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의 화재 정밀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연합뉴스IT(정보통신)업종이 아니라면 기업에서 IT 부서는 대부분 '지원 부서'로 분류된다.
매출을 직접적으로 올리는 부서도 아니고 예산만 쓰다보니 '계륵' 취급을 받기도 한다.
업무가 전문적이라 일반 직원들과 인사 교류도 드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 직원들조차 IT 부서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근무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있는듯 없는듯하던 IT 부서가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다.
바로 사고가 났을 때다.
회사 전체에 인터넷이나 네트워크가 먹통이 되면 회사 구성원들은 IT 부서의 존재와 그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고가 수습되면 IT 부서는 다시 계륵이 되고 예산과 인력도 좀처럼 늘지 않는다.
지난 주말 화재가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의 처지도 일반 회사의 IT부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정자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전산시스템과 데이터를 통합운영하고 관리하는 정부 IT 인프라 총괄 기관이다.
2005년 정부통합전산센터로 출발해 2017년 국정자원으로 확대개편됐다.
IT로 먹고산다는 대한민국의 IT 실무 기관인데도 IT 시스템 운영의 기본 중의 기본인 '이중화' 체계를 갖추지 못한 사실이 이번 사고로 드러났다.
예산이 부족해 이중화를 제때 못했다는게 국정자원의 설명이다.
기관 역사가 20년을 맞았지만 기본을 갖출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채 운영돼온 셈이다.
이중화 체계는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 곳의 IT 시설이 제 기능을 못할 때 다른 곳의 IT 시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데이터와 운영 시스템 등을 복제해 갖춰 놓는 것을 말한다.
평소에는 쓰지 않다 보니 예산만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규모 전산 마비 사태를 막기 위한 핵심 대책이다.
이중화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국정자원은 이중화 없이 버티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전산 마비 사태를 맞았다.
국정자원 청사 건물 1개 층이 불에 타면서 전산 장비 740대가 전소됐고 이로 인해 정부24 등 647개 전산 서비스가 전면중단됐다.
무인 행정 서류 발급은 물론 범죄와 화재 신고, 금융, 세금, 택배 등 국민 생활의 상당 부분이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28일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에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 화면에 서비스 일시중단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류영주 기자예산 부족 뿐만 아니라 국정자원의 안이함도 드러났다.
2022년 카카오톡 불통 사태를 일으킨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이후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과 광주, 대구 분원에 백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사고가 나도 3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대책없는 빈말임이 드러났다.
데이터만 백업할 뿐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서버나 네트워크 이중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요리 재료만 갖춰놨을 뿐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해 놓지 않은 채 '신속 배달'을 외친 셈이다.
일종의 대형 보조 배터리인 UPS(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를 시스템과 한 공간에 둔 것도 안전 불감증이다.
불이 난 UPS는 384개 대형 리튬 이온 배터리셀로 만들어져 지난 2014년 전산 장비가 있는 7-1 전산실에 설치됐다.
석유 난로 옆에 기름통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이런 상태로 있다가 위험성을 뒤늦게 감지하고 UPS를 지하로 이전하는 작업 과정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
작업이 부주의하게 진행돼 화재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확산되지 않도록 초기 진화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비도 부족해 보인다.
IT 시설의 화재는 진화 작업을 하기 매우 까다롭다.
불을 끄기 위해 마구잡이로 물을 뿌리면 전산 장비가 훼손돼 중요 데이터가 소실될 수 있다.
그래서 전산 시설에는 장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산화탄소 가스 소화 시스템을 갖추고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격벽도 설치한다.
DJ 정부 이후 '전자 정부' '디지털 정부'를 강조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가 전산망과 통신망 등 기간망의 재난 예방과 복구 대책을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재난 뿐 아니라 테러나 공습 등 물리적 침해와 사이버 침해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