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염창동 맨홀에서 작업자 한 명이 내부로 휩쓸려 가는 사고가 발생,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서 맨홀 내부 보수 공사를 하던 40대 작업자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졌다. 그런데 해당 공사를 담당한 시공사의 전현직 임원이 다른 유사업종 회사에서도 전현직 임원을 맡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성씨가 같거나 같은 주소지에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가족이나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유사업종 회사를 여럿 설립해 공사 입찰을 따낸 뒤 실제 작업은 하청 업체를 통해 진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강서 맨홀 사고' 시공사 가보니
지난 1일 J건설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빌라 1층 모습. 송선교 기자지난 1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구의 한 빌라는 드나드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바로 앞 골목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을 만큼 한적한 곳이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등촌역 인근에서 맨홀 내부 보수 공사를 하던 40대 작업자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빌라의 1층은 해당 공사를 맡은 시공사 J건설의 주소지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빌라 1층에서는 J건설의 간판은커녕 인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사무실인지 창고인지 알 수 없는 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며, 손잡이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해당 주소지의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잔뜩 쌓여 오랜 기간 방치된 모습이었다.
즉, 이 건물의 1층에 실제 업무가 이뤄지는 사무실은 없어 보였으며, 만약 사무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며칠째 드나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온 옆 건물 주민은 이곳에 J건설 사무실이 있는지 묻자 "본 적 없고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성씨·같은 주소 공유하는 유사업종 임원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J건설의 현직 사내이사는 33세 임모씨다. 그런데 J건설의 과거 사내이사나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은 모두 사내이사와 같은 임씨였다.
또 이들은 최소 5년 전까지 모두 같은 가구가 주소지로 등록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J건설이 가족회사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J건설 주소지로 돼 있는 빌라 또한 전직 사내이사 32세 임모씨의 소유로 확인됐으며, J건설 대표 임씨와 빌라 주인 임씨는 같은 주소지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전현직 임원으로 등록된 회사가 3곳이나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회사들은 모두 J건설과 유사업종에 속해 있다. 등기부등본상 전현직 임원 목록에도 이들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또, 과거에 같은 주소지에 살았던 것으로 등록된 인물들이 더 있었다. 모두 가족회사로 운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3군데 중 2군데 또한 J건설처럼 간판이 없거나, 간판을 스티커로 가려 놓았으며,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은 없었다. 단 한 군데만 실제 사무실로 운영되는 외관이었다.
"유령회사 낙찰 후 하도급은 관행"
일가족 등이 유사업종에 여러 회사를 세워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발주 사업을 낙찰받은 뒤 실제로는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외관상 별다른 활동이 없어 보였던 회사 2곳과 J건설은 2010년부터 15년여 동안 총 1만 2398개 입찰에 참여해 49개 공사에 낙찰됐다.
강서구의회 김민석 의원은 "유령회사가 공사입찰에 참여한 뒤 낙찰되면 하도급을 맡기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며 "(J건설이) 하수도 사업 자체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데도 입찰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 작업 역시 공사 수주는 J건설이 했지만, 실제로는 하도급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숨진 노동자 역시 서류상 J건설 소속이었다.
이어 김 의원은 "사망자는 원청 업체(J건설) 직원이 아니라 하도급을 준 업체의 직원"이라고 말했다. B씨와 직접 계약한 J건설이 실체가 모호한 회사라면, 실제로 공사를 운영해 온 하도급 업체는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5일 강서구청 재난상황보고서에는 사고자가 '하수구 청소 전문업체 D 소속'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구청은 사고 당시 소방을 통해 최초 보고 받은 소속이 D업체였지만, 이후 사망한 작업자는 J건설 일용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사망한 노동자의 빈소에서 만난 공사 관계자도 "원청업체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다"며 J건설이 맞냐고 묻자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직접 하도급 계약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으면서도 "보통 원청이 있고 그 아래 하도급이 있고 그 하도급에서 일용직들을 고용하는 구조"라고 했다.
한 건설노조 관계자는 "이런 구조를 불법 재하도급,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고 한다"며 "건설업체의 원·하청을 모두 합치면 7만 6천 개인데, 모두가 공사를 수주해서 실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경우가 있지만 낙찰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친인척끼리 여러 회사를 만드는 등 회사의 수를 늘린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11일부터 50일간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섰는데, 적발된 업체는 엄중 처벌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서구청 측은 "(J건설은) 나라장터 입찰을 통해 입찰이 된 업체이고, 입찰·계약 과정에서 적격 심사를 하게 돼 있다. 승인이 돼 넘어와서 정상적으로 계약이 된 업체로 서류상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는 J건설 전직 사내이사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