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남산 방향 하늘이 푸르다. 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지방소멸 위기,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멈추지 않는 '인구 블랙홀' ②"지방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공화국이 문제다"…어디까지 사실? ③'교도소'라도 유치해야 할 판…'지방 일자리' 위기, 청년이 없다 ④"지자체 절반 소멸" 한국도 日 따라가나…해답은 '지방'에 있다 ⑤'한강의 기적' 양날의 칼로 돌아왔다…'K-지방소멸' 문제점은? ⑥3시간 머문다고 지방에 도움? '생활인구 제도' 효과성 의문 ⑦50만원에 돌아온다? 기본소득, 지방소멸 막을 '한 수' 될까 ⑧전국에 '서울대 10개' 만들면 지방소멸 해결 가능할까 ⑨'서울살이'가 계급이 된다…'공간의 불평등' 꿈틀대는 대한민국 (끝) |
국내 지방소멸 문제는 '국토 불균형 발전'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제는 '태어나고 자란 지역'이 평생의 소득이나 기회를 결정짓는 '공간 불평등'의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생지역에 따른 소득 격차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태어난 지역이 계급이 된다"…서울 쏠림이 만드는 '배제'
국내 '지방소멸위험지수'를 처음으로 도입한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의 지방소멸 및 수도권 집중화 현상에 대해 "지역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등 입직 단계에서의 불평등이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보금 기자
지난 5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역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기와 성년기를 모두 비수도권에서 보낸 사람들보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이들이 소득 계층 상승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출신 청년이 서울로 이주하는 것만으로도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는 구조적인 소득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기도 하다.
해당 연구를 수행한 이지은 연구위원은 "세대 간 이동성의 지역 이동 효과의 주요 요인은
개별 지역의 사회적 인프라와 일자리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세대 간 대물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 계층을 확정하는 지역 간 일자리의 질을 살펴봐야 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안정적인 근로 조건과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분석은 실제 현장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지역 일자리 불평등 현황에 대한 실증 연구를 수행한 이상호 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로 고학력-고숙련 인력이 집중되고, 지역의 인재 유출과 제조업 쇠퇴가 맞물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일자리 양극화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지역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등 입직 단계에서의 불평등이 영속적으로 더 큰 격차로 자리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서 이지은 연구위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지역 간 일자리 조건의 격차가 세대 간 대물림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실제로 입증하는 연구결과다.
서울 청계천을 찾은 시민이 아이와 함께 주말을 즐기는 모습. 연합뉴스부모 경제력에 따라 삶의 출발선이 달라지는 부의 대물림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는 상황에서 '출생지역' 마저 양극화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
지방 주민은 단지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로부터 배제되고, 더불어 서울과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조차 높은 주거 비용과 극심한 시장 경쟁으로 인해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면서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소멸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불과 10년 만에…"수도권 이주, 계층 상승 기회로"
전라남도 소재 한 국립대 캠퍼스 모습.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약 71만명에 달한다. 순천=최보금 기자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수도권 집중'이 곧바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2015년 세계은행 통계 등을 활용해 OECD가 선진국 총 42개국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수도권 인구 집중도가 가장 높지만 개인 소득 불평등 지니계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였다.
당시 OECD는 "공간 집중도와 소득 불평등이 동시에 높을수록 대도시 이주로 인한 기대수익이 커진다"고 진단했지만, 한국은 서울 집중 압력이 강해도 이로 인한 소득 격차는 벌어지지 않는 예외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10년 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2025년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집중 현상은 1차적으로 자신의 임금을 높이기 위해 더 좋은 기회를 찾아가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보다 더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하려는 현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변화는 청년들이 더 나은 기회를 좇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흐름이 구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은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에서 "2000~2015년 기간만 하더라도 비수도권의 청년층 인구대비 순유출 비율은 과거보다 둔화되는 추세였으나
이후 큰 폭의 상승세로 반전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그 배경에 대해
"2015년 이후 수도권-비수도권간 임금, 고용률, 성장률 격차가 커지면서 청년 유출도 심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약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71만 938명에 달한다.
