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그룹 뉴진스, 아일릿. 각 소속사 제공뉴진스(NewJeans)와 아일릿(ILLIT)의 이름이 법정에서 거론됐다. 하이브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 간 소송 변론기일에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남인수 부장판사)는 11일 오후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간계약 해지 확인 소송 및 민 전 대표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관련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 변론기일을 열었다.
하이브 측에서는 정진수 CLO(최고법률책임자)가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고, 민 전 대표는 당사자 및 증인 자격으로 출석해 신문이 이뤄졌다.
하이브 측은 민 전 대표가 하이브를 공격해 평판을 떨어뜨린 뒤 어도어의 유일한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와 함께 하이브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웠고 실행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민 전 대표 측은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한 것, 음반 판매량 기록을 높이기 위한 '밀어내기'가 일어나는 점 등 하이브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보복성 감사를 당해 해임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모두 지난해부터 일관되게 강조한 내용이다.
정 CLO는 2024년 4월 25일 박지원 하이브 CEO(최고경영책임자), 이경준 CFO(최고재무책임자), 이재상 CSO(최고전략책임자)와 함께 뉴진스 민지, 해린, 혜인 어머니를 만났다고 말했다.
정 CLO는 "어머니들께서는 그 당시 사실 표절 이슈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쓰고 중립적이었다. (그러다가 민 전 대표가)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뭔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라고 전했다.
그룹 뉴진스와 아일릿. 각 소속사 제공뉴진스에게 긴 휴가를 준다는 것이 사실상 활동을 제대로 못 하도록 하는 조처 아니었냐는 질문에 정 CLO는 "도쿄돔까지 마치고 나면, 큰 사이클의 활동을 하면 당연히 휴가 가고 휴식을 취한다. 그게 활동을 못 하는 긴 휴가를 준 것처럼 (부모님이) 오해하셨거나, 누가 그렇게 해석해 준 거라고 본다. 당시 저희는 부모님을 처음 만난 자리였고, 서로 간 오해가 있으면 풀려고 했기에 안 좋은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민 전 대표가 하이브 관계자들을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정 CLO는 "밤사이에 민희진으로부터 열 몇 통 전화가 와서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만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용기 내서 왔다고 하셨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워낙 하이브는 이상한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정상적이어서 놀랐다, 하이브 사람들은 머리에 뿔 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주셨다. 저희도 정말 오늘 만남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헤어졌다"라고 부연했다.
일부 계획을 당기자고 한 부분을 두고, 정 CLO는 "(민 전 대표는) 아마 (2024년) 3월 29일 미팅에서 어머님들 설득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항의 메일) 1차, 2차를 저 때부터 이미 계획한 것을 알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한 뉴진스의 행보에도 결국 뒤에는 민 전 대표가 있다고 바라봤다. 정 CLO는 "아티스트 라이브 방송하는 날짜가 좋다고 (민 전 대표가) 텔레그램 보낸 걸 기사로 봤다. 멤버 중 한 분(하니)이 국회 국정감사 출석했을 때 그 전날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와 함께 4시간 가까이 있던 게 사진도 찍히고 보도가 된 거로 안다"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민 전 대표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다.
