 시작되고, 나머지 생산라인 공사가 함께 진행된다. 반도체 업계 상황에 따라 2기~4기 생산라인 공사 시기도 결정될 전망이다.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터미널과 창고, 오피스 시설 등도 들어설 계획이어서 새로운 도시가 탄생할 전망이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되는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는 단일 도시로는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까지 예정돼 있어 지역경제에 활력이 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