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한미 재무당국이 환율 정책에 대한 합의가 타결되면서, 한국이 미국이 지정하는 '환율조작국'에 오를 가능성이 한층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1일(한국시간) '한미 재무당국간 환율정책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 4월 한미 고위급 '2+2 통상협의'에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환율 분야가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됐다. 이후 관세 협상과 별개로 한미 재무당국이 고위·실무급 협의를 거쳐 이번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합의에는 3500억 달러 대미(對美)직접투자의 전제 조건으로 여겨지는 '통화스와프' 협상이 아닌, 원화 평가 절상 문제 등을 다뤄왔다.
이번 합의에서 한미 재무당국은 효과적인 국제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조작(manipulating)'하지 않는다는 환율정책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하는 등, 한미 양국이 환율정책에 관한 입장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확히 드러냈다.
특히 이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대미 무역 흑자가 너무 많다고 문제삼으면서, 미 재무부가 지정하는 '환율조작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느냐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주목됐다. 미국 재무장관은 매년 6월과 11월 반기별로 자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주요 교역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데, 여기에서 '환율조작국'을 지목한다.
△대미 상품 및 서비스 무역흑자 150억 달러 이상 △GDP(국내총생산)의 3% 이상 △GDP의 2% 이상 및 8개월 이상 외화 순매수 등 3개 기준에 모두 해당하면 심층분석 대상이, 이 가운데 2개 기준에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이 된다. 만약 심층분석 끝에 최종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분류되면 대미 투자 제한, 정부 조달 입찰 등에 있어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한국은 2016년 4월 처음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이후 명단에 계속 이름을 올리다 2023년 11월과 2024년 6월 두 차례 연속으로 제외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환율보고서에는 다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연합뉴스특히 미 재무부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기존의 정량적인 3개 기준 외에, 정성적 해석까지 새롭게 거론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심과 달리, 우리나라가 대미 무역 흑자를 위해 환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할 뿐 아니라, 미국이 제시한 환율 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상호 확인한 만큼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합의에서 한미 재무당국은 구체적으로 ①거시건전성(Macroprudential) 또는 자본 이동(Capital flow) 관련 조치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고 ②정부 투자기관(Government Investment Vehicles)의 해외투자는 위험조정과 투자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다.
또 ③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고려돼야 하며, 환율의 방향에 관계없이 대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특히 한미 재무당국은 외환시장 상황 및 '안정(Stability)'을 모니터링하고, 상호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된 노력의 일환으로 투명한 환율정책과 이행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명시했다.
최근 스위스, 일본도 미국과 한국처럼 미국과의 환율 관련 합의를 마쳤지만, 외환시장의 안정을 양국 재무부가 함께 모니터링하겠다는 문구는 한국 합의문에 처음 담겨 향후 환율 관련 협상 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합뉴스이러한 합의들을 토대로, 한국 정부가 그동안 분기별로 외부에 공개했던 시장안정조치에 관해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미 재무부에 월별 내역까지 공유하기로 했다.
또 IMF(국제통화기금)이 제공하는 양식(IMF's Data Template on International Reserves and Foreign Currency Liquidity)에 따라 기존에 공개해왔던 월별 외환보유액·선물환포지션 정보 뿐 아니라,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구성 정보도 대외 공개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환율정책 합의 내용에 대해 이미 견지해오던 환율정책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수준이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미 재무당국간 긴밀한 소통과 신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더 나아가 이번 합의의 이행을 포함해 앞으로도 국내 외환시장 상황과 환율정책 운용 등에 대하여 미 재무부와 상시적으로 긴밀히 소통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