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상욱을, 그리고 박용진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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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당은 파벌이지만, 모든 파벌이 정당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에 동참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김상욱 의원(왼쪽)·박용진 의원. 연합뉴스지난해 12월 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에 동참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김상욱 의원(왼쪽)·박용진 의원. 연합뉴스
"외롭고 힘들지만 충언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수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이 사라진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국민의힘을 아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8일, 김상욱은 국립현충원 앞에서 담담히 말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탈당 선언이 아니었다. 국민의힘에 대한 사망 선고이자, 정당이라는 껍질만 남은 한 파벌에 울려 퍼진 묵직한 조종(弔鐘)이었다.

변호사 출신의 그는 지난해 12월 7일,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선 김상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거푸 물을 들이켰고, 이내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곧장 밝혔다. "헌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용인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결단코 용인될 수 없다." 그리고 단호히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14일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제419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참석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 홀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해 12월 14일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제419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 참석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 홀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 황진환 기자
한 차례 부결된 윤석열 탄핵안은 일주일 뒤 찬성 204표, 반대 85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내에서 가장 먼저 찬성 의견을 밝힌 김상욱의 목소리는 결정적이었다. 김상욱은 "잘못에 책임있는 여당이 국민에게 행동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잘못을 우리 손으로 결자해지하자고 동료 의원들에 촉구했다. 최소 11명이 그와 뜻을 같이 했다.

그가 당선된 울산 남구(갑)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영향으로 진보세가 강한 동구나 북구와는 달리 2000년 이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독무대였다. 1980년생 청년 정치인으로서, '가만히만 있으면' 3선, 4선이 보장되는 이른바 보수의 텃밭. 가만히 있지 않은 대가는 컸다. 당내에서, 지역구에서 당직 사퇴와 탈당 압박이 거듭됐다. 국회 상임위가 바뀌고 간사 자리를 뺏겼으며 울산시당위원장직도 반납했다.

지난해 2월 2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재선·서울 강북을)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공천 심사 하위 10% 통보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윤창원 기자지난해 2월 2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재선·서울 강북을)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공천 심사 하위 10% 통보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제22대 총선을 50일 앞둔 지난해 2월 20일, 박용진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현역 의원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고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민주당을 다시 복원하겠다는 정풍운동의 각오로 오늘의 이 과하지욕(胯下之辱)을 견디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낙점한 친이재명계 후보가 두 차례나 낙마했지만 그는 끝내 공천장을 받지 못했다.

운동권 출신인 박용진은 권영길이 이끌던 국민승리21을 거쳐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로 정치에 본격 투신했다. 서울 강북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그는 진보대통합 논의를 계기로 2012년 민주당에 합류했다. 당적을 바꾼 박용진은 진보정당 시절의 6배 가까운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21년 10월 제20대 대선 경선 4위, 2022년 8월 당대표 경선 2위로 몸집을 키우며 대표적인 비명 주자로 우뚝 섰다.

"언론에서 혹은 사람들은 '박용진'이라 쓰고 '비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가장 중차대한 과제인 내란 종식과 정권 교체, 진짜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데 비명·친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명횡사'에도 당을 떠나지 않고 버틴 박용진은 11일 이재명 대선 후보 직속 '사람사는 세상 국민화합위원회' 위원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우리 민주당은 밤낮으로 연대하고 단결하고 확장하고 있다.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강변서재에서 후보 단일화 관련 공개 회동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강변서재에서 후보 단일화 관련 공개 회동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다시, 김상욱이 탈당을 선언한 8일 오후. 12·3내란의 공동 책임자 한덕수와, 유일하게 사과를 거부한 국무위원이었던 김문수는 단일화를 두고 국회에서 1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입씨름을 벌였다. 헬리콥터가 뜨고 총으로 무장한 공수부대가 난입했던 그 국회 뒤뜰에서 말이다. '우리 당원'들이 원한다며 떼를 쓰는 한덕수와 당원 앞에 22번이나 약속하고도 말을 뒤집은 김문수, 두 사람은 파벌이 장악한 정당의 민낯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괴기한 일은 박용진이 복귀한 11일까지 이어졌다. 8명이 20일 넘게 공개 경쟁을 벌여 선출된 공당의 대선 후보 자격은 9일 밤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다음날 새벽 3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절차로 한덕수가 그 자리를 채웠다. 정당이기를 포기한 국민의힘의 폭주는 10일 밤 당원들에 의해 가까스로 가로막혔다. 지도부로부터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는 한심한 모습"이라고 비난받던 김문수는 11일 최종 대선 후보가 됐다.

김문수는 선거운동 첫날인 12일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를 구걸하는, 두루뭉술한 사과였다. 탄핵에 반대하고 계엄을 옹호했던 자신, 아울러 국민의힘의 과오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그를 앞장서 비호한 파벌은 여전히 건재하다. 김상욱은 밀려났고, 박용진은 견뎌냈다. 정당은 늘 파벌의 충돌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진짜 정당은 그 다름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존재한다. 모든 정당은 파벌이지만, 모든 파벌이 정당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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