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전 대통령 모습. 황진환 기자윤석열 정권 초기 '김건희 리스크'의 시작점이었던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후 디올백 논란‧명태균 사태 등에 묻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의혹의 실체와 사업 재개 향방에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핵심 정황들과 최근 국토교통부 자체 감사 결과 등을 되짚어, 종점이 바뀌게 된 과정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의혹을 풀어야 사업 재추진이 가능하단 지적이다.
물음표① 종점 변경 검토+용역비 지급, '왜' 서둘렀나?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양평고속도로 종점을 기존 예비타당성조사안(예타안)의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은 윤 전 대통령 당선(2022년 3월 9일) 이후부터 취임식(5월 10일) 전후 사이에 있었다.
변경안의 종점부인 강상면 병산리 일대에는 김 여사의 오빠가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 소유 땅 등을 포함한 일가의 땅이 최소 29개 필지인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특혜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의 출발점은 '왜 용역사가 서둘러 종점부터 바꾸려고 했느냐'다.
용역사인 경동엔지니어링 등은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2022년 3월 29일 연구용역에 착수, 50일 만에 발주처인 국토부를 상대로 예타 결과와 과업지시서에도 없던 종점부로 강상면을 제안했다. 과업지시서상 '예정공정표'를 기준으로 보면 대안노선 검토를 시작한 지 단 20일 만에 종점 변경 가능 위치까지 특정한 것.
[관련기사:CBS노컷뉴스 2023년 7월 13일자 "[단독]특혜의혹 강상면안 '초특급' 노선검토…"매우 이례적""]
'변경안을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한 경동엔지니어링 임원은 국정감사에서 하루 정도 현장에 나가 예타안의 기술적 문제(높은 교각 등)를 인지해 종점 변경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런 변경 검토가 연구용역을 시작하는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 국감과 국토부 감사에서 재확인됐다. 용역사가 2022년 4월 국토부에 제출한 과업수행계획서에 이미 '종점부 위치 변경 검토' 내용이 담겼는데, 국토부가 이 문서를 국회의원실과 대국민 정보공개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한 사실도 드러났다.
더욱이 국토부와 용역사가 규정에 따른 노선안에 대한 비용편익분석(B/C)도 없이 변경안의 우월성을 앞세운 것도 의문을 더하는 대목이다.
[관련기사:CBS노컷뉴스 2023년 7월 13일자 "[단독]국토부 '양평道 수정안' 경제성 조사 안했다"]이처럼 노선 변경 시도가 성급하게 진행됐는데도, 국토부는 용역 절차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약속한 1차분 전체 용역비 18억 6천여만 원을 일시 지급한 것으로 감사에서 적발됐다.
감사 결과 공개문을 보면 용역 감독자와 담당공무원 등은 '업무 과중으로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고, 2차분 용역이 남아 있어 전체 준공 시 계약내용을 이행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진술했다. 담당자의 과실과 자의적 판단에 따라 미리 준공 조치를 했다는 얘기다.
양평고속도로 사업 관련 국토교통부의 특정감사 처분요구서 표지. 처분요구서 캡처이 같은 해명에 대해 감사관 측은 '피감사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달았을 뿐, '왜' 그렇게까지 노선변경 흔적을 감추려 했고 기본적 관리감독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용역비를 선지급했는지 구체적 경위를 밝혀내진 못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용역 진행에 대한 감사로 예산이 적법하지 않게 지급된 사실관계들을 확인했고, 담당자들의 진술 요지도 공개문에 담아냈다"며 "외압이나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가 없는 사안 같다"고 말했다.
물음표② 도로의 확장성, '무엇'을 위해 배제했던 것인가?
종점 검토 과정에서 기존 예타안 노선의 유리한 요소가 고의로 배제된 것도 주요 쟁점이다.
양평고속도로의 본래 사업목적과 향후 노선 연장을 고려하면 예타안의 종점이 왜 양서면으로 향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2023년 7월 14일자 "[단독]서울-양평고속道…'강상면안'이 예타서 빠진 이유"] 
예타보고서에 따르면 이 도로의 본래 목적에는 '수도권 제1순환선 및 서울~춘천고속도로의 정체 해소'가 포함돼 있다. 춘천선의 교통량 분산과 연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도로 관련 국가 최상위 법정계획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양평고속도로 예타 결과가 발표된 2021년 5월 이후 4개월 만에 고시된 '국가도로망종합계획'에는 원주~강릉으로 이어지는 동서7축의 지선이었던 양평고속도로(계획)가 춘천~양양으로 이어지는 동서9축의 지선으로 바뀌었다. 이 고시문 내 양평고속도로 종점 방향은 예타안 노선과 일치한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2023년 7월 17일자 "[단독]양평道-춘천道 같이 묶고도…국토부 "연계 계획 없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런 예타안의 유리한 점을 용역사의 타당성조사 과정에서 철저히 제외시켜 도마에 올랐다. 두 노선안을 비교분석하는 과정에서 '장래 노선축 연장계획 고려'에 관한 내용을 배제하라고 직접 지시한 사실이 국감에서 국토부 측 증언으로 밝혀졌다.
