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연합뉴스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자원) 화재 사태를 계기로 배터리 화재에 대한 국민 경각심이 다시 한 번 높아지고 있다.
불안 심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배터리는 AI(인공지능) 확산과 자동차의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시대 속 '심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만큼, 국내 주요 기업들은 안전에 초점을 맞춘 기술 고도화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다만 기술 발전이 실질적인 사고 방지로 이어지려면 사용자들의 철저한 관리도 병행돼야 하는 한편 범(凡)정부 차원의 배터리 관리 기준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 전산 마비로 이어진 배터리 화재…번지기 쉽고, 끄기는 어렵다
지난달 16일 리튬이온 배터리 1개에서 시작된 국자원 화재는 정부 전산 시스템의 40%를 마비시키며 배터리 화재의 파급력을 다시 상기시켰다.
경위 조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복수 전문가 설명을 종합하면 배터리 화재는 주로 열폭주 현상으로 발생한다. 배터리 내부 온도가 1천도 안팎까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화재나 폭발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원인은 다양하지만, 배터리 구성 요소인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닿는 단락(쇼트)이 발생하면 과도한 전류가 흘러 열폭주를 야기하는 상황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단락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충격이나 과충전과 과열, 노후화로 손상되거나, 외부에서 비정상적인 금속 접촉 등이 있을 경우에 일어난다. 국자원 화재의 원인을 두고도 노후 배터리 교체 권고를 무시한 부실 관리 또는 배터리 이설 작업자의 부주의가 배경이 돼 단락이 생겼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특히 위협적인 이유는 번지기 쉽고, 진화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규모 전력 공급 장치에는 여러 개의 배터리팩이 들어가는데, 배터리팩은 소규모의 배터리셀들로 구성돼 있다. 셀 하나에서 시작된 작은 불이 대형 화재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고온 노출 시 산소를 뿜는 양극재와 가연성 전해액을 품고 있어 일단 불이 붙으면 그 자체로 강력한 연료로서 작용하기에 진화가 어렵다. 이번 국자원 화재 때도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배터리팩 384개가 모두 탔다.
이와 관련해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불이 붙는다'기보다는 '불이 쏟아져 나온다'는 표현이 가까울 것"이라며 "리튬이온 배터리 진화는 덮거나 가둬서 에너지가 밖으로 못나오게 하는 개념이지, 억제한다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I·전기차 시대 심장으로 기능하는 배터리…'안전 기술' 경쟁 치열
지난달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연합뉴스국내 주요 배터리사들도 이런 리튬이온 배터리의 위험 요인들을 분석해 안전 기술 고도화에 집중해왔다.
특히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대기 위한 ESS(에너지저장장치)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이를 기회로 여기는 배터리사들의 안전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삼성SDI는 ESS,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를 알루미늄 케이스로 감싸 내구성을 높이고, 내부 압력이 증가했을 때 가스를 배출하는 '벤트', 이상 전류를 차단하는 '퓨즈' 등의 안전 강화 설계 기술들을 적용하고 있다.
ESS용으로는 열이 발생할 경우 소화 약재를 배터리 내부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분사함으로써 온도를 낮추고 주변 배터리로의 열 전파를 막는 EDI(모듈 내장형 직분사) 기술도 갖췄다. 이 밖에도 삼성SDI는 배터리 셀 사이에 단열 시트를 적용해 열 전달을 막고, 소화 캡슐을 모듈별로 설치해 불을 초기에 끌 수 있는 UPS용 화재 차단 기술도 앞세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를 핵심 안전기술로 삼고 있다. 클라우드 시스템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배터리 셀마다 전압, 전류, 온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밀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기술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부터 생산을 시작한 ESS 전력망 시스템에는 리튬이온 배터리 가운데 비교적 안전성이 높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쓰이며 화재와 가스 감지 센서, 흡기·배기팬 등이 탑재된다.
SK온도 배터리에 전기 신호를 보내 파악된 반응 특성을 기반으로 상태를 진단하는 EIS 시스템 기술을 확보했다. 열 차단막과 냉각 플레이트 등을 적용한 열 확산 방지 설루션 등도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분리막을 지그재그 형태로 쌓아 올리는 SK온의 'Z-폴딩' 공법은 단락을 차단하는 기술로 주목받았다.
기술 진화로는 부족해…"배터리 안전 관리 '범정부 지침' 마련돼야"
지난달 3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정화 작업을 마치고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배터리 안전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안전·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사용자들은 그 기준에 근거해 철저한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열린사이버대 백승주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생애주기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항공기, 자동차 등 배터리의 활용처별로 담당 부처를 달리해 배터리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데,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활용처별로 크게 다르지 않고 피해는 국민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전기연구원 도칠훈 박사도 "통상 배터리 성능 보증 기한이 10년이라고 하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지, 사용자는 어떤 검사를 거쳐 배터리 이상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검증해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무언가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배터리 안전 사항에 대한 세밀한 정부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 박사는 기술 보완점과 관련해서는 "배터리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BMS의 데이터를 장기간 축적하면서 사용자에게 위험 상황과 점검 필요성을 분석해 알려주는 별도의 관리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