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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부터 열차사고까지…'재난 정쟁화' 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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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때마다 정치권은 '책임 공방'부터

구조적 대책은 뒷전, 유가족은 2차 피해
해외는 제도 개선, 한국은 정쟁의 늪
"연속성과 전문성 보장, 독립적 조사 운영해야"

지난 7월 22일 경북 청도군 경부선 열차사고 현장 인근에서 경찰이 사상자들의 유류품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7월 22일 경북 청도군 경부선 열차사고 현장 인근에서 경찰이 사상자들의 유류품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청도군에서 사망자 2명이 발생한 코레일 열차 사고 참사 이후 정치권은 또다시 책임 공방을 벌였다.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보다 '사고가 누구 탓이냐'는 논란이 앞섰다.
 
재난이 정쟁의 무대에서 소모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재난의 치유와 예방을 위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의 늪에 빠진 진상 규명

1일 동대구역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본부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경부선 열차사고 관련 압수수색을 마치고 파란색 박스 등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1일 동대구역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본부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경부선 열차사고 관련 압수수색을 마치고 파란색 박스 등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우재준 의원은 경북 청도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 참사와 관련해 "코레일은 지분 100%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임자는 정부의 수장인 이재명 대통령 아닌가"라며 대통령 직접 책임론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경북 청도에선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쳐 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코레일 한문희 사장은 현장에서 사과와 함께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사고 수습본부를 꾸리고 합동조사를 시작하기 무섭게 국회는 곧바로 정쟁에 돌입한 것이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산재 공화국을 끝내겠다"고 공언했고, 당시에는 여당이 대통령의 임기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 의원은 이를 언급하며 "정부는 기업에는 산재 책임을 오너에게 지우겠다며 강하게 몰아붙이면서 정작 자신들의 책임에는 한없이 관대하다"며 "산재를 기업 오너 책임으로 본다면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같은 자리에서 "몇 년 전 밀양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 하청업체 관리 미흡과 안전조치 부실이 직접적 원인"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한문희 현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재난 뒤 '책임 전가'라는 정치권 공식

연합뉴스연합뉴스
앞서 세월호, 제주항공, 이태원 참사 등 여론의 주목을 받은 대규모 인명사고에서도 같은 장면이 되풀이됐다. 사건이 정치적 유불리를 둘러싼 공방에 매몰되며 구조적인 대책 마련은 등한시되고, 유가족은 2차 피해를 입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직후 여야는 "정쟁 대신 애도"를 약속했지만 사흘도 안 돼 공방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예견된 인재임에도 정부와 여당이 무책임했다"고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재명 당시 당 대표는 특검 도입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사퇴도 요구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세월호 등 전임 정부의 대형 참사 때처럼 "정권 흔들기"라며 방어에 나섰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석연찮은 점이 많다며 제기된 특검 요구를 '윤석열 정부를 흔들기 위한 정치 공세'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은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라는 낙인과 조롱에 시달렸고, 심리 치유나 장기 지원책 등 국가 지원도 충분하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재난참사 피해 지원 실태 증언 및 지원 체계 개선 토론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치권이 '참사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는 프레임'을 확산시키고, 온라인에서 생존자들이 집단적 비난에 노출됐음에도 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집계하거나 지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피해자를 '정치의 도구'로 만드는 구조가 재난마다 되풀이된 것이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큰 사고가 나면 사회가 집권여당이나 행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야당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판을 하는 것"이라면서도 "정치인들이 공론을 만들거나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담론(진영 논리 등)이 심해지는 현상은 있다. 즉 논쟁을 위한 논쟁, 이념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치권에서 책임을 묻는 일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책임론을 꺼내들어 공방의 도구로 삼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같은 인식이 번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구조 개선 막은 정쟁, 외국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수해 현장. 연합뉴스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수해 현장. 연합뉴스
해외 대형 참사에도 이 같은 일들이 있었다. 다만 그 과정을 거치며 교훈을 얻어 제도를 고쳐나갔다는 점이 우리와 달랐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자민당 등 야당에서 내각 책임론과 지도력 공백을 두고 날 선 비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간 나오토 내각이 사퇴하는 등 큰 혼란을 겪었지만 곧 여야가 재난 대응의 연속성 필요성에 합의했다. 이후 상호 협조 체제로 전환해, 피해자 대표를 조사 위원회에 참여시키는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
 
미국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정치 갈등으로 대참사를 겪었다. 연방·주 정부와 정당 간 책임 전가, 부시 행정부의 늑장 대응을 두고 극심한 정파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나 이후 의회는 초당적 합의로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초당파적 조사 문화를 제도화하며 변화를 이끌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각 기관이 따로 움직이고, 독립적 전문 조직조차 상시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재난을 정치적 공방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재난 대응 체계 개선보다는 반복이 이어질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정종수 교수는 "정치 공방이 구조 개선보다 앞서면서 매번 임시방편에 그친다. 재난 대응은 연속성이 핵심인데,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초기 단계로 되돌아간다"며 "지속 가능한 재난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를 넘어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위기관리 조직이 정권마다 바뀌거나 사라지는 전문성이 부족한 현실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개선을 위해 △제도의 연속성 보장 △재난 업무의 전문성 강화 △재난안전법 개선 △독립적 조사 조직의 상시 운영 △상시 근무하는 재난 전문가 조직 구성 △지자체간 협력 체계화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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