그룹 뉴진스와 아일릿의 한복 화보. 각 소속사 제공이어, 그해 11월 뉴진스가 전속계약 해지 통보서를 보냈을 때도 법무법인 세종의 도움을 받은 점을 언급했다. 정 CLO는 "(당시만 해도) 분명히 아티스트들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기자회견 했다고 했다"라며 "(민 전 대표가) 투자자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고 다닌다는 기사도 봐서, 아티스트 전속계약 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막후에는 피고 민희진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정 CLO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사이에 피고 민희진이 일본에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받으려고 사람들을 만났다는 제보를 받았다"라며 "(이때는) 전속계약 가처분이 있었는데 '(뉴진스가) 100% 이긴다'라는 법무법인 세종의 의견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자료까지 저희한테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어디에 회의 장소를 마련해줬는지 등 구체적 정황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 CLO는 "일반 회사와 달리 엔터 회사는 지분의 대소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 아티스트와 얼마나 밀접하고 아티스트를 얼마만큼 이끌 수 있는지에 따라서 파워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소수 지분자라 하더라도, 아티스트에게 사실상 자기 뜻대로 영향 미칠 수 있다면 대주주보다 훨씬 강하게 회사에 대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저희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민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어도어 감사 착수 당시 민 전 대표 기사가 쏟아진 상황에, 모회사 차원에서 뉴진스 이미지를 위해 언론을 막아보려고 한다든가 아직 진위가 밝혀진 게 아니니 신중히 보도해야 한다고 언론에 요청한 적이 있는지 질문했다. 정 CLO는 "저희도 (기사가) 넓게 퍼지는 걸 원치 않았다. (첫) 보도 나온 후에는 취재 경쟁이 붙어서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라고 답했다.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고, 하이브는 표절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한 민 전 대표 측 주장에 관해서는 "표절이 명백하다면 왜 돈 주고 합의해야 하나? 소송을 하는 거지"라며 "표절 명백한 걸 인정 안 한다면 왜 돈을 주나? 끝까지 싸워야지. 저분이 왜 저런 잘못된 의견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11일 오후 당사자 신문을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하이브 제공
반면 민 전 대표는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의혹은 본인이 아니라 '대중'에게서 먼저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는 "대중들에게 먼저 이슈가 돼서 아일릿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3월 2일인가 9일에 티저 사진이 떴는데 그때 나오자마자 '어, 이거 뉴진스 아냐?'라고 의혹 제기됐는데 그 부분 몰랐나"라고 정 CLO에게 물었다.
"(누가) 데뷔하면 누구랑 비슷하다는 의견은 커뮤니티에 항상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내용이고 이게 권위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당신은 표절이야 하는 법적 판단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는 거로 안다"라는 정 CLO의 답변에 민 전 대표는 "권위 있는 평가라는 기준이 뭐냐. 대중 반응은 법적 판단보다 훨씬 빠르다. 대중의 반응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냐?"라고 반문했다.
정 CLO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데뷔했을 때 표절이다, 누구랑 비슷하다는 건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다. 법적인 문제가 돼서 소송이 제기되면 방어하거나, (저희가) 표절당했다고 하면 소송 제기하는 거지 팬들의 갑론을박을 가지고 (대처를) 일일이 하진 않는다. 어떤 기획사도 그렇게 안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보충 설명했다.
밀어내기 사안에서도 두 팀의 이름이 거론됐다. 민 전 대표는 "한 장이라도 밀어내면 '밀어내기'다. '밀어내기'는 '땡겨쓰기'(당겨쓰기)라고도 표현하는데 초동(앨범 발매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 기록을 위해 음반을 유통사로 밀어내는 거다. 초동 일주일 동안 어떤 그룹 기록을 깨야 해서 기다리다가 안 되면 마지막 날에 갑자기 사재기를 해서 밀어낸다는 개념으로 저희가 표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장이나 8만이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밀어내기는 한 장, 두 장, 세 장 하는 이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며 "아일릿이 뉴진스의 기록을 깨기 위해서 초동 마지막 날 8만 장이 팔렸으니 (밀어내기를) 의심할 수 있지 않나"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CLO는 하이브에서는 밀어내기가 일어나지 않으며, 민 전 대표와 밀어내기 관련 대화를 나눈 이모씨에게도 '민 대표 주장의 취지가 아니라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받았다고 응수했다. 민 전 대표는 '아주아주 어그레시브(agressive)한 목표가 9월 앨범이 총판 100만 하는 거긴 한데 너무 텀이 짧아서' 등 발언으로 미루어 이씨의 '밀어내기에 관한 이해도'가 엄청 높다는 게 읽힌다고 반박했다.
약 4시간 반가량 신문이 이어져 다 못한 민 전 대표 대상 당사자 신문을 오는 11월 27일 오후 진행하기로 했다. 변론 종결일은 오는 12월 18일이며, 선고는 내년 1월 말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