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26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북극항로 자문위원회 위촉식 및 제1차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북극항로 개척과 관련해 1천 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라고 밝힌 바 있다.
다수 전문가들은 기후 온난화로 인해 2030년을 전후한 시점이면 북극해에서 연중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럴 경우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한 달 넘게 걸리던 바닷길이 열흘 이상 줄어들며 물류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기존 남방항로가 약 2만 1천km인 반면 북극항로는 1만 2700km로 대폭 짧아지는데다 중동 해역의 해적 출몰이나 수에즈 운하 봉쇄 등 정치적 변수도 줄어든다.
이는 문명사 차원에서도 지중해, 대서양 항로 개척 등에 이은 거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항로의 전략거점을 확보한다는 것은 가히 국운 도약의 기회를 움켜잡는 것이기도 하다.
북극항로 개척은 단지 부산 등 몇몇 항구도시의 항만‧물류 등의 발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조선, 친환경 에너지, 금융 등 전·후방 산업에도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뿐만 아니라 북극은 항로 뿐만 아니라 전세계 매장량의 13%에 달라는 석유와 세계 매장량의 30%인 천연가스 등 막대한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중동산 에너지의 대체재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일찌감치 치열한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중국 상하이는 지리적 이점과 발달한 인프라 등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허브 항구로 발돋움하려는 기세다.
한국도 이에 맞서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전격 결정하는 등 범정부적 대응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북극항로에 필요한 쇄빙선이나 친환경선박 등 건조 기술이 뛰어나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극항로가 러시아의 영향권에 속한다는 것. 북극해의 해빙이 진행돼도 안전 항해를 위해서는 러시아 연해나 영해, 중간 계류항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서방의 대러제재에 동참한 이후 악화된 한러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나갈 이유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따른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와 너무 지나치게 척을 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3월 첫 대러제재에서 57개를 고시했던 수출통제품목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인 2023년 2월에 741개, 같은 해 12월엔 682개, 2024년 9월엔 243개가 추가됐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미국으로 155mm 포탄 50만발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우회 지원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으로 강력한 연대 의사를 밝히며 러시아를 자극했다.
러시아가 그 이듬해인 2024년 6월 북한과 군사동맹과 마찬가지인 포괄적 동반자협정을 전격 체결한 배경이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 파병 등을 통해 국제적 입지를 강화했고 러시아는 북한에 중요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우리에게 지정학적 환경은 더 악화됐을 뿐이다.
이는 결국, 우리만 아무리 북극항로의 희망을 키워봐야 헛꿈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박병환 전 주러시아 공사는 최근 국회토론회에서 "우리가 부산에다 거점항만 만들고 쇄빙선 만들어봐야 뭐하는가.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질문하는 등 한국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접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러시아 진출 우리 기업들이 헐값에 매각한 현지 공장의 환매조건부 기한이 올해 말로 다가오고 있다.
그 시점이 지나면 한러관계는 또 다시 기로에 놓일 수 있기에 정부의 보다 적극적 대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