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인광고가 사기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채용을 가장해 교육비·단말기 개통을 요구하거나, 정규직을 내세워 구직자를 낚고서는 계약직을 제안하는 방식이 다수 확인됐다. 대기업 계열사와 대형 로펌마저 사례에 포함되면서, 허위 구인광고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같은 실태가 드러난다.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노동 당국의 수사 의뢰서 45건 등 관련 자료를 CBS 노컷뉴스가 분석한 결과, 거짓 구인광고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세였으나 정부 차원의 홍보 예산은 사실상 전무했다.
구직 광고 보고 연락했더니…개인정보에 휴대전화 개통 요구
구체적으로 보면, 거짓 구인광고에서 사기로 진화한 사례가 가장 눈에 띈다. 피해자가 재택 '문서작성·자료조사' 인력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문의를 하자, 대뜸 개인정보 제공과 함께 휴대전화 개통·데이터칩 신청 요구가 온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는 처음에 무심코 응했다가, 의심이 들어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구직 공고는 곧바로 삭제됐고, 그 사이 피해자 명의로 통신요금 18만원이 결제됐다. 피해자가 실제 본사에 문의를 하자 "자신들을 사칭한 구인광고"라고 안내 받았다. 노동 당국은 공고를 낸 자의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수사 의뢰를 해야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네이버 카페에 "초보자 가능, 2개월 수습, 기초부터 교육"이라는 공고를 보고 면접을 봤다. 이 과정에서 "기본급 80만원+매출 10% 인센티브"를 주겠다면서, 업체 측은 피해자에게 대신 기초수강료 90만원과 작업도구(드릴) 60만원, 총 15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면접을 봤더니 주겠다고 약속한 기본급에 두 배 가까운 돈을 오히려 요구한 것이다.
노동당국은 "구직자를 유인해 신고인으로 하여금 교육을 수강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노동부는 이처럼 사기로까지 번지는 거짓 구인 광고의 심각성을 인지, 지난해부터 경찰과 협력하고 있다.
정규직 채용 공고를 내고서는 계약직을 요구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정규직·계약직 공고를 동시에 낸 기업에 '정규직' 공고를 보고 지원한 신고자는 실제로 6개월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회사는 "유선으로 계약직부터 근무 가능하면 면접"이라고 주장했지만, 내부 품의서로 계약직 채용이 확인됐다. 응모 당시와 현저히 다른 고용형태로 허위·오인 광고에 해당한다.
대기업 계열사, 대형로펌까지 수사의뢰 대상에…아직도 無개념 구직 광고
연합뉴스심지어 여의도에 위치한 한 유명 호텔은 워크넷에 12개월 계약직으로 채용 광고를 냈지만 실제 근로계약서는 3개월로 작성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1년 계약 중 수습 3개월을 구분하기 위한 관행"이라 주장했지만, 계약서에는 수습 조항이 없었고 "3개월 만료 시 자동 종료"만 명시돼 있었다. 당국은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카페 매니저·바리스타 채용공고였으나 실제로는 카페 내 공사 업무가 주였던 사례도 있었다. 근로계약서상 '주5일, 12:00~21:00'과 달리 주5일 초과·시간대 외 근로가 확인됐다. 표준산업분류상에서도 '커피전문점'과 '인테리어 디자인업'은 전혀 다른 업무로, 법 위반이다.
이밖에 '월급 230만원' 공고 후 계약서에는 시급 1만 30원, '시급 1만 5천원' 광고 뒤 9620원 지급, '월 280~300만원·무기계약' 공고 뒤 수습 270만원·계약직 계약 체결 등 채용광고와 임금·고용형태 불일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기본급 300만원'이라면서 기본급 없이 전액 성과급만 지급하는 특수고용 위장 사례도 있었다.
신고 사례는 업체 규모와 관계없이 발생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는 '정규직·경력 10년' 공고를 냈으나 실제 조건은 계약직·경력 6년으로 제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높은 브랜드 신뢰를 배경으로 지원자를 모집하고서, 실제 계약 단계에서 보수 조건을 낮추기 위한 꼼수를 쓴 셈이다.
한 대형 로펌의 경우 '정규직 수습 3개월'로 공고한 뒤, 합격 통보 시 1년 단위 재계약 조건을 제시해 수사의뢰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법률전문기관조차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쓰는 수법을 이용한 것이다.
고용24 통한 신고사례 증가 추세…거짓 구직 광고 관련 홍보 예산 "없음"
연합뉴스이에 더해 거짓 구인 광고 신고 건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공식 고용 플랫폼 고용24를 통해 접수된 신고 건수는 2021년 278건, 2022년 334건, 2023년 365건, 2024년 404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8월까지만 245건이나 접수된 상태다.
신고 건수 중 절반 정도는 '위반 없음'으로 끝나지만, 수사 대상이 되는 사건 등도 나타나고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신고 건수 중 3분의 1 가량은 민원 취하가 차지하는데, 이는 현장에서는 신고 후 전화 연락·출두 요구 등 절차 부담이 커 신고 포기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자기는 불이익을 받았는데도 조사는 본인이 받아야 해 꺼리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노동당국의 경우 수사권이 없다보니, 진술에 의존하거나 최종적으로는 경찰에 수사의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철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고용24 뿐만 아니라 지금 외부 민간 포털까지도 협조를 해서 필터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직업안정법 제34조는 거짓 구인광고, 구인을 빙자한 물품 판매·수강생 모집, 신원 미표시 광고 등을 금지한다. 위반 시 제47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3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는 채용절차법이 적용돼 채용을 빙자한 홍보·아이디어 수집 금지, 정당한 사유 없는 채용조건 불리 변경 금지도 적용된다.
이렇게 법적 규제가 강한데도 거짓 구인 광고 신고 건수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전무한 상황이다. 노동부는 박해철 의원실에 "직업 안전법상 거짓 구인 광고 관련 별도로 배정된 홍보예산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거짓 구인광고에 대한 '신고 포상금제'를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박해철 의원은 "거짓 구인광고 신고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그 방식도 거의 사기에 가까운 사례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을 포함한 구직자들의 보호를 위해서 고용노동부의 직권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며 "또한 민원 취하 건수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