K-지방소멸 '속도'가 위험…"근시안적 정책만 나온다"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소멸은 전 세계적 인구 감소 흐름 속 불가피한 귀결이다. 그러나 'K-도시화'의 문제는 속도와 편중에 있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류영주 기자수도권 집중화와 지방소멸은 전 세계적 인구 감소 흐름 속 불가피한 귀결이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듯 도시화는 집적 효과를 부르고, 일정 부분 편익도 있다.
문제는 '속도'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차라리 속도가 느리다면 정부 정책 등으로 뒷받침해가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람들도) 서서히 적응해갈 수 있다"며 "
그런데 현재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부의 정책 대응이 뒤따르지 못한다. 특히 노인 등 이동이 어려운 취약 계층은 구조적으로 고립된다"고 우려했다.
과속으로 인한 정책 혼선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조현승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재편되는 과정에서 혼란과 불안이 과열되고 이로 인해 근시안적인 정책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임형백 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도 "지방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고학력의 미혼자가 수도권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의 수도권 이주를 방지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며 "그런데 그러지는 못하고 일단 이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하고 이들에게 거주할 아파트를 공급하게 되니 지방소멸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소멸, 저출산과 상호작용…국가 성장 동력까지 약화
지난달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역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정책과제' 보고서는 "청소년기와 성년기를 모두 비수도권에서 거주한 경우에 비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경우 소득 계층이 유의하게 상향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연합뉴스OECD가 2020년 펴낸 '세계의 도시들'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경제수준에 따라 대도시권에 거주하는 인구 집중 양상은 확연히 달랐다.
보고서는 "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소수의 대형 대도시권에 인구가 높은 비중으로 집중된 반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대형 대도시권의 수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서울공화국'의 지속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성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 초저출산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인구 위기에 직면해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은 저출산과 상호작용하며 악순환을 일으키고 그 결과 국가의 성장 동력까지 약화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박인권 교수는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은 지방의 소멸도 앞당기지만, 서울로 이주한 청년들도 주거난과 생활비 상승, 경쟁의 심화 등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더 적게 한다"면서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은 국가 전체의 인구 감소를 가속화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임형백 교수는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가게 되면 불안정한 생활 등으로 인해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도 하락한다"고 경고했다.
"지방소멸 해법? 일자리 창출 등 '사람' 잔류할 요인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지방소멸 해법에 대해 "일자리를 포함해 지역 내 잔류할 요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인들이 산책하는 모습. 연합뉴스양극화·불평등의 심화, 그로 인한 인구 감소의 가속화. 전문가들은 이러한 '축소 사회'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지역 내 잔류할 요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다. 그러나 단일 해법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외에도 교육, 의료, 문화 등 전반적인 생활 여건을 함께 개선하는 종합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규 국립군산대 금융부동산경제학과 교수는
"예컨대 지방에 '서울대 10개'를 만들어도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청년들이) 졸업 후 서울로 갈 것"이라며 "일자리, 교육, 정주여건을 함께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인권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역 산업 생태계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며 "이와 함께 교육·의료·문화 등 기초 생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KDI는 "지금까지의 지역발전 전략이 단일 부문 투자에만 집중한 경향이 짙었다"면서 "비수도권 내 인구 유입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여러 부문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에서 바라본 해운대구 일대. 연합뉴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발표한 '지역불평등 양상과 지역발전 전략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
지금까지의 지역발전 전략은 일자리나 교육투자 등 단일 부문에 대한 투자에만 집중한 경향이 짙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비수도권 내 인구 유입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견주어도 양적, 질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
일자리 창출과 함께 교육, 주거, 영유아 보육 등 여러 부문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고용정보원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과 일자리 쇠퇴가 이어진 점을 지적하면서 "지역의 문제는 서로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산업-교육- 복지-주거-문화 전략이 복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특히 지역 인재를 유치하고 육성함으로써 내생적 지역발전의 원동력을 재구축하는 사람 중심의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