용역사 임원 역시 장래 노선축을 감안하면 "예타안이 더 유리하다"고 분명하게 증언했고 국토부와 용역사 간 사업보고서에서도 장래 노선축 내용이 등장했으나, 국토부는 '지선은 일부 보완 노선일 뿐, 춘천선과 연결 계획은 없다'고 반박해오고 있는 상황.
이와 달리 관련법에는 국토부 해명과 상충될 수 있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도로법(시행령 제18조)상 지선 지정 기준은 '인근 도시, 항만, 산업단지 등을 직접 연결해 접근성을 높이거나 교통물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며 직접적인 연결성을 규정하고 있다.
국감에서 심상정(정의당)‧김민기(민주당) 의원 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도로이므로 직접 연결 표현은 공식문서에 없을 수 있지만, 두 도로를 동일 축으로 묶고도 장래 노선 확장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윗선' 개입 여부를 추궁한 바 있다.
물음표③ 종점 바뀌면…김 여사 일가에 '어떻게' 특혜 작용?
서울-양평 고속도로 예타를 통과한 원안 노선의 종점인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일대 모습. 연합뉴스반면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국민의힘 측은 노선 검토에 외압은 없었고, 종점 변경으로 김 여사 일가가 얻는 이득도 없다며 특혜 소지를 전면 부인해오고 있다. 김 여사 일가의 땅이 비탈진 산지이거나 수변구역이므로, 개발과 시세 상승은 어렵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수변구역, 보전관리지역 등도 해제 또는 보전‧개발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국감을 통해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잃게 됐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2023년 7월 국회 국토위 국감에서 실제 양평군 내에서 군청 허가로 개발됐거나, 개발이 추진 중인 수변구역 사례들을 근거로 들었다.
김 여사 일가의 수혜 가능 범위는 개발과 지가 상승에만 그치지 않는다. 강상면 병산리에 종점이 들어설 경우, 일대 토지 소유주들이 그동안 접근성이 좋지 않아 매매조차 하기 힘들었던 땅들에 대해 일제히 토지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지난달 31일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는 이소영 국회의원 모습. 이 의원 블로그 캡처지난달 31일 이 의원은 광화문 천막당사 브리핑에서 "(처가) 이분들은 전문적 부동산 개발업자다"라며 "종점을 가장 유리한 지점으로 바꾸고 흑염소, 칠면조를 키워 보상금을 최대치로 챙기려 한 것 같다"고 거듭 노선 변경의 목적성을 의심했다.
이용욱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도 "JCT(분기점) 붙는 땅은 일부 편입되는 부분이 보상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변경안 검토 과정에서는 김 여사 일가 땅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물음표④ 진상 규명이냐 사업 재개냐, 우선순위는?
이렇게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으면서 원 전 장관의 백지화 선언 이후 사업은 설계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전면 중단된 상태다. 올해 관련 예산은 '0원'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치적 요소를 뒤로하고 민관정 협의체를 구성해 사업재개부터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양평 지역사회에서도 조속한 사업 재개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검증된 예타안으로의 사업 재개를 촉구해오고 있다.
양평고속도로 사업 재추진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양평군 일대에 걸려 있는 모습이다. 박종민 기자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김 여사를 보호해주던 권력 방패가 벗겨진 만큼, 강제수사를 통해 여러 의사결정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에 대한 '선 수사, 후 추진'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금창호 한국정책분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처음부터 2개 노선으로 비교하던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신뢰성 논란도 있었던 노선 타당성 비교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경제성 말고도 노선의 장래 연장성, 공익성 등을 포함한 정책성 분석도 고려돼야 하고, 무엇보다 의혹에 관한 해소를 거쳐 예타 이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국책‧민간사업의 연구용역을 해온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용역사가 종점 변경을 검토하게 된 구체적 배경, 용역비가 일시 지급된 근본 이유 등을 규명하는 게 우선"이라며 "민간업체들이 끼어 있기 때문에 감사에 이어 강제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짚었다.
한편, 일부 의혹 내용과 관련해서는 원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 경기도당과 시민단체가 2023년 7월 원 전 장관에 대해 노선 변경과 사업 중단 등의 책임을 물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각각 고발, 이후 공수처와 검찰을 거쳐 지난해 7월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으로 넘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고 구체적인 소환, 대면 조사 대상자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국토부 감사 결과 등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