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 제공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종종 국가 영웅이거나 침묵 속 가해자의 이미지로만 소비돼 왔다.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그 납작한 시선을 거부하고 전쟁에 동원된 남성들과 그 곁에 있었던 시민·예술가·2세대의 목소리를 함께 담은 기록이다.
이 책은 평화단체 '아카이브평화기억'의 시민참여 구술활동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석미화 평화활동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활동은 "가해의 자리에 머문 참전군인을 이야기의 자리로 초대하자"는 제안에서 출발한다.
전쟁과 기억, 세대와 젠더,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를 성찰하려는 이 만남은 참전군인 여섯 명과 참전 2세·유가족,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한 시민 여덟 명의 증언과 기록으로 이어진다.
책에 등장하는 참전군인들은 단일하지 않다. '가난을 줄이기 위해' 참전을 선택했던 병사, '남자다움'을 좇아 해병대로 자원한 청년, 대민지원을 수행했던 치위생 하사관,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참전한 장교 등 각자의 사연과 기억을 품고 있다. 이들이 겪은 전쟁은 단순히 총성과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귀국박스, 고엽제, 김신조 사건, 5·18, 중동 파견, 참전명예수당 등 한국 현대사와 긴밀히 얽힌 굴곡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책은 또한 참전군인 2세 이재춘의 고통을 정면에서 다룬다.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아버지, 그리고 뇌병변 증상을 지닌 자신을 통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진실을 증언한다. 유가족 강성오의 기록은 국가가 '설명도, 위로도 없이' 보낸 전사자의 유골함 앞에서,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전쟁의 기억을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책은 국가주의적 역사 서사를 해체하면서도 이들의 책임과 인간적 모순을 성실히 기록한다. 동시에 '누가 누구의 전쟁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되묻는다.
베트남전이라는 감춰진 전쟁, 그 후예들의 고통, 전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합의와 망각. 이 책은 그것들을 다시 '듣는 일'로 복원하려 한다.
석미화·이재춘 외 지음 | 알록 |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