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제공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단속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투자 유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중대한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475명을 불법 체류 혐의로 구금했다. 이 중 한국인은 300명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현대차와 LG엔솔의 대규모 투자를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성공 사례로 내세워 왔으나, 정작 취업 비자 발급이 막혀 필요한 숙련 인력을 합법적으로 들여오기 어려운 현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십억달러 규모의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수백 명의 현지 엔지니어와 협력업체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생산 라인 설계 전문 엔지니어 같은 인력은 대체 불가능하다"며 단순 기술 지원 업무는 현지 인력으로 가능하지만 핵심 공정은 숙련된 현지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단속 여파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LG엔솔은 미국 내 배터리 공장 준공 시점을 2026년 상반기로 늦추기로 했고, 현대차 역시 조지아주에서 추진하던 생산 확대 계획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안타증권의 안나 리 애널리스트는 "설치와 시운전 단계에서 핵심 인력이 이탈하면서 2026년 상반기 양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투자 환경 전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롬바드 오디에 은행의 싱가포르의 호민 리 수석 거시전략가는 "조지아 사태는 관세 인상과 노동력 공급 부족으로 난관을 극복하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며 "한국은 주요 설비투자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비자 규정의 실용적 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2012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음에도, 호주(E-3)나 싱가포르·칠레(H-1B1)처럼 전용 비자 쿼터를 보장받지 못한 점을 구조적 한계로 지적했다. 반면 캐나다와 멕시코는 비자 상한선조차 적용받지 않아 사실상 무제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한국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투자와 인력 유입 사이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의 류태환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이번 사건은 합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숙련 인력 부족을 심화시키고 인건비 압박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이로 인해 미국 내 주요 건설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기업의 인력 조달과 관리 능력이 프로젝트 성패의 핵심 요소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