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강문해변 인근 카페에 소방수라고 적힌 물통이 놓여 있다. 강릉=류영주 기자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에 지난 주말 '단비'가 내렸다. 강릉의 주된 물 공급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52일 만에 올랐지만,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태풍 등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가뭄은 장기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뒤늦게 찾아온 '가을 단비', 하루 최대 강수량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강릉에는 지난 13일 103.7㎜의 비가 내렸다. 올해 들어 강릉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이다. 그야말로 '단비'였다. 지난 12일 8.6㎜의 비까지 합쳐 오봉저수지의 저수율도 52일 만에 올랐다.
지난 7월 22일 저수율이 36.6%를 기록한 뒤 줄곧 내리막을 걷다가 이번 비 덕분에 다시 저수율이 올랐고, 산이나 논·밭 등에서 추가 빗물이 저수지로 계속 흘러 들어오고 있어 저수율은 더 오를 전망이다. 또 이날 강릉에는 비가 내렸으며 17일에도 비 소식이 있다.
뒤늦게 찾아온 가을비 덕분에 가뭄에 시달리던 강릉 주민들의 생활도 조금은 나아질 전망이다. 강릉시는 오전·오후에 각 1시간씩 수돗물을 공급하던 113개 아파트의 제한급수 시간을 오전·오후 각 3시간씩으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가뭄의 늪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올해 가장 많은 양의 비가 내렸음에도, 이번 강수량만으로는 가뭄을 막기 역부족이다. 이날 저수율인 16.5%는 오봉저수지 평년 저수율인 72%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평년의 23%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아직 부족한 강수량에 강릉시도 제한급수와 운반급수 등 가뭄 대책은 유지하고 있다.
"올여름 북태평양 고기압 확장이 원인"
전문가들은 올여름 폭염과 남서풍의 우세 등을 가뭄의 원인으로 꼽았다. 기상청 우진규 통보관은 "올해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평년보다 좀 더 확장하면서 장마 기간이 짧았고 무더위가 길어지며 강수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손석우 교수도 "편서풍에 따라 구름이 서쪽에서 내륙으로 이동했는데, 태백산맥을 넘기 전에 모든 비를 다 내려버렸다"며 "태백산맥을 넘은 뒤에는 구름이 사라지고 강수가 적어졌다"고 말했다.
강원·영동 지방 중에 특히 강릉만 가뭄을 심하게 겪는 이유에 대해서는 "속초 등 다른 곳은 지하에도 저수조를 만들어 놨었는데, 강릉은 아직 공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강릉에 가장 인접한 속초는 지난 2021년 쌍천 지하 암반에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지하댐을 건설했다. 강릉은 연곡천에 지하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완공은 2027년 이후로 예정돼 있다.
우 통보관은 "지난 9일까지 6개월간 강수량을 보면 강릉이 평년 대비 36.1%, 동해가 30.8%, 강릉이 52.2%"라며 "기상학적 관점에서는 강릉, 속초, 동해 등 모두 가뭄이 맞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남은 올해 강수 전망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우 통보관은 "평년에 대해 얘기하자면, 당연히 여름철이 (강수량은) 제일 많고 봄·가을·겨울이 적다"며 "가을에 평년보다 비가 많이 오면 가뭄이 해소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이 발표한 기상가뭄 3개월 전망에 따르면 9월에는 평년보다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10·11월에는 평년과 비슷하게 비가 내리며 일부 지역에 기상가뭄이 계속될 것으로 예보됐다.
"태풍이 동해에서 수증기 가져다줘야 해결"
'가을 태풍'이 가뭄 해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손 교수는 "(올해 가뭄 해소 여부는) 태풍에 의해서 결정된다"며 "태풍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면 동해에서 영동 지방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가게 되는데, 다량의 수증기가 동해에서 영동 지방으로 수송이 돼야 비가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올해 (태풍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 별로 없다"며 "아직 태풍 시즌이 끝나지는 않았고, 태풍이 좀 지나가면 강수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은 된다"고 말했다. 태풍 수준의 강우가 내려야 해갈이 가능할 정도로 가뭄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태풍은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기 때문에 피해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충분한 비를 뿌려 가뭄 해갈을 돕고 더위를 식혀주는 효과도 있다. 이에 여름철 더위가 심해지고 가뭄이 나타날 때면 태풍이 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태풍이 더위와 가뭄을 해소해 준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등이 있었던 1994년 여름 태풍 '월트', '브랜던', '더그', '세스' 등은 피해를 남기기도 했지만, 비를 뿌리며 더위를 식히고 가뭄을 일부 해소해 줬다. 2018년 태풍 '솔릭'도 전북 지방 가뭄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태풍 예보가 없는 현재 해갈을 위해 인공강우를 내리는 방법에 대해 손 교수는 "시도해 볼만하기는 하다"면서도 "(인공강우는) 어느 지역에 비가 내리면 또 다른 지역은 비가 안 오는 구조가 되는 '제로섬 게임'인데, (현재 가뭄을 겪는) 지역들이 혜택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