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을 태운 호송 차량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지난 18일 아침 서울 용산의 중앙군사법원은 예상 밖에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에 맞춰 극렬 지지층이 총출동해 일대 혼잡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은 완전 빗나갔다.
더구나 이날은 윤 전 대통령의 65세 생일이자, 그가 12·3 비상계엄 실패로 한남동 관저로 물러난 지 약 1년만에 용산을 다시 찾은 날이다.
그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태극기 부대'도 응원하지 않았다. '윤 어게인'을 외치며 오열하던 극우 유튜버, 결사 옹위대를 자처하던 야당 의원들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100석이 채 되지 않는 방청석도 빈 자리가 많았고 그나마 취재진이 다수를 차지했다. 1년여 전 같은 곳에서 열렸던 박정훈 해병 대령의 공판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것과 큰 대조를 이뤘다.
윤 전 대통령이 항명수괴 죄를 씌우려 했던 박 대령은 이날 비슷한 시각 대통령 업무보고에 배석했다. 단지 사필귀정이라는 말만으로는 형언하기 힘든 인생 유전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종의 조직적 지침과 행동 통일이 있지 않고서야 있기 힘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일반의 관심에서 크게 멀어지고 극성 지지자마저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군 통수권자에서 내란 피고인으로 전락해 군사법정에 선 것만큼이나 권력무상을 실감케 하는 사례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날 나란히 피고석에 앉은 계엄군 사령관들 가운데 옛 '주군'에게 제대로 예를 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삼청동 안가 등에서 윤 전 대통령과 폭탄주를 돌리며 도원결의한 사이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이들을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사법정 안의 이들은 저마다 살 길 찾기에 바쁜 존재였다. 맨 처음 입정한 곽 전 사령관과 이 전 사령관이 짧게 인사를 나눴을 뿐 이후로는 누구도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철저히 외면했다.
폭탄주 회동에는 제외된 것으로 보이는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경우는 윤 전 대통령에게 12·3 사태 이전에 자신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고, 그렇지 않다는 답을 듣자 혼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둘렀을 장군들에게 각자도생만 있을 뿐 조폭 수준의 의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 윤 전 대통령도 살아남기 경쟁에선 군인 부하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는 12·3 사태로 고초를 겪는 장병들에게 "내가 내린 결정에 따라서 자기 할 일을 한 사람들인데 참 미안한 생각"이라고 미흡하나마 처음 사과했다. 하지만 결국은 구차한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그는 "나라의 위태로운 상황에 대해 북을 친다는 개념으로 (비상계엄을) 한 것"이라며 이른바 '계몽령' 타령을 되풀이했다. 정보사가 중앙선관위에 출동한 것도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며 사실상 김용현 전 장관의 책임으로 돌렸다.
12·3 주연과 조연들의 지금까지 법정 드라마를 지켜보면 향후 '흥행'도 지리멸렬할 게 분명해 보인다. 이들은 최소한의 대의명분도 없이 엄청난 일을 꾸몄다 맥없이 실패하자 그저 원초적인 생존 본능만 드러내고 있다.
국민 혈세로 양성한 검사 출신 전직 대통령과 고위 장군들의 적나라한 행태가 국민들에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결자해지를 통해 역사와 국민 앞에 지은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