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유천동의 한 아파트에 붙어 있는 급수 중단 계획 안내문. 전영래 기자"설거지하는데 물이 뚝…안나와요"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시가 아파트와 숙박시설을 대상으로 제한 급수에 들어간 가운데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물이 끊기는 등 우려했던 단수가 현실화하면서 주민들의 불편과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7일 강릉시와 주민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30분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물이 끊겼다. 강릉시가 대수용가를 대상으로 제한급수에 들어간 후,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르게 단수가 이뤄지면서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는 불편을 겪은 주민들의 불만섞인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주민은 "설거지하는데 물이 끊겼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우리 아파트는 오늘(6일) 하루치 물 양이 있고 내일부터 월요일 오후 1시까지 물이 안나올 것 같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안내방송도 있었다"며 "물 끊기기 10분 전엔 물탱크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방송이 나왔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주민들은 "이렇게 단수가 될 줄 몰랐고 물 받아 놓으면 더 고갈될까봐 받아 놓지도 않았는데 단수가 돼 당황스럽다. 저도 손 놓고 있다가 세수대야 2개에 급하게 받아놨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 등의 글을 남기며 불안감을 표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물 절약을 당부하는 글. 강릉지역 맘카페 홈페이지 캡처관계당국은 이날 오전 9시쯤 해당 아파트 저수조의 밸브를 열어 물을 채운 뒤 다시 잠궜지만, 주민들은 밤 사이 물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이날 오전 교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단수가 발생해 오후까지 급수를 진행하며 주민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급수 일정과 저수조 용량 등으로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수조가 고갈되는 시점에 맞춰 바로 물을 공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에서는 여건 상 운반 급수가 불가할 경우 잠궜던 제수 밸브를 다시 열어 공급할 계획이다.
특히 시는 아파트별로 저수조 용량 등에 따라 사용일수를 정한 뒤 보충 급수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해당 아파트에서는 원래 쓰던 저수조 사용일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시간제 단수를 실시하거나 물을 최대한 아껴쓸 것을 입주민들에 거듭 당부하고 있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통해 하루 평균 사용량의 50% 이상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각 아파트 마다 저수조 사용일수를 정한 뒤 저수조 수위가 20% 미만으로 내려가면 운반급수 등을 통해 물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릉 교동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에게 생수를 배부하고 있는 모습. 전영래 기자앞서 강릉시는 역대급 가뭄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공동주택 113개소, 대형숙박시설 10개소 등 100톤 이상 저수조를 갖춘 123개소의 대수용가를 대상으로 상수도 공급을 중단했다.
그동안 수도계량기 75%까지 잠금하는 조치를 권고했지만, 대수용가에서 기대했던 만큼 절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조치를 결정했다고 시는 밝혔다. 다만 남아 있던 저수조에 물이 고갈되면 운반급수 등을 통해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공동주택 113개소의 총 세대수는 4만 5천여 세대로 홍제정수장 급수구역 세대수 9만 1750세대 의 절반에 달한다.
시는 이번 조치를 시행하면서 아파트 저수조 내 물이 남아 있는 만큼 2~3일 후 고갈되면 급수차를 동원해 운반 급수하기 때문에 당장 단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첫날부터 단수가 되는 상황이 빚지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상수도 공급이 중단된 아파트에서는 남아 있는 저수조 물이 고갈되는 예상 시기와 함께 물 절약에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하는 안내문 등을 게시하고 있다. 지역 맘카페 등에서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상황을 문의하는 글들이 이어지는 등 단수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강릉시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주차장에 마련한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생수를 받으러 온 차량들이 늘어선 모습. 전영래 기자
강릉 유천택지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부 김모(46)씨는 "아파트에 상수도 공급을 중단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단수가 되는 곳이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우리도 언제 단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소한 화장실 물이라도 받아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 지, 정말 불안감을 넘어 이제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푸념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은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가뭄 이야기가 들어갈 때까지 타지역에서 지내려고 한다. 격일제·시간제 단수나 점점 떨어지는 저수율 문제도 크지만 앞으로 강릉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지 걱정이 된다"며 "옆 동네 양양으로 밀린 빨래를 바리바리 싸들고 원정 빨래를 가고 목욕도 하러 간다. 언제까지 이런 일상을 살아야 하는 건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강릉지역 87%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2.6%로 전날 12.9% 보다 0.3%p 떨어졌다. 이는 지난 1977년 저수지 조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또한 최근 6개월 강수량은 376.6mm로 평년 대비 41.8% 불과한 상황이다.
주말과 휴일 전국 곳곳에 많은 비가 내렸지만, 정작 강릉은 또 빗겨갔다. 가뭄을 해갈을 위해서는 오봉저수지 상류지역인 왕산면 대에 많은 비가 필요하지만 이날 내린 비는 불과 4mm에 그쳐 해갈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최근 하루평균 0.3%씩 하락하고 있는데다 당분간 이렇다 할 비 소식이 없는 만큼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대로라면 20여 일 뒤에는 사용할 수 있는 물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악의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강릉 오봉저수지. 류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